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요금과 에너지 전환 정책
[기고] 전기요금과 에너지 전환 정책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6.08 22:27
  • 수정 2022.06.0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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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한국전력의 2022년 연간 적자가 2021년의 5배에 이르는 30조 원일 전망이다. 코로나19로부터 경제 회복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치면서 석유,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의 세계시장 가격이 2~3배 급등한 탓이다. 이 충격은 전기요금 결정체계에 대한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 정권교체는 논의의 범위를 에너지 정책 방향 등으로 확산시켰다.

전기요금 결정체계 : 민영화/시장원칙과 공정한 분담

한국 전기요금 결정체계의 특징은 전력 판매회사인 한국전력이 구입가격 인상분을 판매가격에 전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로 한국전력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회사에서 구매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은 발전방식 중에서 가장 비싼 LNG 발전이 기준이지만, 판매가격은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묶여있다. 후자는 물가관리와 산업입지 경쟁력 강화 수단의 하나로 오랫동안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지만, 한국전력이 재정 건전성 악화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원인 제공자기도 하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일각에서 한국전력공사의 지배구조 민영화를 거론하기도 한다. 여기서 “민영화”가 한국전력의 가격 부담을 가정이나 산업 등 최종소비자에게 전가할 자유를 뜻한다면, 이는 사회의 높은 수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민영화가 대표적인 필수재이며 공공재인 전기요금에 대한 국가의 공정한 분담 중심의 통제는 물론 효과성이 큰 경제정책 수단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도입된 원가연동제의 안착,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전기위원회의 전문성 및 독자성을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으로 강화하는 등 제도운영의 개선이 주요 과제에 속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SMP 상한제 도입은 평가할 만하다. 이 제도는 최종소비자에 대한 충격은 최소화하면서, 그동안 한전이 혼자 부담하던 연료비 급등의 부담을 발전사와 분담하는 전략의 표현물이다. 남은 정책 과제는 이 전략이 관련업계 일부에서 우려하는 “전력 생산체계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분담의 공정성 확보 등 발전 생태계의 회복력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결국, 제도운영의 개선을 통한 한국전력의 재정 건전성과 산업입지 경쟁력 사이에서 균형 찾기가 전기요금 결정체계 개편의 핵심 원칙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21번, 즉 “시장원칙이 작동하는 전력 요금체계 조성”도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터다.

에너지 정책 방향 : 재생에너지 vs 원자력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본 방향은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조화’다. 

원자력 발전 강화 전략은 석탄, 가스, 재생에너지가 연료인 발전방식보다 원자력 발전의 경제 및 공간 효율성이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통한 발전량 확대와 전기요금의 중장기적 안정 등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려면 신중히 고려할 점이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형모듈원전(SMR)일지라도 원전의 신축은 계획 수립에서 부지 선정 및 매입, 착공에서 준공까지 평균 10년,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도 기기의 점검과 정비, 안정성 평가에 5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성공요인인 원전 건설기간 단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인 안전을 간과하는 핑계가 되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원전 강화가 윤석열 정부 5년 내내 실질적 혜택 없이 에너지 전환 정책의 혼선 내지는 추가 비용만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정부의 치밀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원자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와 조화’라는 정책 기조는 투자재원의 선택과 집중을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보다 확대 압력의 축소로 읽힌다. 이는 한국전력의 재무구조 개선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터다.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제도(RPS), 석탄발전 감축비용, 탄소배출권(ETS) 이행비용 등 에너지 전환 관련 기후환경비용에 절약의 여지가 생겨서다. 그렇지만 개별 공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이 이상기후 대비책으로서의 탄소중립 전략의 후퇴 내지는 포기로 이어지지 말아야 한다. “조화”는 오히려 탄소포집저장, 에너지의 장기저장기술 등 전력 분야 탄소중립에 필요한 첨단기술의 개발과 상용화 투자의 강화와 어울리는 개념이다. 만약 전기요금에서 기후환경비용을 삭감 내지는 삭제한다면, 일반회계 등 대체 투자재원이 마련돼야 한다.

에너지 수요 감축의 중요성

앞서 보았듯 논의 중인 정책 대안은 주로 전력의 공급 측면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전력의 소비 측면을 간과한 논의는 효과성과 효율성 모두를 담보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은 주요 외국과 비교해 전력 소비의 효율성 제고에 뒤진 나라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OECD 주요 회원국의 1인당 전력소비량이 2001년에는 한국보다 많았지만, 2019년에는 역전된 상태다. 한국의 전력 및 에너지 효율성이 그만큼 개선의 여지가 크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독일은 작금의 에너지 가격 폭등과 관련해 한번 포기한 원전에 다시 기대기보다 그린수소,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 투자와 전력 소비의 대폭 절약을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에너지 효율성이 낮은 건물을 임대할 경우 이산화탄소 관련 비용을 임대인이 임차인보다 많이 부담하도록 관련 법령을 제·개정하고, 이미 시장에서 관철된 건축물 에너지 효율화 지원책은 종료했다. 그리고 최근 가격 급등에 따라 잘못된 선택으로 판정된 가스냉난방 촉진책을 종료하고 신축 혹은 교환하는 냉난방기의 65%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계획을 마련했다. 

독일 사례의 시사점은 한 번 정해진 정책 방향은 일시적인 위기를 직면하거나 집권당이 바뀌더라도 균형감을 유지하며 이어가고, 과거의 실패에서 성찰하며 정교하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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