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매각은 이미 실패다”
“대우조선 매각은 이미 실패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9.27 22:21
  • 수정 2021.09.27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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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매각, 1,400여 개 경남 기자재 벨트의 몰락 가져올 것...
플러스보다 마이너스, 대우조선 매각 철회하고 발전 방안 모색해야”
​​​​​​​[인터뷰] 신상기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3년째 표류하고 있다.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과 인수계약을 맺었다. 현대중공업을 물적분할하여 중간지주사(한국조선해양)를 만든 뒤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매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초 목표는 1년 내 인수계약을 마친다는 것. 하지만 조선업 주요국으로부터 받는 기업결합심사가 늦춰지면서 대우조선 매각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인수계약 기간은 세 차례나 연장됐다. 오는 30일 또다시 인수계약 만료일이 찾아올 예정이다. 신상기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은 “대우조선 매각은 이미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동자와 지역에 몰락을 가져오는 대우조선 매각을 하루라도 빨리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4일 청와대 앞에서 노숙투쟁 중이던 신상기 지회장을 만났다.

2021년 9월 24일 청와대 사랑채 인근에서 신상기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대우조선지회는 9월 8일부터 15일까지 대우조선 매각 철회 촉구를 위한 천릿길 도보행진을 진행했다. 16일부터는 곧바로 청와대 노숙투쟁에 돌입했다. 3년째 추석마다 대우조선 매각 철회 투쟁에 나서는 듯하다.

2019년에는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2020년에는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올해는 청와대 앞에서 추석을 보냈다. 내년에는 조합원들이 가족과 함께 연휴를 보냈으면 한다.

- 천릿길 도보행진은 거제 대우조선해양 서문부터 시작해 통영, 고성, 함안, 김해, 양산, 부산, 창원 등 경상남도 주요 도시들을 경유했다. 도보행진 코스로 해당 도시들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해당 도시엔 대우조선해양의 1,400여 개 기자재 업체가 산재해 있기에 경상남도 조선 기자재 벨트를 중심으로 돌아보자고 기획했다. 대우조선 매각의 문제는 대우조선이나 거제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각 초기부터 경남 전체의 문제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알렸다.

실제로 각 지역의 기자재 업체를 돌아봤는데 피해가 심했다. 특히 함안 쪽 피해가 컸다. 한 공장 걸러 한 공장이 폐업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조선업 경기가 어려웠던 측면이 있지만 대우조선 매각과도 분리할 수 없는 문제다. 정부가 대책 없이 대우조선을 매각하는 건 대우조선의 몰락뿐만 아니라 경남 조선 기자재 벨트의 몰락, 더불어 경남지역 전체가 몰락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대우조선 매각 문제를 경남 전체로 알려내자는 취지로 천릿길 도보 행진을 진행했다.

- 자동차산업은 전후방 연계 효과가 강하다.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언급될 때면 1·2차 하청업체의 어려움도 함께 나온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조선산업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조선업도 기자재 협력업체가 상상 이상으로 많다. 작은 볼트부터 시작해서 엔진까지 다양하다.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넘어가게 되면 제일 크게 타격을 받는 곳이 대우조선에 납품하는 기자재 업체다. 대우조선은 주로 30인 미만, 작으면 10인 미만의 영세한 업체에서 기자재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기자재를 거의 자회사를 통해 조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서 기존에 거래하던 협력업체와 거래하지 굳이 경남의 기자재 업체를 쓸 필요가 없게 된다.

대우조선 매각 발표 후 이러한 문제를 노동조합에서 제기하니 현대중공업은 자회사로 있던 기자재업체를 대부분 분사했다. 분사는 했지만 기존과 동일하게 거래하고 있다. 눈속임, 편법이다. 실제로 창원의 STX엔진이나 HSD엔진은 지금 심각하게 매출이 감소하고 있어 중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규모가 작은 기자재 업체들은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대우조선지회는 같은 상급단체 소속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대우조선 매각에 함께 반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 개편 과정에서 존속회사(현대중공업)에 대한 부채 쏠림과 그로 인한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를 우려했다. 대우조선지회가 매각 시 가장 우려하는 점은 무엇인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동반 부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구조조정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사업구조는 상선, 특수선, 해양플랜트까지 100% 똑같은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각 후 인수합병 시 현대중공업이 됐든 대우조선이 됐든 어느 한쪽은 구조조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 현장에서 고용불안 우려가 클 것 같은데.

지금은 크게 불안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실제로 합병이 됐을 때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따라 올 수밖에 없다고 다들 판단한다. 당장 고용이 불안한 사람들은 비정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대우조선지회에서 총고용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부 조선업 전문가들은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인수합병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지만, 한국조선해양이 이미 출범한 상황에서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려우니 합병을 가정하고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각자의 강점 분야를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빅3의 강점이 서로 비슷해서 강점 분야를 특정하기 어렵다. 포토폴리오도 비슷하다. 다만 설계와 공법에서 각 회사 고유의 특성이 있다. 조선업이 수주산업인 이상 발주사가 선호하는 회사가 다르다. 그러니까 대우조선을 선호하는 선사가 있고, 현대중공업을 선호하는 선사가 있고, 삼성중공업을 선호하는 선사가 있는 것이다.

- 합병 시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서 중복 투자를 없앨 수 있지 않은가?

연구개발 역량을 한 쪽으로 몰아서 발전시킨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선박 설계를 해보면 현대중공업이 배를 만드는 방식과 대우조선이 배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말은 중복 투자를 없애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는데, 현대중공업의 기술력과 대우조선의 기술력은 따로다. 여기서 현대중공업으로 설계 역량을 몰아준다면 대우조선에 있는 설계 인력은 나갈 수밖에 없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각 회사의 기술력을 융합하기는 어려운가?

