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하는 MZ를 위한 변명(2): 일중독 치유는 ‘꼰대’의 과제
[기고] 일하는 MZ를 위한 변명(2): 일중독 치유는 ‘꼰대’의 과제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4.10 10:46
  • 수정 2023.04.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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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지난 3월호 칼럼의 결론은 기성세대의 삶을 옥죄었던 일중독의 세대 간 전이의 단절 필요성 제기와 젊은 세대의 ‘싸가지’가 그 단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씨앗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개인과 조직을 거쳐 사회 전반에 확산할 사회경제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일중독의 세대 간 단절의 내용이다. 단절은 스스로 일중독자인 동시에 그 극복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제도적 힘도 가지고 있는 모순적 존재인 기성세대(‘꼰대’)의 몫이다. 새 세대에게 일중독은 삶의 여건으로 주어졌을 뿐, 그 발생과 구조화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에 책임이 없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일중독으로부터 차단 및 보호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세대 간 전이의 단절은 기존 질서의 기득권자인 일중독자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자인의 핵심은 자신의 행위원칙이 자신의 삶을 “내적 식민지화”(하버마스, 1988)한 ‘자본의 논리’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 논리의 핵심은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룰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는 일중독 진단의 핵심기준(페터 베르거)인 동시에 자본의 확대재생산 체계가 작동할 핵심조건이기도 하다.

일중독 사회는 일중독 치유의 출발점인 자인이 지극히 어렵도록 조직된 사회다. 우선 회사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할 일을 다른 공간(예: 집)이나 다른 시간(퇴근 후, 휴일, 주말 등)에도 해내고야 마는 사람에게 승진, 고임금 등의 보상이 뒤따르기도 한다. 게다가 일중독이 재무적 소득보다 더 중요한 “책임감, 의미, 기회, 인정과 같은 심리적 소득”(매클로위츠, 1980)을 얻는 수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보상과 함께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란 세평이 일중독자의 자인, 즉 치유의 시작을 방해하는 주요 요소인 셈이다.

일중독 사회의 모순은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이 자신의 성취와 보상에 만족하며 일하고 있지만, 동시에 일이 없으면 심리적 불안정(금단현상)을 겪거나, 일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간관계의 파괴, 건강상 문제 등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을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일중독을 인정한다면, 일중독은 이제 심리적 소득의 원천이 아니라 일중독자 자신과 가족, 조직, 나아가 사회에 해를 끼치기에 필히 치유해야 할 병리현상으로 바뀐다.

다음 단계는 치유의 과정이다. 일중독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병리현상인 까닭에 자인과 함께 치유도 개인의 힘만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 동료도 치유 과정에 동참하는 등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일단 직장이라는 시스템의 관리자로서 각종 권한을 가진 기성세대에 제한하고 개인, 부모로서의 과제는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일중독 치유는 일중독의 발생과 구조화와 다른 내용의 사고와 행위의 과정이다. 그 핵심은 기성세대가 ‘낯설다’, ‘까칠하다’, ‘싸가지’ 등으로 평가하는 젊은 세대의 희망가치, 즉 수평적 관계, 온전한 소통, 공정한 보상 등을 기업현장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하던 일의 중단, 연기를 수용하는 방식이 사고와 행위 전환의 구체적인 모습을 젊은 세대의 높은 이직률을 사례로 삼아서 그려본다.

현재의 기성세대는 주로 한 회사에 정착해 내 회사인 듯 열심히 일할 수 있기를 원했지만, 이를 비웃기나 하듯 ‘직장보다 직업’을 중시하라며 유연성이 강조되던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이직률이 매우 높다(46%,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2).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직장을 ‘종점’이 아니라 ‘정류장’으로 취급하는 “프로이직러”가 된 이유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일부 젊은 세대에게 어지간한 직장은 경력경로의 마지막 단계로서 열과 성을 다해 일할 보금자리라기보다 자신이 설정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다 잠시 들렀다 떠나는 정류장에 불과하다. 반면에 여러 이유로 번듯한 회사의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한 개의 일자리에서 생계와 미래를 기획할 소득을 확보하지 못해서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기도 한다.

여러 차이가 있지만, 직장에 대한 주인의식, 소속감이나 충성심이 기성세대만 못하다는 유사성도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높은 이직률의 숨겨진 기능도 있다. 기성세대가 구축해놓은 일중독 체계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가쁜 숨을 돌릴 틈새 기능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따라서 젊은 세대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이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는 게 기성세대의 과제다. 과제 개선의 원칙과 방향은 다음과 같다.

- 수평적 관계에서 온전한 소통: 기성세대의 관점에선 파악하기 어려운 새롭거나 이상한 사고 및 행위를 별난 것으로 비아냥거리기보다 일하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바탕으로 보기; 칼퇴근, 워라밸 중시를 근로의욕 저하나 불성실함의 문제가 아니라 일중독 내지는 번아웃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가치로 보기 등

- 공정한 보상으로 일에 대한 강박 해소: 일의 성과는 기업이 가지되 고용은 책임지지 않는 불공정한 고용형태 해소; 노동자의 고용 및 소득 안정성을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 중간계층 확대로 보기; 노동자 임금과 기업 총수의 보수 간 불공정한 격차의 완화 및 해소; 바닥에 구멍이 숭숭 나 있고, 경쟁자의 옆지르기에 밀려나도 막아줄 난간조차 없으며, 위로는 유리천장으로 막힌 외나무다리를 온전한 경력사다리로 전환 등

젊은 노동자의 자율성 기반 창의성, 수평적 의사소통, 보상의 공정성 등 새로운 가치에 기반을 둔 일중독 해소는 단순히 기업의 비용 문제로 좁게 보지 말아야 한다. 기업을 위한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반 조성이라는 접근 방식이 타당할 터다. 그리고 이번 글처럼 기업 차원의 세대 간 문제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나아가 정책으로까지 시각을 넓혀야 한다. 이어질 칼럼의 주제가 노동시간 정책과 일중독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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