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태원 참사, ‘안전’과 ‘자유’ 그리고 ‘권리’와 ‘책임’
[기고] 이태원 참사, ‘안전’과 ‘자유’ 그리고 ‘권리’와 ‘책임’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0.31 18:07
  • 수정 2022.10.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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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데 틀림이 없음을 단단히 확인한다. 안전, 자유, 행복이 열쇠 말이다. ‘자유’라는 말이 넘쳐흐르는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추구하던 수많은 젊은이의 ‘안전’이 처절히 무너졌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 지난 10월 29일 밤의 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누구도 행사를 주최하지 않았고, 스스로 참여했기에,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라.’ 이 말에 필자의 마음이 아프다. 따져보자.

책임을 물을 권리

필자는 지금껏 한 번도 국가가 부과한 세금을 줄여보려 애써보지도, 기한을 미뤄보지도, 내지 않아본 적도 없다, 많은 국민이 그런 것처럼. 납세 의무를 이행하면서 늘 ‘이 세금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쓰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쓰임에 대한 신뢰 때문에 세금은 필요한 만큼 더 거둬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금을 내기에 당연히 권리도 있다고 믿는다. 무슨 권리? 필자가 국민으로서 세금을 공무원 급여와 국가의 운영자금으로 납부하고, 생명과 안전을 지켜달라며 선거를 통해 공권력까지 위임했건만, 그에 반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엄중히 물을 권리 말이다. 필자는 납세 의무를 다한 주권자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자유까지 누리진 않을 작정이다.

책임지지 않을 자유?

‘누구도 행사를 주최하지 않았기에,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말라.’ 참사 발생 직후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말이다. 사태 수습에 몰두하기 위해 책임 공방을 피해달라는 요청이라면 흔쾌히 동의한다. 그리고 민간이나 보통사람의 그런 요구는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의 이번 참사에 대한 기본입장이라면 사정이 확 달라진다. 정부가 행사를 주최하지 않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니, 참여해 즐기다가 사고를 당한 국민의 자기책임이라는 말인가? 필자는 스스로를 애써 설득해본다, 정부가 참사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할 자유가 있다고 믿는 건 아닐 거라고.

책임을 묻지 않을 자유!

‘책임을 묻지 말라.’ 현장의 소방관, 경찰관, 이들과 함께 사람 살리기에 혼신을 힘을 다한 시민이 이런 말을 하면, 그들이 주어진 여건 아래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어서 알기에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부여안고 얼마나 몸과 마음이 힘들었겠냐고 토닥이고 싶다. ‘문책하지 말자.’ 이는 아무나 할 말이 아니다. 특히나 책임이 있거나 그럴 개연성이 큰 사람이나 조직이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할 말은 절대 아니다. 여당 최고위 인사의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라는 발언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문책하지 말자는 말은 책임이 없으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 자유로운 판단과 관용의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어렵고도 귀한 말이다. 

법보다 공감이 우선

정부 고위책임자는 정부 책임론에 대해 “많은 반론이 있다”며, “재발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사고수습, 원인분석, 재발방지책 마련이 우선과제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정부책임론에 ‘반론이 많다’는 언급이, 필자의 판단이 틀리길 바라지만, 원인 분석 후 책임을 법적으로 다퉈 보자는 말이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기야 윤석열 정부의 운영기조가 “법치”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법적 다툼이 최종심까지 간다면, 도중에 국민이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을 거라고 믿을 자유도 부정할 순 없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하게 짚어 둘 게 있다. 국민은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마음이 아플 때, 오랜 시간 뒤에 내려질 법의 냉정한 판단보다 지금 당장 정부와 정치인의 정서적 공감의 따스한 말 한마디를 더 원한다. 

남 탓보다 일 잘하기 경쟁을

‘정치적 공방은 하지 말라.’ 이런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한국 정치인과 정당은 잘 알고 있다, 이럴 때 머리를 쳐들면 수백만 표가 날아간다는 걸. 물론 애도기간이 지나면 바로 정치 공방이 시작될 터다. 그런데 공방이 진행될 운동장의 기울기는 가팔라 보인다. 국민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자산을 지켜달라고 권력을 위임받은 쪽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걸로 보이니, 그럴 수밖에. 정부여당은 수세에서 벗어나자고 야당과 상대방 탓하기에만 몰두하기보다 사고의 원인을 야당과 함께 분석해야 한다. 사후 약방문식 대책을 남발하지 말며, 누가 더 효과적인 재발방지책을 제시, 실천하는지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삼풍백화점, 세월호 등 유사사건이 있었음에도 후진국형 참사가 또 발생한 데 대해 국민의 안타까움과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전례 없이 매섭다. ‘여야 둘다 똑같이 무능하다, 세금이 아깝다’라는 말이 더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디지털 혁명시대를 이끌고 있는 선진국, 한국에서 15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골목길에서 사람에 치여 꽃다운 목숨을 잃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정치인과 정부의 고위책임자는 ‘참담하다’, 즉 몹시 슬프고 괴롭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대통령은 공무원의 ‘무한책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희생자나 그 가족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걸 지켜보며 가슴 먹먹해 하는 국민의 마음을 다독일 진정어린 자책이나 사과의 말은 견문이 적은 탓인지, 듣기 어렵다.

필자는 그들이 염치를 알기에 이런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걸로 믿는다. 염치를 알기에, 즉 청렴하고, 지조를 지키고, 수치심을 알기에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용기 있는 행동을 곧 하리라 믿는다. 책임 있는 모두의 바로 이런 용기 있는 행동이 희생자와 그 가족,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사과와 안전하고 자유로운 나라의 출발점이 될 터다.

10~20대의 젊은 나이에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은 150여 명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엎드려 명복을 빌고, 다친 분들의 빠른 회복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사상자 가족의 아픈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에 무슨 말을 더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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