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대우조선‧아시아나 매각... “원점 재검토 하라”
산업은행 대우조선‧아시아나 매각... “원점 재검토 하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10.26 16:56
  • 수정 2021.10.27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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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참여연대 기자회견 진행
주요 경쟁국 기업결합 심사에서 막혀 … 대우조선 3년, 아시아나 1년째
​​​​​​​LNG선박‧항공노선권 독과점 및 조건부 승인 시 경쟁력 저하 우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의 기업결합이 주요 경쟁국 심사에서 지연되는 가운데 매각을 철회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 사례 모두 '조건부 승인'이 점쳐지는데, 이 경우 국내 조선업과 항공업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양경수),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현정희)과 참여연대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기업결합 심사 승인 부당압력 산업은행 규탄, 대우조선‧아시아나항공 재벌특혜매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3년째 표류중인
대우조선‧현대중공업 합병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기업결합은 2019년 3월 인수 본계약 체결 이후 3년째 표류 중이다. 세계 조선업 1‧2위 기업의 합병에 따라 한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등 조선업 주요 경쟁국으로부터 모두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싱가포르의 승인을 받았지만 한국과 유럽연합, 일본에서는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기한을 4차례 연장했다. 지난 9월 30일까지였던 인수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연장됐다.

특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9년 11월 기업결합 심사에 나섰지만 2020년 4월 심사를 중단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였지만, 합병 시 점유율 60%에 달하는 LNG 운반선 독과점 문제 해소 방안이 부족했던 것이 결정적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LNG 운반선 사업 부문 축소를 전제한 조건부 승인이 이뤄질 경우 LNG 운반선을 생산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호중공업의 일부 생산시설을 축소하거나, 현재 보유 중인 LNG 운반선 기술 이전, LNG 운반선의 향후 판매 가격제한 등의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대우조선 매각은 이미 실패”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산업은행의 매각 철회를 주장하며 지난 14일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20일부터는 신태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수석부지회장이 단식에 들어갔다. 오늘로 단식농성 7일째다.

신태호 수석부지회장은 “해외 경쟁국들은 독과점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대우조선은 기다림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면서 “수주나 운영 등 모든 부분에서 매각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다. 실패한 정책이면 중단하고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6일 오전 11시 서울시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진행된 ‘기업결합 심사 승인 부당압역 산업은행 규탄, 대우조선‧아시아나항공 재벌특혜매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유럽연합 공식심사도 아직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 합병

산업은행의 관리를 받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역시 오는 11월이면 인수를 추진한 지 만 1년이다.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지주사 한진칼은 2020년 11월 17일 인수계약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대한한공의 인수도 지연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 예정일을 기존 9월 30일에서 올해 말까지로 연장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도 대우조선과 같이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 베트남, 터키, 대만, 태국 등 해외 경쟁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필요한데, 지연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대한항공은 터키, 대만, 태국 등에서 승인은 받았지만 유럽연합과 미국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의 공식심사조차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광훈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법규부장은 “미국 및 EU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대한항공에서 공식신고(formal notification)를 완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법정(statutory) 합병심사는 착수하지 못하고 사전심사 단계”라며 “대한항공이 공식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 질의하니 법정심사에 들어가는 것은 대한항공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유럽연합 같은 경우에는 예비심사를 거치고 본심사를 거치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며 “승인을 위해서 요청하는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시 ‘중복노선’ 문제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공통으로 운항하는 노선은 48개에 이른다. 두 회사의 운행 시간대도 유사하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도 중복노선의 운수권과 슬롯을 축소하는 것을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이 점쳐지고 있다.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축소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사실상 유럽연합에서는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경쟁 당국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주요 경쟁국에서 합병 심사를 굉장히 깐깐하게 할 가능성 높다”면서 “2013년 미국 법무부는 아메리칸 항공과 유에스에어웨이즈의 통합을 승인하면서 양사가 보유한 주요 공항 슬롯 게이트 등 공항 인프라 일부를 경쟁사에 내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통합 항공사의 운수권과 슬롯을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이 될 경우 합병 취지를 퇴색시킬 것이다. 중소형 항공기를 보유한 국내 저비용 항공사가 이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 매각에 따른 문제점이 이미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매각과 합병 결정을 강행한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면서 “핵심적인 국가 기간산업인 조선업, 항공업에 대한 산업정책적 분석과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정치적 성과내기에 급급했던 산업은행과 이동걸 행장의 책임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 측은 노동계‧시민사회계가 우려하는 독과점 문제로 인한 경쟁력 약화 우려에 대해 “크게 드릴 말이 없다”며 “예정했던 대로 기업결합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 이외에 대해서는 따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결합의 주체인 현대중공업과 대한항공에 최대한 지원하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