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의 본질과 저항
[기고] 혁신의 본질과 저항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09.05 11:59
  • 수정 2022.09.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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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디지털 혁명,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복수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급성장한 비대면 산업은 경제와 산업의 전환에 속도를 더한다. 게다가 개혁의 이름으로 각종 정책도 바뀌고 있다. ‘혁명’, ‘전환’, ‘개혁’의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만큼 불안감도 확산하고, 노동계 일각에서는 크고 작은 저항이 조직되기도 한다.

일부는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혁신의 필요성을 말한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러한 현상은 혁신의 필요성 구성요소가 아니라 기업, 경제와 사회 전반에 이미 혁신이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행 중이라는 증거다. 관건은 혁신의 시작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혁신의 관리다.

혁신은 슘페터의 영역이다. 케인즈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양대 경제학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되는 슘페터는 수학이 지배하던 거시경제모형 중심의 경제학에 ‘기업가’와 ‘혁신’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다. 그에게 혁신은 기업가가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생산요소를 새롭게 조합해 “산업적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기존 구조의 파괴와 새로운 것의 창조라는 의미의 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도화선이며 맑스의 혁명(Revolution), 다윈의 진화(Evolution)와도 많은 부분에서 맥을 같이 한다. 

혁신(革新·Innovation)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표준국어대사전)이며, 한자로는 ‘가죽 혁(革)’에 ‘새로울 신(新)’, 즉 ‘가죽을 새롭게 만든다’라는 의미다. 이렇듯 혁신이라는 말은 가죽을 완전히 새로 바꿀 때의 고통을 내포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터.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가가 혁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보다 생산성 향상과 경쟁자를 파괴할 힘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독점이윤 성격인 혁신이윤(innovation profit)의 원천이다. 이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모든 경제주체는 기업가가 파괴해야 할 대상이다. 여기에는 경쟁기업뿐 아니라 기업가 자신과 고용관계를 맺은 노동자도 포함된다. 임금과 이윤의 적대 관계 때문이다. 이렇듯 혁신은 기존 기업 및 산업, 일자리의 창조적 파괴 과정이다. 

혁신이 없으면 기업은 정체하거나 이윤경쟁에서 밀려난다. 그래서 혁신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혁신에 성공하려면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혁신의 실패는 혁신이윤은 물론 기업 자체도 파괴할 위협적인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에 필연적인 저항이다. 혁신이 익숙함, 그래서 편리함의 파괴 과정이라면 이를 누리던 개인 혹은 집단의 반발이나 저항은 필연적이다. 혁신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저항관리는 어떻게? 핵심은 전체 구성원 간에 혁신에 따르는 비용과 성과의 공정한 분배다. 혁신에 대한 구성원의 수용성 제고와 자발적 참여 동기를 유발할 요소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업가의 자기반성과 솔선수범.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 밀린 원인 분석에서 기업가의 자기반성이 필요하고, 자기혁신의 과제를 먼저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 예컨대 노동자 간 임금 및 보상의 불공정성을 혁신 대상으로 삼는다면 회사의 수익성과 무관하게 턱없이 높은 사주 혹은 임원의 퇴직금, 배당금 등에 대한 반성과 관련 제도의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기업가가 최소한 위험과 비용이라도 스스로 공정하게 분담해야 구성원에게 일자리 혹은 소득 불안정성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둘째, 긍정적 비전. 혁신은 흔히 기후보호, 디지털화, 글로벌화 등 시대적 추세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노동자에게 이 개념들은 일차적으로 일자리 위협, 소득 감소 및 불안정성 등 부정적인 연상을 자극한다.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 찬 개념에서 그 필요성이 도출된 혁신은 성공하기 어렵다. 실제로 혁신의 필요성이 혁신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기업이나 사회 어디에서도 혁신은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진 하나의 기본계획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저항,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불안정성이 현실에 가까운 혁신의 모습이다. 혁신에 성공하고픈 기업가는 노동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혁신에 성공한 후에 모든 구성원이 공유할 긍정적인 비전을 마련, 밝혀야 한다. 

셋째, 온전한 소통. 흔히 기업가가 혁신의 필요성을 결정하고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며 구성원, 특히 혁신의 대상일 수도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겐 반발이나 저항 없이 지시를 따르길 기대 혹은 요구한다. 이는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혁신의 비용과 고통을 감당하라는 요구와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온전한 소통 없는 혁신이 성공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혁신의 필요성을 기업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하면서 확산하고, 이어서 혁신의 방향과 과제를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의 소통이 필요하다. 혁신의 시작부터 전체 과정에서 구성원 간의 온전한 소통만이 각종 불안과 고통을 내포하는 혁신이 성공할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요약하건대 이미 한국 사회 전반에서 진행 중인 혁신의 본질은 창조적 파괴이며 이 과정은 수많은 고통과 비용, 그리고 저항을 동반한다. 기업 차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의 개선은 물론 복지국가조차도 자본가의 혁신과 이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과 타협의 산물이다. 그래서 슘페터의 기업가도 시대적 추세에 적응해야 한다. 작금의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는 것은 소통이다. 온전한 소통만이 구성원의 혁신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고 자발적 참여 동기를 북돋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 결정적인 힘이다. 

위 명제는 정부의 정책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약이라는 이유로 개혁의 필요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은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 없이 개혁의 비용과 고통을 일부나마 감당하기 위해 개혁에 동참하겠다는 개인, 특히 집단이 있기는 할까? 그래서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심지어 개혁의 대상과도 논의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조차도 자발적으로 개혁하거나 개혁에 동참할 명분, 실리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온전한 소통과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 제공이라는 명제는, 실현에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혁신이 필요할수록 실패 가능성이 큰 혁신의 역설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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