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파쇼” 프레임 씌우기, 그만둬야
[기고] “파쇼” 프레임 씌우기, 그만둬야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7.07 11:09
  • 수정 2023.07.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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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여야 간 “파쇼” 프레임 씌우기가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이전 정부와 집권 여당을 ‘파시스트’로 비판(2022.02.17)한 데 이어, 야당 서울시장 후보 송영길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 대해 “대한민국이 파시즘의 나라냐”(2022.05.10)고 비판하고 나섰다. 1년 후에도 같은 상황의 반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발언, 몇몇 주요 공직(내정)자의 언행에서 파시즘의 징조를 찾아보는 비평가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야의 내년 총선전략이라고? 당장 중단하라. 여야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행동을 지속하면 이 나라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인 야만의 상태로 퇴행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파시즘이 자유주의와 ‘이론상 적’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 현실에서도 자기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적대성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문명의 실패에서 시작했고, 이론적으론 전체주의, 국가주의, 반자유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며, 정치 차원의 주요 특징은 반공주의, 선동, 폭력 및 전쟁이다. 이 글의 벼리다.

파시즘의 온상: 대중의 공포와 좌절, 정부의 무능력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실패한 유럽 문명의 대안으로 제시된 정치사상이다. 1,500만 젊은이의 대량학살을 4년 이상 지켜본 유럽인들에게 정부는 무능력의 상징이다. 게다가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과 대공황으로 일자리에서 내몰린 수많은 노동자의 좌절은 자본주의보다 볼셰비키 혁명에서 희망을 찾는 이유기도 했다. 전쟁의 공포, 대공황과 대중의 좌절, 볼셰비키 혁명은 전체주의적 정치이념과 그로 무장한 세력의 생성 및 확산의 기름진 텃밭이다.

국가주의와 전체주의

파시즘의 원조 무솔리니는 1920년대 초반 ‘토탈리타리오’(Totalitario)라는 용어와 연계해 자신이 지향하는 파시즘 국가를 다음처럼 기술했다.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 요컨대 국가는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모두 국가의 권위에 복속해야 하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국가의 적이다. 

자유주의 불허 및 자유 민주주의 거부

파시즘은 자유주의, 인권 등을 혐오한다. 그 뿌리는 이에 내재한 비효율성이 국가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파시즘은 개인의 자유나 그 어떤 권리보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우선으로 친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기반을 두고 갈등 해결을 시도하지만, 고비용·저효율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파시즘의 거부는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다.

반공주의와 노동 갈라치기 

파시즘은 계급 갈등에 적대적이다. 그 출발점은 1차 세계대전 직전·후 격렬한 계급 갈등에서 경험한 파괴성이고, 확산의 가장 강한 추동력은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과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정부에 비판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적 행위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파시즘의 전통이다. 국가에 대한 비판, 대안 모색을 사상, 표현 및 결사의 자유로 보기보다 반역으로 보는 전체주의 사고의 결과다. 파시즘이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병존하기 힘든 이유다.

파시즘의 반노동적 행위의 주 대상은 조직노동이다. 반면 사회경제적으로 좌절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는 비조직 노동자에게는 ‘모든 노동자에게 국가의 법적 보호’ 등 실현하기 어려운 추상적 약속과 함께 정치적 지지를 호소한다. 같은 이유로 희망을 잃은 중간층, 좌절한 청년층의 분노를 선동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히틀러와 파시스트당의 집권을 토머스 만은 “저속한 인간쓰레기들이 대중의 열렬한 환호로 정권을 잡았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선동가, 전체주의라는 “악마의 혀”

대중의 지지 유도에는 선전·선동, 대중 집회, ‘히틀러 청소년단’(Hitler Jugend) 등 준군사 조직 및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선동에선 지성적 사고보다 세밀하게 연출된 의식과 감정적 수사를 사용해 정서에 호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특히 짧은 문장을 통한 선동은 매우 효과가 크다. 선동은 단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 문장의 잘못 증명에는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잘못이 확인됐을 때 대중은 이미 선동된 상태다. 언론도 민주적 공론의 장이라기보다 선동의 수단이다.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 전체주의라는 “악마의 혀”, 나치의 ‘국가대중계몽선전장관’ 괴벨스가 남긴 말이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신문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신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라는 자유주의적 언론관과 정반대다.

가치동맹과 전쟁 옹호

파시즘적 국가는 강력한 지도자가 주도하는 폭력적 사고와 행동주의의 일상화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적극 장려한다. 낯선 것에 대한 공포의 극대화와 그를 기반으로 적대적 혐오와 증오를 선동, 배제적 폭력을 동원한 더 깨끗하고 밀도 높은 공동체 통합의 요구가 충족되는 한 형태가 유대인 학살 등 반유대주의다. 아울러 외부 집단을 적대시한 극단의 형태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간 파시즘 동맹을 통한 전쟁, 즉 2차 세계대전이다. 공식 사망자 5,646만 명, 비공식 사망자는 약 7,300만 명인 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모든 전쟁은 자유주의자에겐 야만이다. 파시스트에게 평화는 이적행위고 적과는 싸움만이 옳은 길이지만, 그 길에서 그들은 패했다.

앞에서 파시즘이 부정하거나 증오하는 다양한 이념 및 행위를 통해 파시즘의 대강을 파악했다. 전체주의와 국가주의 미화와 개인주의, 자유주의, 무능력한 정권과 공산주의 적대시, 언론은 선동의 도구 취급, 가치동맹을 통한 전쟁 옹호와 평화를 이적행위로 매도 등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는 파시즘의 오랜 전통이다. 이런 맥락에서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2005)의 저자 로버트 팩스턴의 지적, 즉 파시즘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특히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적이며,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는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에 더해서 한국의 주요 해결과제인 사회 양극화와 남북 분단으로 인한 대중의 좌절과 희망 없음은 파시즘 생성 및 강화에 가장 좋은 자양분이다. 취약계층의 좌절과 젊은 세대의 희망 없음을 극복하고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분단을 극복하는 데 여야와 정부가 온 힘을 다하길 기대한다. 

그 전에 우선 여야는 “파쇼” 프레임 씌우기를 당장 접어야 한다. 프레임 씌우기는 파시스트들이 그 적을 겨냥해 흔히 사용하는 적대적 선동 무기라서다. 여야 중 누군가 선거에서 이기자고 나라를 적대성이 가득한 야만의 상태로 몰아넣을 순 없다. 여야의 깊은 성찰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