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법인분할 2년, 노동자의 삶은 더 나빠졌다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2년, 노동자의 삶은 더 나빠졌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6.07 12:21
  • 수정 2021.06.0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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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부터 서울 농성 중인 현중지부, “우리 삶은 2019년에 멈춰 있다”
​​​​​​​법인 분할·잇따른 산재사고‧3년째 임단협, “조선업 경기 나아진다고 하지만…”
6월 4일 오후 3시경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한국거래소 앞에서 농성 중을 준비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년 전 5월 31일은 현대중공업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날이다. 이날 현대중공업 노사가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두고 격하게 대립했다. 앞서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1월 31일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이를 위한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을 예고했다. 언론을 통해서야 노동조합은 이 사실을 알았다.

현대중공업지부는 결전 5일 전부터 임시주총 장소인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주총회 당일 한마음회관에서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장소가 변경되면서 ‘예정대로’ 법인분할은 진행됐다. 현대중공업 위에는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중간지주사가 생겨났다.

그 후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시간은 2019년에 멈춰있다. 임단협은 3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중대재해도 끊이지 않아 ‘죽음의 일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가고 있다는 전망이 무수히 쏟아지지만 현장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다. 서울 상경 농성 중인 현대중공업지부 간부들을 4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만났다.

“사장 보고 인사도 안 합니다”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은 조선부문 중간지주사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 연구개발역량을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 집중해 중복투자를 줄이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회사의 ‘경쟁력 강화 방안’은 현장 노동자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사장 보고 인사도 안 해요. 사장 와도 뭐. 상무하고는 맨날 부딪히고 싫어도 인사는 하거든요? 사장은 뭐 모른 척하고 가요.”(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실 A부장)

“바지사장이다 보니까.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보니까.”(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실 B부장)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그룹의 핵심 계열사였지만 물적분할 이후 현재는 여러 자회사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 사장은 현장 노동자에게 신뢰를 잃었다. 예전 현대중공업 사장은 교섭 자리에서 실질적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실권을 가진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9년 임단협을 아직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은 물적분할 이슈로 노사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2020년에는 점거 농성에 참여한 조합원에 대해 해고 및 징계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또다시 입장을 좁히지 못했다. 올해 2월에서야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9·2020년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조합원 찬반투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교섭이 지지부진한 배경에 현장 노동자들은 물적분할이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 가장 큰 게 임단협 문제죠. 회사 자체에서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어쨌든 현대중공업에서 이익이 많이 나야 종업원한테도 돌려줄 게 있을 텐데. 위에 지주사 2개가 있으니까 이익은 다 챙겨가는 거죠. 처음에 법인분리할 때도 현대중공업에는 빚더미만 남겨놓고 돈 다 빼간 거죠. 그러니까 임단협도 해결 안 되고요. 안전 문제도 현장에 투자를 해야 풀리는데 제대로 안 되니까 사람도 계속 죽어 나가고 있고 그런 현실이죠.”(A부장)

“고소공포증이 없었는데 생겼어요”

현대중공업에서 일한 지 21년이 됐다는 A부장은 노동조합 간부로 일하기 전에는 현장에서 고소작업을 맡았다. “원래는 고소공포증이 없었다”는 A부장은 노동조합 노동안전실 간부로 일하면서 겁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다시 거기서 작업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이게 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뒤에 차가 와도 깜짝깜짝 놀라요.” 다른 한편으로 어떠한 무서움은 무뎌지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서) 피를 보면 처음에는 정말 구역질도 나고 그랬는데, 이제는 무감각해요. 피를 보고도 멀쩡하니까 내가 이상하게 된 건 아닌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해 5월 20일 창사 이래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 죽은 산재 사망자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수적으로 통계치를 확인했음에도 46년간 466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1년새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자 수는 3명이 늘어 469명이 됐다.

지난 5월 8일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추락한 현장. 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낡은 안전화가 널브러져 있다.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실 B부장은 방송차에 스쳐 지나가는 사고 현장 사진에서 닳아빠진 안전화 밑창을 봤다. 어버이날 안타깝게 추락사한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용하던 안전화였다. 물적분할의 여파는 나비효과가 되어 중대재해로도 돌아왔다.

