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책토론, 선거의 요체일진대
[기고] 정책토론, 선거의 요체일진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1.07 14:28
  • 수정 2022.01.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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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3월 대선에 출마한 거대 양당 후보 사이에 정책토론을 두고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여당은 보다 많은 정책토론을 요구하고 제1야당은 법정 횟수만 채우자 한다. 토론의 횟수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 토론의 본질과 사회와 선거에 대한 의미를 따져보는 일이 정치공학적 명분과 숫자 싸움의 뒷전에 밀려나 있다. 민주주의의 요체가 선거라면, 선거의 요체는 정책토론일진대. 

후보의 철학과 정책을 비교해보고, 좋은 대통령감을 선택하고픈 유권자의 갈망이 크다. 국내외 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가 각종 난제를 민주적,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 가늠해보고 싶어서일 터다. 

세계 최고속 고령화와 잔존하는 양극화, 분단과 70년 지속된 휴전 상태, 경제와 사회의 디지털·그린 대전환, 미중 경제·군사 패권 경쟁 등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엄혹한 여건이며 나라의 명운을 가를 막중한 과제들이다. 정책 결정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벤치마킹으로 선진국 따라잡기에 능하던 한국이 코로나19 방역대책처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자리바꿈 중이다. 

경험에 의존하거나 벤치마킹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여기서 의사소통론의 창시자 하버마스의 견해는 귀 기울일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을 토론에 기초한 의견 및 동의의 형성으로 개념 정의하고, 다음의 원칙을 따르는 토론과 결정에 기초한 토의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①누구의 참여도 배제하지 않는 개방성, ②자유로운 입장 표명과 이의 제기, ③목표는 합리적인 동의. 

하버마스에게 정책결정은 공론의 장에서 집단지성에 기초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도출된 동의다. 한국 대선의 정책토론은 다양한 전략·전술을 상정하고, 불확실한 여건 아래서 우리 나름의 실현 가능성과 미래 비전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전략적으로 도출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집단지성에 기댄 토론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연속되면 불확실성이라는 리스크도 관리 가능한 변수가 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민주적, 효과적 정책결정 과정으로써의 토론은 몇 가지 특성을 가진다.  

첫째, 토론은 개방적인 쌍방향성 소통이다. 예컨대, 후보 등 ‘일방이 자기 의견을 밝히고 전문가나 국민은 판단’하는 식의 일방향성은 토론이 아니다. 누구든 참여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이의를 제기할 기회가 봉쇄되기 때문이다. 차이의 인정, 동등한 입장, 그리고 양방향성이라는 의미에서 토론은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둘째, 토론의 목표는 합리적인 동의다. 물론 토론이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지만, 이것이 토론의 본질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무너뜨려야 하는 특정한 토론 환경이나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참여자의 개성 탓일 터다. 참여자들이 상호 자유로운 의견 표명의 권리를 존중하며 결론을 예단하고 있지 않다면, 다툼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합리적인 동의, 즉 타협에 이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대선후보 간 정책토론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셋째, 불통은 토론의 최대 장애물이다. 토론은 이해관계가 판이하게 다른 쪽이라도 참여를 배제하지 않고 쌍방향 논의를 통해 결국에는 합리적인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자기만의 경험이나 인식세계에 갇혀서 특정인(집단)을 배제하거나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은 토론이 불가능하기 십상이다. 정치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가 토론을 통해서 이해관계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것일진대, 토론을 거부하거나 불가능한 정치인이라니. 

세상은 급변하고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지만 토론과 타협의 문화는 아직 한국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의 일부는 과거로의 회귀로 이해될 언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제계도 토론과 타협의 역량이 충분해 보이진 않는다. 일례로 국내 굴지의 두 기업(L, S)은 2년여에 걸친 분쟁을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 바이든 정부의 중재 겸 압력에 밀려 벼랑 끝에서 마무리했다. 분쟁의 초기 단계에서 미국 법원으로 가기 전에 국내에서 제대로 된 타협과 조정의 과정을 거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위가 현실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토론이나 타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토론은 쓸데없는 ‘말싸움이나 시간낭비’며, 타협은 ‘비겁한 일’이라는 따위의 사고는 지금의 한국 같은 민주사회엔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것이다. 인식의 전환을 위해 공론화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선거절차 등 형식적 민주주의와는 달리 토론, 협상, 타협 등 민주주의 사회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치교육은 아직 미진한 수준이라서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조기에 민주주의를 지금보다 더 많이 배우고 실천을 경험하도록 제도화하자. 그러면 그들이 주도하며 살아갈 시대에는 직장 민주화는 물론 사회 전반의 실질적 민주화도 성큼 당겨져 올 수 있을 터다. 토론, 협상과 타협 중심의 정치교육을 필수 교육과목으로 지정하는 등 조기 정치교육의 활성화를 교육개혁 관련 주요 공약으로 채택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