[언박싱] 이 주의 질문 : 나에게 단식이란?
[언박싱] 이 주의 질문 : 나에게 단식이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1.10 17:09
  • 수정 2021.01.10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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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국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청와대 #희망버스 #김진숙 #코레일

올해부터 언박싱을 살짝 개편했습니다. 한 주에 한 가지 질문을 선정해 노동계 구석구석의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 주의 질문은 바로 ‘나에게 단식이란?’입니다.

1월 7일 청와대 앞 김진숙 희망버스 기획단 단식농성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단식이란 일정기간 동안 자발적으로 식음을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투쟁방법으로써 단식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간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벌인 단식을 기점으로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단식의 사회적 파급력은 떨어졌는데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더 이상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시대’가 아니게 된 점이 가장 큰 배경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먹방’을 찍고, 건강을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는 이 시대에 단식의 고통을 공감하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더욱이 2018년 12월 24일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릴레이 단식’을 펼쳐 사회적으로 조롱받기도 했습니다. 단식의 의미가 퇴색한 것입니다.

한편, 노동‧시민사회계 내에서도 단식 등 ‘자기파괴적인’ 투쟁방법에 대한 경계를 보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소선 어머님이 있습니다. 이소선 어머님은 “죽을 결심을 한 바에야 살아서도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을텐데 왜 스스로 죽느냐”(전태일재단 홈페이지)고 나무라셨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몸을 헤치는 방법으로 투쟁하지 말라는 걱정 어린 당부였습니다.

단식은 자기파괴적인 투쟁수단입니다. 이소선 어머니의 당부대로 ‘제 몸을 챙기면서’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어머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단식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단식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1월 8일 국회 앞 단식농성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국회 앞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 회의를 통과한 8일 오후 8시까지 유가족‧활동가‧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단식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12월 7일부터 33일간 단식을 진행한 김주환 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저희들의 단식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단식”이라고 말했습니다.

“33일째 단식하고 있는데, 수많은 분들이 같이 단식을 해주고 있어요. 건강과 위험을 담보로 단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치권에서 만든 거죠. 이미 됐어야 하는 법안을 이제야 뒤늦게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과 자본들이 나서서 법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정치권은 부화뇌동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중대한 원칙을 훼손하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건강의 위협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있었고….”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청와대 앞에서도 단식농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기획단이 그 주인공입니다. 정홍형 희망버스 집행위원장, 서영섭 신부, 송경동 시인,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등 노동·시민사회계 7명을 비롯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와 쌍용차지부에서도 연대단식에 나섰습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12월 22일부터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내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1986년 한진중공업으로부터 해고를 당했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정년일이었습니다. 정홍형 희망버스 집행위원장(금속노조 부산양산지역지부 부지부장)은 단식을 “최후의 수단”라고 말했습니다.

“단식은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는 최후의 수단이에요. 정년이 9일밖에 안 남은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단식밖에 없었어요. 가면 갈수록 단식투쟁의 의미나 주목도가 희미해지고 있다고 해서 단식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내지는 그런 투쟁수단이 올바르지 않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김진숙 지도위원의 부당한 해고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국가입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대공분실로 끌고 가서 두 번이나 고문하고 빨갱이로 몰고 간 것이 빌미가 돼서 해고됐거든요. 따라서 국가가 책임져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 공공운수노조

바로 어제(9일) 단식에 돌입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서재유 공공운수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지부장입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광역역무업무, 여객매표, 고객상담, 주차관리, 공항리무진운전, 셔틀버스운전, KTX특송 등을 담당하는 코레일의 자회사입니다. 코레일네트웍스지부는 철도고객센터지부와 함께 ‘합의사항을 이행하라’며 60여 일간 파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서재유 지부장은 이번 단식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오체투지나 단식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던 서재유 지부장은 “죽음에 직면하거나 누군가 죽어야지만 사회적으로 여론이 지지를 해주는”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이소선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살아서 싸워야지요. 그런데 당장 노동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어머님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당장에 먹고 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하나하나 가입해서 무언가를 합니다. 그러다보면 각각의 투쟁의 낯설고 쉽게 무너지기도 하죠. 그래서 그런 노동자들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구심점을 만들다 보면 누군가는 단식에 나서게 되고 그럴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식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8일 국회 농성장을 찾은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은 단식에 대해서 “사실 단식 이후 복식 과정이 더 힘들다. 내 몸이 으스러지더라도 불가피하다. 처절함을 담은 결정”라고 밝혔습니다.

“오죽 분노스러웠으면 곡기를 끊겠다고 결정을 하는 거잖아요? 다들 말이 10일, 20일이지 어마어마한 고통이 동반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 주로 언론이 노동자들의 처지를 제대로 이야기를 안 하니까. 달리 세상에게 ‘우리가 이렇게 억울하다’, ‘우리 목소리를 들어라’고 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단식을 선택하게 되죠.”

어느새 우리사회는 단식투쟁에 비장함을 느끼기보다는 ‘왜 굳이 그런 방법을’이라는 생각을 먼저 가지게 됐습니다. 이러한 세태를 단식을 진행하는 이들도 역시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단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왜 제 몸을 희생하면서 싸우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제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먼저 눈을 돌려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이상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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