“사내하청은 하도급 계약을 하더라도 안전 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요. 오히려 법인분할 이후에 물량팀, 프로젝트팀을 더 활성화 시키겠다고 이야기하고요. 악순환이에요, 진짜. 옛날에 조선 호황기 때 일하신 분들도 안 오시려고 해요. 특히 현대중공업에는 안 오려고 해요. 회사도 인력수급이 잘 안 되니까 폴리텍대학 같은 곳이랑 협의 체결해서 정규직도 아니고 사내하청에 채용할 수 있게끔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하고 있어요. 젊은 인력을 더 싼값에 쓰는 거밖에 안 되거든요? 결국 현대중공업에서 사고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는 거죠.”(B부장)

죽음의 일터, 떠나는 사람들

최근 경제지를 비롯한 주요 언론에서는 한국 조선업 호황이 다시 도래하고 있다는 예측이 여럿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회복된 한국의 수주물량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신규 선박 수요가 끊이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서는 사람이 떠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은 마음이 떠나고,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말이 회복기지. 현대중공업 돈 벌어 봤자 구조자체가, 다 알아요 직원들도. 벌어봐야 위에 지주사들한테 다 넘어가고. 그런 구조를 다 아니까 큰 기대를 안 하는 거 같아요. 제가 21년차인데, 기본급이 200만 원이 안 돼요. 귀족노조라고 알고 계시겠지만 190만 원 초반대입니다. 결혼도 안 한 총각들은 얼마나 적겠습니까? 기본급이 150만 원이래요. 이 사람들 이래가지고 못 살아요. 현대중공업 직장은 안정된다고 하지만 돈이 너무 안 돼요. 그래서 다른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일자체도 그렇고.”(A부장)

“하도급비를 계속 삭감하다 보니까. 원래는 기성금 100%를 받아야 하는데, 늘 100%를 받지 못하고 70%, 60%, 50%. 갑질 아닌 갑질 받으면서 계속 줄여서 받다 보니까. 하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월급도 제대로 못 받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상황이 안 돼서 야간에 택배, 배달 알바하는 분도 많아요. 진짜 많아요.”(B부장)

2021년 5월 31일 서울 계동 현대빌딩 앞에서 현대중공업지부가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공업도시’ 울산에게 현대중공업은 각별하다. 허허벌판이었던 울산 방어진에 현대중공업이 들어오면서부터 비로소 ‘도시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2년 전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현대중공업지부의 점거 농성에 울산 동구 주민들이 강한 지지를 보낸 이유기도 했다. 물적분할이 된다면 더 이상 울산은 현대중공업의 중추 도시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였다. 그 우려는 2년이 지난 현재 일정부분 현실이 된 듯하다.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지만, 울산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계속 나빠지는 일자리와 무관하지 않다.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면 울산 동구 경기도 살아날 거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다단계 하청, 프로젝트팀이나 물량팀은 전국을 돌아다녀요. 조선업체 있는 곳 다 돌아다녀요. 예를 들어서 조선경기가 호황이면 어쨌든 울산 동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경기가 조금 살아날지도 몰라요. 그런데 또 조선경기 불황에 빠지면 그 사람들 다 빠져나가요. 그러면 또 유령도시가 되는 거예요. 계속 악순환이에요. 유령도시 됐다가 사람이 좀 채워지다가 계속 반복이죠.”(A부장)

“아직도 19년에 살고 있으니까”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4월 29일부터 상경 농성을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 현실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올라오지만, 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없지만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투쟁하죠.” B부장은 담담히 말했다. A부장도 “법인분할 과정에서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장기화되는 투쟁 국면에 “힘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몇 년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2019년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에 이어 최근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등 건설기계부문의 중간지주사 건설을 위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지부의 시간은 2019년에 멈춰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러한 회사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

“기업 분할을 하기 전에는 멀쩡한 하나의 회사였던 게 지금은 물적‧인적분할을 해서 이름도 알지 못하는 회사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어요. 회사는 회사 정책대로 가는데 회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19년에 살고 있으니까. 2019년도 임금협상도 아직 안 됐고.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떼이고 고용이 불안해서 언제 회사가 문 닫을지도 모르고.”(조합원 C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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