장기간 공을 들이면 가능한데 단기간에는 힘들다. 다만 합병을 전제하는 건 옳지 않는다고 본다. 대우조선지회에서는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매각을 현대중공업 재벌에 대한 특혜, 몰아주기로 판단한다.

- 대우조선 매각에 대한 찬반양론은 한국 조선업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갈리는 것 같다. 쉽게 말해 조선업이 사양산업인지, 발전 전망이 있는지 바라 보는 시선 차이다. 지난 13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독자생존할 자신이 있다면 모든 금융 지원을 끊고 홀로서기에 나서도록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전자의 입장인 것 같은데, 대우조선지회에서는 한국 조선업의 장기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2017년 맥킨지에서 한국 조선산업 체제를 빅3에서 빅2로 재편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동걸 회장이 대우조선 매각을 추진하는 배경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당시는 조선 경기가 최저점을 찍었던 때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조선산업이 살아나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모두 올해 수주 목표를 달성했다. 2017년 이후 처음이다. 2017년 이후 상황이 100%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이동걸 회장에게 산업은행의 설립 목적과 취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묻고 싶다. 기업이 어려우면 공적자금을 투여해서라도 살리는 게 산업은행의 역할이지 않나. 그리고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동걸 회장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지자체가 반대해서 EU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심사를 제대로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대우조선 매각 실패를 자기 입으로 시인하는 발언이었다고 평가한다. 분명히 이동걸 회장은 2019년 3월 본계약을 체결할 때 자신의 직책을 걸고 6개월 안에 마무리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 3년째 표류중이다. 잘못된 것을 3년째 증명하는 게 아닌가.

경남에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성동조선, STX조선(현 케이조선)도 있다. 성동조선과 STX조선도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 있다가 사모펀드에 매각됐다. 아무래도 먹튀의 개연성이 높다. 경남의 조선업 클러스터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산업은행이 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고민 없이 무조건 매각하면, 대우조선을 팔면 조선업이 살아난다는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

- 현재 조선업에서도 산업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친환경 선박 전환기에서 대우조선의 경쟁력은 유효하다고 보는가.

탈황산화수소, 스마트 야드, 스마트 선박 등 친환경선박으로 전환을 대우조선뿐만 아니라 빅3가 모두 진행하고 있다. 기술력에 있어선 백지 한 장 차이다. 산업전환에 빅3가 모두 매진해왔기 때문이다. 대우조선도 이대로 간다면 충분히 독자 생존도 가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제를 누비는 시내버스 곳곳에는 대우조선 매각을 반대하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오는 30일은 세 번째 대우조선 인수 계약 연장 만료일이다. 다시 한 번 인수 계약을 연장할 것으로 보는가?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중공업에서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했을 때 대우조선 매각 관련한 문제를 언급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마 연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런데 계약 기간을 네 번 연장한다는 것은 사실상 대우조선 매각은 실패했다는 말이 아니겠나. 연장을 해봐야 그 기간이 올해 안인데 그 사이 마무리 짓기 쉽지 않을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대우조선 매각과 관련한 투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오는 30일부터 1박 2일 상경투쟁을 예정하고 있다.

- K-조선 재도약 전략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았는가?

친환경 선박 전환, 고부가가치 선박, 조선 인력 8,000명 육성 등이 K-조선 재도약 전략에 나와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답답하다. 그런다고 조선산업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K-조선 재도약 전략을 발표할 때 대우조선에서는 하청업체가 폐업했다. 비전과 정책을 발표하면 뭐하나? 업체가 폐업하면서 발생하는 체불임금 문제가 여전하고, 4대 보험료 납부 유예제도로 노동자가 납부한 보험료도 떼이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조선산업을 육성시키고 발전시킨다고 하는 말이 피부에 와 닿겠나. 빛 좋은 개살구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조선산업을 살리려면 조선업 전문가, 현장 노동자, 관계기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조선산업을 살릴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어야 했다. 립 서비스만으로는 현장이 달라지지 않는다. 태스크포스를 꾸리든 특별팀을 꾸려서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빅3가 수주목표를 다 채웠지만 현장에는 배를 만들 인력이 없다. 대우조선엔 6만 명이 근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무직을 포함해서 1만 8,000명밖에 남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생활하면서 배를 만들 수 있도록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게 조선산업을 살리는 첫 번째 길이라고 생각한다.

- 조선소 하청 노동자뿐만 아니라 설계 인력도 조선소를 떠나고 있다고 들었다.

비전이 없다고 느끼는 거다. 특히 대우조선은 매각 발표 관련해서 더 그렇다. 설계 인력들이 중국으로 떠나고 있다. 연봉도 한국보다 높고 대우도 좋다보니 중국으로 빠져가는 실정이다. 현재는 한국이 세계 조선업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이후에는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길 우려가 높다. 아무리 고부가가치 선박, 친환경 선박을 수주한다고 하더라도 설계부터 막히면 배를 만들 조건이 안 된다. 이에 대한 대비 없이 K-조선의 비전은 없다고 본다.

- 대우조선 발전을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우조선 매각 철회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대우조선 매각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을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이 보여줬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EU 공정거래위원회도 LNG 추진선의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라고 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세계 LNG선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61%다. 인수 승인 조건으로 이 비율을 50% 낮추라고 한다면 10%의 점유율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로 날아가는 것이다. 대우조선 매각을 철회하고, 어떻게 하면 대우조선을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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