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흔들리는 촛불과 반노동의 역공
[기고] 흔들리는 촛불과 반노동의 역공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3.04 10:05
  • 수정 2022.03.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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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다. 촛불이 집권의 기반이고 촛불의 힘으로 적폐청산, 사법개혁 등 난제를 개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은? 문재인 촛불정부가 노동 분야에서 이룬 성과와 한계는 이렇게 줄여서 평할 수 있다. ‘아쉬운 것도 많고 해결 과제도 잔뜩 남겨 두었지만, 어려운 여건 아래서 할 만큼 했고 나름의 성과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촛불의 힘을 뒷배 삼아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1만 원’ 정책을 몰아쳤고, 일정한 성과도 이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세대 간, 고용형태 간 갈등을 숨길 순 없다.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국민고용보험제 및 국민취업지원제 도입이 그 뒤를 이었다. 일하는 사람의 소득 및 고용 안정과 생명 존중의 노동철학이 구체화되는 동시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대비하는 법·제도의 정비라는 의미도 있다. 

노동배제에서 노동존중으로 전환을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ILO 핵심 협약 비준, 공무원노조·전교조·사립대학교수노조 합법화 등 단결권 확대, 특고·플랫폼노동자 보호법 추진 등이 그것이다. 행정부로서의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에 대한 진심은 정당한 노조활동에 대한 공권력의 노골적인 탄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개혁의 열기가 정점에 도달하던 시점에 코로나19가 한국을 강타한다. 국민과 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다한 덕분에 노동시장은 2021년 말 고용충격에서 벗어났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12월 현재 취업자 수가 2,730만 명으로, 고용충격이 시작된 2020년 2월 대비 100.2%를 기록했다. K-방역으로 주요국에 견주어 충격이 애초에 작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고용회복력이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촛불정부가 촛불시민의 뜻을 받아 노동 분야에서 행한 것도 많고 성과도 분명하지만, 코로나19 극복에 조직과 예산, 그리고 정치적 노력을 집중하는 바람에 차기 정부에 녹록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차기 정부는 앞서 언급한 법과 제도의 개혁을 산업현장에 안착시켜 노동자가 개혁의 결과를 피부로 느끼게 하고 코로나19의 영향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 시대에, 모든 조건이 지금과 동일하다면, 양극화는 완화보단 심화될 전망이다. 취약계층이 더 먼저, 더 강한 충격을 받고 회복에선 뒤처진 까닭이다. 민간의 비대면·디지털 전환 관련 서비스업과 공공부문의 보건복지 등에서 청년과 상용직 일자리가 회복을 주도했다. 이와 달리 숙박·음식업,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등 대면노동 중심의 저임금, 저학력, 중소·영세기업이 집중된 분야에 코로나19의 충격이 특히 컸으며, 누적된 피해의 회복조차도 아직 미진하다.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부각됐지만, 기존 사회지표별 양극화는 유지 혹은 심화되는 셈이다. 여기에다 기후이상 위협에 직면한 화력발전업, 내연기관 자동차부품업 등 전통산업의 일자리 문제는 분명히 추가적인 양극화 심화요인이다.  

다음 정부는 헌법정신에 따라 쾌적한 환경에서 살며 일할 권리와 적정임금,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근로조건의 보호와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 증진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국가의 의무다. 해결이 보다 어려운 문제는 노조를 통한 근로조건의 자율적 집단적 보호에 관한 사안들이다. 

특고 및 플랫폼노동자 등 기존 노동법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의 실질적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전일적, 종속적 고용관계에 기반을 둔 현행 노동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논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복잡한 사안이라서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노조 조직률이 전반적으로 상승했지만, 정작 노조를 통한 집단적 이해관계 관철이 절실한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조직률은 매우 낮다. 전체 임노동자의 60%가 일하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조직률은 0.1%에 불과하다. 조직률 제고가 오롯이 노조의 문제라면 손배 및 가압류 등 법률적 수단이 단체행동권에 미치는 실질적 통제 문제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 정부가 노사의 의견을 들어 국회와 조율을 통해 해결의 가능성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불평등 해소의 유력 수단인 단체협약 적용률 제고 방안도 포함된다.   

노동문제를 둘러싼 난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이 과정에서 촛불에 타버린 것 같았던 세력이 다시 세를 모아 나서고 있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다수라는 데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한 그들의 노동정책 기조는 시장 중심의 유연화와 반노조다. 촛불정부 직전 두 정부의 기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주120시간 노동, 주52시간제 폐지, 최저임금제 철폐 등 주요 공약의 기저엔 하나 같이 노동운동과 사회·정치적 발전의 성과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물론 비판적인 논란이 커지자 발언의 취지와 다르다며 운영의 유연화 쪽으로 피해나가긴 했지만...

공무원·교원노조의 근로시간 면제제도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도 추진 의사에 대해선 소속당에서조차 “노조 구애에 골몰”, “노조 기득권 포퓰리즘” 등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노동자가 감히 경영에 관여?’ 경영참여라는 발상 자체에 적대감을 보이는 것이다. 노조에 대한 적대감에선 또다른 야당 후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촛불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기에 ‘미완의 춧불혁명’에 배신감을 느끼거나, 부동산 정책에 실망하고, 여당 후보가 마음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노동개혁의 모든 성과를 해체하고 과거로 되돌리려는 힘에게 노동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그들이 개혁의 성과를 디디고 서서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해 나갈 역량과 의지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과문한 탓이겠지만, 지금까지의 공약, 연설 및 토론회 내용에선 충족되지 않는 근거 없는 기대에 불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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