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실패’ 현중-대조 합병 무산… “새 주인보다 공론화 먼저”
‘예견된 실패’ 현중-대조 합병 무산… “새 주인보다 공론화 먼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1.17 16:31
  • 수정 2022.01.17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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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EU 공정거래위원회, 현중-대조 인수합병 불허… 정부, “새주인 찾기”가 원칙
​​​​​​​노동·시민사회, “재벌 찾기보다 공론화 먼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EU 공정거래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해온 산업은행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노동·시민사회계는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 찾기보다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의 공론화 과정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대우조선지회와 재벌특혜대우조선매각저지전국위원회,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은 17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대우조선 재벌특혜매각 추진 책임 추궁과 대안 모색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민주노총 및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대우조선지회와 재벌특혜대우조선매각저지전국위원회,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17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대우조선 재벌특혜매각 추진 책임 추궁과 대안 모색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예견된 실패,
현중-대조 인수합병

지난 14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과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할 것이라고 알렸다. 현지 시각 13일 유럽연합(EU)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두 기업의 인수합병을 허용하지 않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EU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양 사 합병 시 LNG 운반선 및 초대형유조선(VLCC) 등의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독과점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EU 공정거래위원회는 인수합병 심사 과정에서 현대중공업그룹에 독과점 해소 방안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제출된 방안이 전향적인 판단을 내리기에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2019년 1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이 공식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을 추진한 이후 4년 만에 인수합병 이슈는 종결됐다

정부·산업은행
책임론 대두

이를 두고 노동·시민사회계에서는 ‘산업은행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인수합병 발표 당시부터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빅3체제를 빅2체제로 재편하는 것이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의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특혜 매각’ 시비도 있었다. 2019년 3월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인수본계약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신설해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합병할 계획이었다.

각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승인이 난 이후 산업은행은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 2조 1,000억 원어치를 현물 출자하고 한국조선해양의 신주(보통주 8,500억 원, 우선주 1조 2,500억 원 규모)를 발행받기로 했다. 이어 한국조선해양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조 2,500억 원을 조달해 대우조선해양에 1조 5,000억 원을 제3자 유상증자로 투입한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인수자인 현대중공업그룹은 약 4,000억 원, 한국조선해양은 2,500억 원 정도의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2008년 산업은행이 한화에 대우조선을 매각하려 했을 때 인수가액이 6조 3,00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좋은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은 경쟁 관계에 있는 세계 1위와 2위의 조선소를 결합하는 것으로 독과점이다. LNG 선박 시장 독점 고착화를 지적한 유럽연합에 현대중공업이 해소, 시정 방안을 내놓지 않아 생긴 결과”라면서 “이번 인수합병은 애초부터 현대 재벌의 3세 경영세습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독불장군식으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와 산업은행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해관계자 대화 통해
새 활로 모색해야

인수합병 무산 이후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이 누가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산업은행(대주주)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9년 8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고 2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줄곧 산업은행의 관리체제에 있었다. 산업은행은 2015년 분식회계 사태와 2017년 조선업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7조 1,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한 바 있다. 산업은행의 입장에서 21년간 대우조선해양을 보유하면서 ‘혈세 지원’ 등의 비판을 받은 데 부담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인수 후보 기업으로 포스코, 효성, 한화 등 철강업체 혹은 방산업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철강업체의 경우 후판 등 원자재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점, 방산업체의 경우 대우조선해양이 군함 등 특수선을 생산하는 점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매각보다는 대우조선해양 및 한국 조선산업에 대한 공론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정책 실패를 반추하면서 바로 잡아나가면 된다. 그 첫 단추는 당사자인 노동조합과 지역 경제 주체, 지역 시민사회, 노동계와 함께 공론화 작업”이라면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준다는 등 새로운 재벌을 물색하는 조처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정상헌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정상헌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이동걸 회장,
매각 실패 책임져야

인수합병을 주도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지난 3년간 추진과정 역시 매각에 급급해 기업이 정상화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하지 못했다.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대우조선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올바른 조선산업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동시에 현재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책적으로 책임 있는 산업은행장을 퇴출시키지 않으면 새로운 활로를 찾는 건 무의미하다. 금속노조는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기업결합과 관련된 책임자를 강력히 추궁할 것을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정상헌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지회장은 “2016년부터 시작된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5만 5,000명의 노동자 중 2만 5,000명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잘못된 매각 정책으로 인해 경남지역의 기자재 업체들은 문을 닫았다. 거제의 경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며 “조선업 호황이 온다고 하지만 현장에는 일할 노동자들이 없다. 잘못된 매각을 바로 잡기 위해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금속노조는 20일 목요일 2시 산업은행 앞에서 이동걸 산업은행장 퇴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