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하는 MZ세대를 위한 변명(1): 일중독 vs ‘싸가지’
[기고] 일하는 MZ세대를 위한 변명(1): 일중독 vs ‘싸가지’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3.06 06:58
  • 수정 2023.03.0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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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일하는 MZ세대(1980~2005년생)가 사회의 관심사다. 2019년 기준 경제활동인구의 45%(통계청)를 차지하는 MZ세대의 소득·자산·부채·소비 등 주요 경제 여건은 이전 세대보다 취약하다(최영준, 2022). 어려운 경제적 처지보다 더 큰 관심사는 낯선 사고 및 행위 양식이다. ‘몸과 마음의 여유’를 금전적 보상에 우선시하고(한국고용정보원, 2021), 정년은 어차피 지켜지지 않기에 절반 이상(54%)이 ‘바라지 않는다’(연합뉴스). 상사의 업무지시엔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며 까칠하게 따지고 든다(서울경제). 공정한 보상을 재벌 총수에게 직접 요구하는 당돌함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싸가지’ vs ‘꼰대’

‘싸가지 없어!’ 기성세대가 ‘요즘 것들’의 낯선 사고 및 행위 양식을 비판하는 열쇳말이다. ‘싸가지 없어’라고 쓰고 조직의 기존 질서와 문화에 적응,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는다. 젊은 세대에겐 ‘꼰대’ 정서다. 싸가지와 꼰대 간 갈등은 돌에 문자를 새기던 시대나 스크린을 터치하는 시대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갈등 관계에서 필자는 싸가지 편이다. 연령대만 보면 꼰대에 속할 필자가 싸가지의 편을 드는 이유가 있다. 젊은 세대의 상징가치, 즉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 온전한 소통, 공정한 보상 등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면, 이는 일중독 혹은 번아웃이라는 사회적 병리현상 치료의 출발점이 될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은 필자는 물론 대부분의 이성적인 사람은 동의할 사회적 지향가치다.

일중독 사회

일중독은 “일에 대한 강박적 의존이 심해질수록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며,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금단증상을 느끼는, 행위중독의 한 형태”(노관종·강수돌, 2020)다. 일중독은 사회화 과정에서 전이된다. 가정, 회사, 사회 등 중독된 조직에서 성장하고 일하며 사회화된 사람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중독행위를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내면화한다는 의미다.(노관종·강수돌, 2020) 일중독은 또 세대 간 전이(spill-over)를 통해 확산하고, 가정과 직장은 그에 가장 유리한 사회적 공간이다. ‘사랑’과 ‘보상’이 각각의 핵심적 전이 매개체라서다. 일중독이 더 이상 “개인적, 일탈적,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사회적, 대중적 현상”이면 사회 전체가 일중독 상태이고, 한국은 일중독 사회의 대표적인 나라다(Heide, 2002).

가족 내 세대 간 전이

MZ세대는 일중독이 세대의 특징이던 베이비부머 등 기성세대가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 세대다. 고학력·명문대의 스펙을 빈곤 극복과 사회적 위상 제고의 수단으로 인식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장기 스펙 관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아침과 야간 자율학습, 심야엔 학원, 입시의 ‘4당 5락’, 최근 확산 중인 ‘초딩 의대반’ 등 아이들은 공부중독에 내몰린다.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까지도 이에 어렵사리 동참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만 경쟁에서 탈락할 것 같은 우려 때문이다. 중독 사회화의 한 단면이다. 이렇듯 기성세대가 MZ세대를 ‘자식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사회적 중독체계에 밀어 넣었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은 긍정적 결과다.

기업 내 세대 간 전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을 건너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에 대한 고수입과 직업 안정성이라는 보상은 일부에게만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허용 범위는 날로 작아지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기업에선 권위주의적 위계 및 질서의 강고함, 불합리한 의사결정, 온전한 소통의 부재와 보상의 불공정성이 일상이다. 아울러 스펙을 마음껏 펼쳐볼 기회가 제공되기보다 불명확한 업무지시, 책임과 역할의 불분명성, 희망하지 않는 업무의 수행도 흔하다. 이로 인한 “질적 직무부하”가 평균 연령 36.1세의 직장인 중 55.1%가 번아웃 진단을 받은 결정적인 원인이다(조선경제).

MZ세대의 번아웃에 대해 기성세대는 ‘라떼는 야근은 필수, 회사가 집!’이었다며, ‘유리멘탈’에 비아냥과 냉소를 보낸다. 자기 세대가 만든 입시지옥, 취업지옥을 거쳐온 탓에 일하는 MZ세대가 지친 상태라는 데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비아냥과 냉소를 평가 등 관련 제도의 기획 및 운영에 반영할 힘을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가 MZ세대에게 일중독을 정상으로 인지하도록 조직적, 제도적으로 강요함에 다름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일중독자는 스스로 인지하거나 혹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중독을 기업에서 세대 간에 전염시킨다. 성장 과정에서 공통으로 경험한 공부중독에 더해 직장인으로서의 집단적이고 강박적인 일중독이 MZ세대에게 강요되고 있다.

일중독 사회의 편익과 비용

공부중독과 일중독이 유지된다면 미래 세대의 스펙은 더 좋아질 것이고, 기업이 원하는 장시간 노동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편익과 동시에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도 막대하다. 지금도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2022년 국민 삶의 질’, 통계청)이며, M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가난하고 자기 몸 하나 스스로 건사하기 힘들다. 그래서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n가지를 포기한,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세대’다. 이런 상태에서 중독 사회가 유지된다면 삶의 질 향상은 언감생심이며,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결과는 그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일중독 사회와 단절이 절실하다. 단절의 단초는 MZ세대의 ‘싸가지’에 내포돼 있으며, 맹아는 이미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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