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자리에서 사람으로 : 노동정책의 보호대상 전환
[기고] 일자리에서 사람으로 : 노동정책의 보호대상 전환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2.01 18:56
  • 수정 2022.02.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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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디지털 노동이나 특고 일자리는 늘어나는 반면, 정규고용관계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그린전환은 내연기관이나 화석연료 관련 일자리를 없애거나 친환경형으로 바꾸라고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에 대한 대전환의 의미는 불확실성의 가속화다. 강조하고픈 것은 일자리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의 삶은 그 이상으로 불안해진다는 점이다. 일자리 보호의 필요성을 누가 부정할까만, 차제에 정책의 보호 대상을 일자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이 일자리에서 삶으로 직결되는 고리를 끊자는 뜻이다.

노동의 현실과 노동정책의 괴리

디지털 노동이나 특고는 정규고용관계에 속하지 않는 일자리다. 일자리의 성격 때문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임금, 근로조건의 차별을 겪고, 고용·산재보험조차도 일부만 임의가입 형태로 가입할 수 있다. 비중이 커지는 비정규직엔 무(혹은 부분)보호, 작아지는 정규직엔 전면보호. 제도적 보호의 필요성과 보호 범위의 역설이다. 최근에 수정·보완되곤 있지만, 아직도 일자리에 따라 제도적 보호는 ‘all or nothing’ 현상이 지배적이다. 

제도적 여건이 이렇다 보니 일자리 보호의 역설도 드러난다. 대부분 노동정책의 시행은 기업의 부담 능력을 고려해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 공기업에서 먼저 시작한다. 중소기업엔 이보다 늦게, 때론 대책의 강도를 누그러뜨려 시행한다. 심지어 5인 미만 기업은 적용이 아예 제외되기도 한다.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기업규모별 양극화 현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기도 한다. 일자리 보호가 야기하는 노동정책의 역설이다. 

노동시장 행위자의 특정 행위도 제도적 모순을 강화한다. 일자리조차 지킬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비정규 노동자와 달리 대·공기업 내부자에게 정규직 일자리는 힘써 지킬 대상이다. 일자리 구조조정 계획은 노조의 강력한 저항과 노사 간 타협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일부 젊은 세대는 진입경로가 다른 노동자에게 공정성을 명분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많은 구직자의 목표도 이런 일자리 구하기다. 노동시장 행위자들이 이처럼 자기일자리 중심으로 행위하고, 정책의 중점마저도 이런 일자리 우선 보호라면 양극화 해소는 언감생심. 

일자리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앞선 문제를 해결할 전략의 방향으로 ‘일자리와 무관하게 나라의 격에 맞는 사람의 삶’을 제안한다. 아래는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의 경우, 일자리가 없든 있든, 그리고 어떤 일자리에서 일하든 선진국이라는 국격에 맞는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해지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개혁 과제다.

우선, 일자리가 없더라도 기본생계, 직업훈련과 구직을 지원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 사이에 마련된 국민취업지원제도,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전국민평생직업능력개발제도 등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국민 누구든 일자리 없음의 사회경제적 비용, 즉 해고, 실업, 빈곤을 개인 전담에서 사회 분담으로 전환하는 데 더해서 실업급여 소득대체율 인상과 청년의 최초고용을 국가가 책임져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어서 어떤 일자리에서 일하든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하자면, 일자리별 격차를 최대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에 따른 사회적 낙인이나 특정 일자리 유형에 대한 집착 등을 해소할 가능성을 키우기 때문이다. 격차의 완화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가능할 터다. 기업 차원에서 노동자의 집단적 보호, 사회 차원의 대화와 타협, 정부 차원의 개별적 보호.

대·공기업에서 근로조건의 집단적 결정은 노사자율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사용자는 기업 간, 직렬 간 공정성 확보와 ESG경영에 충실하고, 노동자와 노조는 자기일자리 중심성에서 벗어나 내·외부 연대로 활동 방향을 잡아야 할 터다. 정부의 역할은 룰이 공정한 관리와 대기업 노사의 결정이 사회적 요구에 부합할 때만 지원하는 것에 제한돼야 한다. 그리고 공기업의 실질적 사용자인 정부가 모범사용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가 중점을 두고 강력 추진할 과제는 특고, 디지털 노동 외 비정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소득 및 고용안정성을 제고해 일자리 유형별 보호의 차이를 완화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특성인 고용불안정성을 보상할 방안을 마련하고, 근로자대표선출 관련법을 국회와 협력해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후자는 근로조건의 집단적 결정엔 노사협의가 필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중소영세기업엔 노조가 없어서 발생하는 노조 없는 노사협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노사가 중심이 되고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으로 기업규모별 격차를 줄일 방안을 도출하자. 대·공기업의 근로조건을 하향 조정해 중소기업과 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이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현행법상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은 원칙적으로 노동자나 노조의 동의가 필요해서다. 오히려 상향평준화 중심의 하이로드 전략으로 전환을 논의해 볼 때다. 세계 10대 경제강국, 선진국 진입 등 거시경제의 성과가 좋을 때가 거시경제의 운영기조를 바꿀 좋은 기회다. 기업이나 국가가 전환비용을 감당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서다. 

실사구시 정신과 정권의 명운을 건 실천

개혁의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의 공정한 분담과 이해관계의 민주적 조정이 필요하다. 과정 관리에서 필요한 것은 실사구시 정신이다. 고위관계자 원탁회의보다는 현장에서 해결책을 찾자. 대통령의 공약과 정책의지가 일선 9급 공무원의 손에서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는지 현장에서 상시 점검하고 관계자와 국민이 현장의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도 구축·운영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의 새롭고 중요한 과제다. 

두루 알다시피 어떤 개혁이든 기득권의 끈질기고 강한 저항에 직면한다. 실제로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명분으로 그 보호책을 뿌리부터 흔들어대는 것이 현실 정치의 일상사다. 집권세력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토론, 설득, 합의점을 도출해서 개혁 목표를 달성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당위성에 근거한 모든 목표는 탁상공론에 불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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