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통령 선거와 일하는 MZ세대
[기고] 대통령 선거와 일하는 MZ세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1.11.07 18:43
  • 수정 2021.11.07 1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소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소 원장

대통령 선거철이다. 청년, MZ세대가 주요 화두다. 수많은 청년정책이 만들어지고, 또 집행되고 있지만 청년의 삶은 전례없이 팍팍해서일 거다.

공약의 공통분모는 일자리, 출발자금, 집, 육아, 교육 등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대부분이 MZ세대의 부모이면서, 일부를 제외하곤 어릴 적에 절대빈곤을 겪었단다. 그래선지 공약이 삶의 물질적인 여건 마련으로 모인다. 내 아이들에게 못다 해준 걸 나라가 채워주겠다니 고마울밖에.

물질적인 것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보자. 청년이 일자리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를 실현해 줄 방안은 없을까?

일하는 MZ세대가 세상사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은 ‘공정성’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MZ세대 정규직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핵심은 시험이라는 경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과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인 정규직 일자리를 공유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올해 초 반도체기업 S사의 MZ세대 직원이 회사 대표와 전체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회사의 호실적과 또 다른 S사에 견주어 성과급 수준이 낮고, 산정방식도 불투명하다는 항의였다. 이들의 공정한 보상 요구는 이후 다른 업종 대기업으로 확산됐고, 공정성은 MZ세대를 상징하는 가치가 됐다.

공정성이란 가치가 뭔지 조금 더 들여다 보자. 앞의 사례가 시험의 합격이고 뒤의 사례가 회사의 호실적으로 성과의 종류는 다르지만, 그에 대한 보상이 공정해야 한다는 점은 같다. 공정한 보상이 중요한 사회적 가치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험의 성과라는 공정성과 관련해 눈여겨볼 게 있다. 정의론의 권위자 마이클 샌델을 인용치 않더라도, 개인이 달성한 성과가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나 사회적 여건에 큰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라는 건 분명하다. 요컨대,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개인주의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랜 친구가 대통령 선거 얘기 중에 던진 한마디. 성과를 내면서 몇 년 일하다 다쳐서 퇴사하면 50억 원 정도 보상해주는, 그런 세상을 공약하는 후보에게 자기의 귀한 한 표를 던지겠단다. 애들도 그럴 거란다. 좀 허황되긴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마냥 탓하거나 농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절묘한 비틂이다. 50억 원의 공정한 근거를 찾던 나의 노력도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공정과 반대로 불공정은 특정 개인, 기업이나 집단으로 환원되면 좋겠다.

MZ세대에게 가장 많이 요구되는 역량이 디지털 역량, 창의성, 자율성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에게 창의성과 자율성까지 요구하는 이유는 뭘까?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탈탄소체계의 형성, 그리고 두 변수의 혼합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경영환경의 변화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라면, 기성세대의 경험은 무의미해진다. 대신 창의적 비전 제시, 문제 해결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준비와 역량이 필수 불가결해진다. 이런 역량을 가진 신입사원을 찾고, 기존 직원의 향상훈련도 기획, 진행하고 있으리라.

키운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더 중요하다. 최근 젊은 노동자 일부가 ‘위드 코로나’를 걱정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자기가 할 일은 다 하고 ‘칼퇴’와 여가를 선호하는 젊은이의 개성을 삐죽삐죽 모난 돌로 보고, 조직에 잘 포섭될 ‘원만한 인성’으로 바꾸기 위해 정으로 내리치던 ‘코로나 이전’ 시기의 경험을 반복해야 한다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인 듯하다. 결국 일부 상사나 조직이 창의성과 자율성의 바탕에 깔린 개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개성을 없애면서 차별성 있는 창의성을 기대하고, 정으로 내려치면서 자율성을 기대한다. 네모난 바퀴처럼 형용모순이다. 간섭과 감독은 복종을 끌어낼 수 있지만, 이 복종은 악의적인 것일 수 있다. 허브 코헨에 따르면 ‘악의적 복종’은 ‘시키는 대로만 시행할 뿐’인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이럴 경우 지시자가 경험하지 못해 시킬 수 없었던 내용, 즉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창의성이나 자발성은 공염불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하는 방식의 결정에 더 많은 자유를 주고, 홀로 설 기회도 제공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유를 제약할 규정까지도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허용하라. 요즘 신조어 중에 ‘마싸’라는 말이 있다. ‘마이싸이더(my sider)’를 줄인 말로 사회 평판이나 기준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마싸’가 아닐 바에야 자율적으로 정한 규율 내에서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하다 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다. 세대와 무관하게 인간으로서의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권의 문제다. 일하는 모두를 위한 산재예방이 노동정책의 최고 규범이지만, 현실은 꼭 원칙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여당 대표조차 경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의 산업현장은 하루에도 6~7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전쟁터 같다고 했다. 일하다 사람이 죽어도 ‘그런가 보다’ 하는 무감각과 책임져야 할 일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몰염치가 근원이다.

대통령 선거는 세상사 중에서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해서 국민 모두에게 고루 적용할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권력, 그중에서도 최고 권력을 선출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신변잡기나 말꼬리 잡기 등 본질에서 벗어난 것에 매몰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청년을 단지 표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바꿀 정책을 내놔야 한다.

청년의 삶을 위한 물질적 여건 개선도 물론 중요한 일이다. 더불어 이와 함께 공정과 불공정, 개성 및 자율성, 생명 존중 등 MZ세대의 중요 가치를 심층 토론하고, 당선된 후엔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해주기를 바란다. 그야말로 ‘힙’한 대통령 선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