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초고령사회와 기후위협이 ‘1+1’, 나경원 사태의 또 다른 실상
[기고] 초고령사회와 기후위협이 ‘1+1’, 나경원 사태의 또 다른 실상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2.02 17:19
  • 수정 2023.02.0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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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겸 지구환경대사)이 여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20여 일 동안의 ‘나경원 사태’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여권이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인 온갖 치부는 쉬이 가려지기 어려울 듯하다. 나 전 위원장의 정부직을 유지하며 정당직 저울질하기,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파상공세와 여당 초선 의원들의 내용 확인 없는 비판 연판장 서명하기 등 일사불란한 “집단린치”(윤상현 의원)는 빙산의 일각이다. 오죽했으면 친여당 성향의 한 보수언론조차 “‘나경원 사태’ 여권의 치부 드러낸 집단 참사”(중앙일보; 2023.01.26.)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사태의 전말을 상술하며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설까.

‘나경원 사태’에서 필자의 특별한 관심을 끈 주제는 다른 데 있다. 그가 해임되기 전에 수행하던 두 개 과제의 막중함과 그 과제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가벼운 처신이다. 과제의 막중함과 처신의 가벼움을 대비해 정치인의 공직에 대한 인식과 처신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는 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은 위원장(대통령)의 뜻을 받아 인구구조 문제를 해결 내지는 완화하기 위해 7개 부처의 다양한 정책과 민간전문가의 의견을 종합, 장기계획을 마련하는 자리다. 과제의 출발점은 한국이 2022년 현재 세계 유일의 합계출산율 1 미만(0.81)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초저출생으로 인해 2020년부터 인구의 자연감소 시작,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 산업현장의 생산인구 감소 및 고령화, 경제성장 및 사회보장제도의 위기는 물론 ‘인구 소멸 국가 1호’가 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 위원장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사안이 엄중하고 과제가 막중해 민간도 포함하는 국가 차원의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는 2022년 펴낸 저서에서 ‘국가 대개조’라는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설파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다루어야 할 위원회가 일부 정치인의 가벼운 처신으로 말미암아 집권 정당의 권력 다툼에 휩쓸리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국민의 분노 혹은 냉소를 여권 정치인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이나 할까?

지구환경대사는 기후환경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문성과 인지도를 겸비한 인사에게 부여하는 직명이다. 그가 다루어야 할 과제의 출발점은 한국이, 기상청 보고처럼 1980년부터 30년 동안 기온상승 폭이 세계 평균(0.84℃)보다 1.5배나 빠르다(1.22℃)는 사실과 ‘기후행동추적’으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 악당”으로 지목된 바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전례 없는 자연재해로 재산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국민과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수용되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외교 측면에서 국제적인 혹평을 극복에 이바지해야 하는 막중한 일을 저출산고령사회 관련직에 덤으로, 즉 ‘1+1’로 전직 국회의원에게 덜컥 쥐여주었다. 4선의 원내대표를 지낸 여당 중진, 외교적 측면에서 정부 지원이라는 부담이 작은 일, 무보수 명예직 등을 모두 고려해도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 

두루 아는 것처럼 저출산·고령사회, 이상기후·지구환경은 그 사안의 막중함으로 인해 정책적 사고가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피할 수 없는 여건인 동시에 시급한 과제에 속한다. 게다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나라 경제와 사회 전반의 작동 논리와 기제를 그 본질에서부터 위협하는 시급한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나경원 사태’가 드러낸 인사의 문제와 정치인의 처신은 아쉽기 그지없다. 

임명권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과제의 막중함과 관련 정책의 생성 및 부처 간 조율, 대국민 소통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두 자리를 한 사람에게 땡처리하듯 맡기지 않았어야 한다. 물론 나 전 부위원장 해임 후 2명의 전문가를 속전속결로 위촉 및 임명해 과제 수행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한 조치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나 전 부위원장의 셈법에선 해당 정부직 두 자리의 가치가 정당직 한자리의 가치보다 작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사태’는 정치인들 사이에 팽배한 공직에 대한 인식과 처신을 잘 드러내 보인다. 방대한 예산과 조직이 없는 자리는 “실권 없는 자리”며, 이런 공직은 과제의 무게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를 엄밀히 따지기보다 전리품 나누듯 나누고, 이를 받은 쪽에서는 과제 수행에 전념하기보다 “실권 있는 자리”를 기다리며 임면권자 눈치 살피기 바빠 보인다. 필자가 과문한 탓에 잘못 판단한 것이면 다행이겠다. 그런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돈과 권력만을 탐하는 사심으로 가득 찬 정치인들의 인식과 처신은 그들이 늘 그렇게도 힘주어 말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인의 자세”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주권자 국민이 이런 정치인들에게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하고, 다시는 권력을 위임하지 않겠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염치가 있는 정치인은 대오각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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