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효율성에서 생명안전으로’ 코로나19 경험과 기업경영 패러다임의 전환
[기고] ‘효율성에서 생명안전으로’ 코로나19 경험과 기업경영 패러다임의 전환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8.07 14:11
  • 수정 2023.08.07 1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코로나19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경제 및 사회의 기존질서의 취약성을 만천하에 드러냈지만, 치료제가 나오며 사망자 숫자가 정점보다 급감했다. 정부도 관련 통계를 더는 정기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슈퍼변이’는 언제 어디서 창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코로나19가 생명과 경제 및 사회에 미쳤던 극단적 파괴성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피해 예방과 함께 피해로부터의 조속한 회복, 즉 사회의 회복탄력성(Resilience) 확보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 국가는 물론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밀집에서 거리두기로

기업은 단순히 일터가 아니라 노사 간 협력과 갈등, 동료애 등이 체계 혹은 암묵지로 작용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여기서 노동자가 노동 자체와 그 보상에 만족할 수 있고, 기업도 이로부터 경제적 성과를 얻는다.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기업의 일상을 코로나19가 뒤흔들었다.

코로나19 이전엔 일상이던 밀집된 공간에서 타인과의 신체 접촉이 어느날 갑자기 건강 위협의 동의어가 됐다. 효율성 중심으로 조성된 밀집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기업 내 협업과 소통은 물론 일하는 방식까지도 생명안전 위주의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했다. 회의 등 만남은 원칙적으로 금지, 모바일노동 및 재택근무 등 이전과 전혀 다른 작업방식이 기획됐다. 그 영향은 심대하다. 심지어 거리두기 시점에 입사한 직원의 소통방식조차도 그 선배들과 달라졌다. 차이의 핵심은 물리적 공간에서의 업무나 일상활동보다 가상공간에서의 일이나 소통에 더 익숙하다는 데 있다. Z세대 신입사원의 “별난” 사회적 소통방식에도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코로나19의 상징인 마스크 쓰기 의무의 해제와 함께 다시 예전의 공간에서의 일, 소통의 기획이 기업의 주요 과제가 됐다. 주의할 것은 기획의 여건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기업이라는 사회적 공간과 관련된 노동자와 사회의 인식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 따라서 전과 동일한 기획방식의 반복은 실패의 지름길일 뿐이다. 대안은 성찰을 전제로 하는 조직적 학습이다. 성찰이 동일한 문제의 반복을 막는다면, 학습은 위기 이전보다 질적으로 나아지는 지름길이다.

조직적 학습으로서의 건강보호 시범프로젝트

건강이 노동자 스스로는 물론 기업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부상했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했고 노동자가 건강하지 않으면 기업의 일상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뼈저린 경험의 결과다. 그런데 이 분야에선 아직 주어진 모든 상황과 현실을 동시에 충족하는 표준화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없다. 보건복지부가 ‘23년 7월부터 6개 지역에서 2단계 시범운영 중인 상병수당제도는 코로나19 극복에 필요한 제도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기업 차원에서 노조 배제가 아닌 노사공동으로 노동자 건강보호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 조직적 학습의 일환으로 시범 운영해보면 좋겠다. 이 프로젝트는 생명안전 관련성 때문에 산업안전 강화방안의 하나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미래에 노동자 건강위험의 해결책으로 발전할 가능성 검증이다. 이 목적에 따라 기획된 조직 및 제도의 변화와 노사의 관련 인식 변화를 학제 간, 과학적 방법으로 추적,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가면 결국에는 전문적이고 증거에 기반을 둔 제도적 틀이 만들어질 것이다.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노사공동의 평가에 따라 확산이나 폐기도 가능하다. 확산과 정착에는 단체협약이나 노사협의 등을 통한 내규 제정이 큰 도움이 될 터다.

기업 내규의 적용 범위에 비정규직을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권은 인위적인 사회적 신분보다 상위 개념이라서다. 동시에 다음과 같은 문제의 반복을 허용하지 않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불이익, 예컨대 실직과 소득의 감소, 격리기간의 무급휴가 등이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아울러 임금 및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의 필요에 적합한 보호조치, 관련 정보와 기술자문 제공, 그리고 정부의 재정·금융 지원은 노동자의 건강위험 극복과 중소기업의 회복탄력성 확보에 큰 도움이 될 터다.

하이브리드근무제 도입 검토

재택근무는 팬데믹 과정에서 기업의 일상 유지에 크게 이바지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제조업 생산직이나 요식업 노동자 등을 제외한 수많은 노동자가 집이나 가상공간에서 일했다. 디지털 소통기술의 혁신으로 가능해진 이런 유형의 노동은 장점과 한계가 분명하다. 장점은 워라밸 개선, 출퇴근과 출장 부담 경감, 특히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로운 환경에서의 작업이 매력 포인트다. ‘디지털 내이티브’인 Z세대의 호응이 특히 큰 이유다.

재택근무에는 간과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재택근무를 팬데믹 기간에 집중 투입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배웠다. 문제를 안다면 해결책 도출도 수월하다. 대안으로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혼합하는 하이브리드근무제의 도입을 제안한다. 이 근무방식은 기업의 공간밀집도를 낮추어 유사시는 물론 평시에도 거리두기 등 건강 보호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아래의 문제점들을 해결한다면, 기업의 일상 유지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뱀발) 이는 강력한 저출생 대책일 수도 있다.

집에서 수행할 수 없는 직무와 재택근무에 적합한 직무를 구분해서 제시, 제도화 과정에서 노동조건은 건강 보호에 적당한 방식으로 구성, 비재택근무자와 형평성 문제 해소, 회사의 작업공간 사용 조치, 집합근무시간의 적절한 구성 등이 필요하다. 특히 후자는 기업의 암묵지 작동 여건의 마련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어서 아동보육 및 노인보호시설 등을 정부나 지자체와 협력해 설립·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적 돌봄노동의 제3자 수행이 재택근무로 인한 이중부담의 해소방안이며, 이는 다시 가정에서의 생산적 노동의 전제조건이라서다.

코로나19로 인해 확산한 불확실성과 일하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생명안전 우선주의, 젊은 세대의 자유로움 추구 등 여러 변화된 여건을 고려한다면, 기업은 향후 각종 사업계획에서 단기 효율성보다 중장기 회복탄력성을 더 중요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에 기업의 성장과 이윤 확대의 결정요인은 공간의 경제적 효율성보다 디지털 기술혁신에 투자와 상업화 성공 여부, 그리고 피해 회복력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는 코로나19가 불러온 뉴노멀 시대의 5대 트렌드 중 2번째 트렌드로 “효율성보다는 회복탄력성”을 제시한 바 있다. 기업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미래의 불확실성 대비 차원에서 효율성 중심의 공간밀집에서 생명안전 중심의 거리두기로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 성공할 때까지 적극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