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환경에서 사회로, 택소노미의 확장을 위해
[기고] 환경에서 사회로, 택소노미의 확장을 위해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7.05 14:58
  • 수정 2022.07.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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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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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지난 대선 정책토론회를 되돌아보면 ‘택소노미’(Taxonomy, 분류체계)라는 말이 맨 먼저 떠오른다. 그때까지 생소했던 이 개념을 한 개인의 ‘유식함’과 ‘무식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데 필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택소노미가 한국 사회에 새로운 의제로 등장한 것은 분명하다. 대선 이후에는 심지어 유럽연합(EU)의 택소노미 관련 결정 하나하나에 한국의 여론과 정치권이 일희일비하는 모양새다.

2022년 2월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원전과 천연가스를 자금 조달에 이점을 주는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하는 이행규정(Delegated Acts) 개정안을 승인, 의회와 이사회의 입법 절차에 상정하자 한국의 원전 찬성론자 쪽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반대로 6월 15일에는 유럽의회의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식품보건위원회의 합동회의가 개정안에 반대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이번에는 원전 반대론자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7월 초 개최될 유럽의회 전체회의의 최종 결정은 누구의 목소리를 더 키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연합의 ‘사회 분류체계’(social Taxonomy)

필자의 주된 관심은 원전이 녹색 분류체계에 속하는지보다 유럽연합의 ‘사회 분류체계’에 더 쏠린다. 원전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지난 6월 게재한 칼럼(‘전기요금과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다. ‘사회 분류체계’는 2022년 2월 ‘유럽연합 지속가능한 금융 플랫폼’(EU Platform on Sustainable Finance)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보고한 권고안의 키워드다. 권고의 목표는 환경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대한 금융 투자의 촉진을 위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에 대한 명확하고도 통일된 분류체계의 제시다. 이는 탄소중립 중심의 전환에 필요한 자금조달에서 ‘녹색위장행위’(green washing)는 물론 ‘사회적 위장행위’(social washing)도 방지하겠다는 정책 의지의 발로다. 

여기서 관심을 둘 것은 유럽연합의 분류체계 정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큰 물결이다. 2020년 6월 발표된 기존 분류체계의 6대 환경목표는 기후변화 감축, 기후변화에 적응, 물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사용과 보호, 순환경제로 전환, 오염방지 및 통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와 회복이다. 이와 달리 권고안은 기후 및 환경 규정에서 사회 규정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그를 통해 달성코자 하는 사회목표를 다음의 세 가지로 설정한다. 양질의 일자리, 소비자에게 적절한 생활 수준 및 복지 제공,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지역과 사회. 

녹색 분류체계에 사회목표의 설정은 탄소중립 전환을 촉진하는 데서 환경목표와 사회목표를 통합적으로 달성하는 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경제활동에 투자가 집중되는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다시 전환의 과정에서 산업 및 노동시장 정책이 금융 정책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튼, 유럽연합의 환경 분류체계의 사회 분류체계로 확장의 다양한 의미가 아직 환경에 제한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한국의 분류체계 정책에 시사하는 바 크다.

‘K-택소노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가 달성코자 하는 목표는 유럽연합의 환경 중심의 기존 분류체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환경부가 2년에 걸쳐 산업계, 시민사회 등의 의견수렴을 해 2021년 12월 발표한 6대 환경목표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순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이다. 이 목표에 이바지하는 녹색 경제활동으로 재생에너지 생산, 무공해 차량 제조 등 ‘녹색부문’ 64개와 ‘전환부문’ 5개 등 총 69개가 지정됐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은 불포함, 천연가스는 전환부문에 2030년까지 한시적으로 포함됐다. 이 분류체계를 활용한 금융권 시범사업(채권,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여신, 투자 등 금융상품에도 확대하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공개에도 적용을 검토한 바 있다. 

사회 분류체계가 탄소중립 중심의 산업전환에 필요한 환경 및 노동·사회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정착하려면 수많은 논의와 결정이 필요하다.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할지 여부, 사회 분류체계 개발 및 규정화 등에 대한 유럽의 사회적 논의와 유럽연합의 결정이 아직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원전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분류체계를 개정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유럽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분류체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와 결정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 

열린 사회적 논의의 공간에 필자가 던지는 화두는 하나다. 분류체계에 포함 여부, 즉 자금조달에서 이점을 주는 기준을 경제활동에 제한하지 말고 사회경제적 제도로서 기업의 전체 활동을 포괄해야 한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이 글의 결론을 갈음한다.

앞서 보았듯이 유럽연합 사회 분류체계의 핵심 목표 중 하나가 ‘양질의 일자리’다. 일자리의 질을 판단하는 보편적 기준은 고용과 소득 안전성,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 노사협의 및 노조의 임금 및 단체교섭권 인정, 각종 차별금지, 일과 가정의 균형, 그리고 생명존중의 산업안전관리 등이다. 이 기준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기고 있는 기업이 생산하는 서비스나 제품이 환경기준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자금조달 등에서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것이 사회적 위장행위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자금조달에 이점을 제공하는 이유는 공정한 전환의 촉진이다. 그래서 ‘일자리 없는 기후·환경 개선’이나 ‘나쁜 일자리 기반의 기후·환경 정책’은 공정한 전환의 수단일 수 없다. 요컨대, 유럽연합이든 한국이든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 여부의 판단을 경제활동에만 의존하는 것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방법론적 하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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