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개혁, 꼼수 혹은 묘수?
[기고] 노동개혁, 꼼수 혹은 묘수?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2.05 15:19
  • 수정 2022.12.0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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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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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혹자는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과 “민주노총과 대한민국은 함께 갈 수 없다”라는 여당 중진의 초강경 비판을 정치적으로 평가한다. ‘민주노총 때리기’를 통한 ‘이태원 참사’ 관련 수세 국면 탈출 및 지지율 반등 전략이라거나 경제 위기 심화의 “속죄양”으로 삼는 정치적 꼼수라는 의미다. 

필자는 비평에 대한 비평보다 다른 측면, 즉 정부가 쏘아 올린 노동개혁의 신호탄이란 점을 주목한다. 실제로 업무개시명령 발동 당일에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 원인”이라며 임금체계 변경을 쉽게 하는 법·제도 개선을 검토해 정부에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주52시간제 유연화’(11/17),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11/30)과 함께 핵심 노동개혁 과제와 그 로드맵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1차 노동시장에서 자율적 사회연대의 확산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의 정당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명령이다.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에서 흔히 언급되는 방식은 1차 노동시장에 속한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임금 및 근로조건 관련 권리를 해체하는 방향으로의 법·제도 유연화다. 

그 논리적 효과는 두 가지다. ①1차 노동시장의 임금 감축분을 2차 노동시장 임금 상승 재원으로 활용해 격차를 줄인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이다. 노동 간 임금 재분배는 노사 간 소득 격차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②2차 노동시장의 임금 상승 없이 1차 노동시장의 임금 감축만으로도 격차가 좁아질 수 있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지 않고 사용자가 가져서, 즉 노동에서 자본으로 소득 재분배를 통한 임금의 하향 평준화다.

노동개혁이 정치적 꼼수가 아닌 시대의 명령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묘수가 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기준은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이다.

첫째, 1차 노동시장의 임금 감축이 2차 노동시장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법·제도적 보장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에서 자본으로 소득 재분배를 위한 임금 삭감은 공정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만 야기할 뿐이다. ‘공공기관 대졸초임 삭감 정책’ 등 보수 정부가 시도한 각종 공기업 및 대기업의 임금 삭감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다. 실제로 한국노총도 “대기업 남성임금 줄이면 비정규직·여성임금 올라가나”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둘째, 노동 간 임금 이전 등 노동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시작한 연대를 정책적으로 촉진 및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 볼 만하다. 임금의 하향 유연성을 가능케 하는 법 개정보다 노조의 자율성 보장이 효과성이나 지속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대기업 및 공기업 노조가 활동의 관점과 영역을 자기 일자리와 임금 중심에서 사회연대로 방향 전환을 모색 중이다. 자율적 임금 이전 등을 맹아 단계부터 정부가 재정·금융정책으로 촉진 및 지원해야 한다. 지원 대상에 노조의 사회연대에 동참하거나 스스로 연대의 한 주체로 나서는 사용자도 포함하면, 사회적 확산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연대가 잠시는 나를 희생해 남을 살리는 것이지만, 궁극에서는 나와 남이 함께 살 방법이며, 이 경우 누군가가 나를 돕는다는 것을 정부가 몸소 보여줘야 한다.

노동·사회정책의 역설 극복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정책적 원인은 노동·사회정책의 역설이다. 노동·사회정책을 통한 보호가 필요한 집단일수록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거나, 정책의 주된 혜택이 요보호 집단보다 기보호 집단에 몰리는 역설이 노동개혁의 핵심 대상이라는 말이다. 이 역설적 현실을 외면하는 모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은 거짓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 그 상징이다. 수많은 노동·사회정책이 수립·집행됐지만, 이들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폐해 등을 고스란히 받아안으며 힘겹게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불공정성 문제의 해결이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 제외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율이 전체 평균의 2배이고, 매년 500여 명이나 일하다 죽는 것이 당연하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생명과 안전 중심의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 조성은 국가의 의무다.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하는 중소·영세기업은 대부분 2차 노동시장에 속한다. 이들은 대부분 임금협상 시스템이 없는 것은 물론 임금테이블의 작성조차도 힘겹다. 정부가 임금체계를 개혁하겠다면, 임금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일 터다. 임금테이블을 개별 기업의 외부에서 사회적으로 작성할 필요성이 있다.

노동개혁의 공정성 확보

정부가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하려면 공정성을 잃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만 일방적으로 탓하거나 심지어 ‘타도의 대상’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노조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사회연대를 정부가 법이나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촉진 및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가 원·하청 관계 개선이나 중대재해 감축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것, 규제 중심에서 참여 중심의 ‘자기 규율’ 패러다임 전환을 노동계 관련 개혁에도 적용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노조와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사용자도 노동개혁에 동참해야 공정하다. 예를 들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주요 원인인 원·하청 관계 개혁에 사용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데, 정부가 최소한 노동계에 개혁을 요구하는 만큼은 사용자의 동참을 촉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 정책과 그 수단도 공정성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사용자에겐 참여와 자기 규율의 원칙, 노동계엔 배제와 법과 원칙의 적용하는 등 노와 사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공정성을 확보한 노동개혁은 지속가능한 묘수, 그렇지 못한 노동개혁은 국면전환용 정치적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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