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장에서 미래를! 산별교섭체계 개편의 원칙
[기고] 현장에서 미래를! 산별교섭체계 개편의 원칙
  • 참여와혁신
  • 승인 2022.10.12 12:22
  • 수정 2022.10.1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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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51일간(6/2~7/22) 파업과 그 타결 과정에서 한국 노동문제의 오랜 상처가 뿌리부터 숨김없이 드러났다. 원청·대기업과 하청·중소기업 사이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내지는 양극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안찾기에 정부, 노조, 의회 등 관련 조직과 기관이 팔을 걷어붙인다. 국민의 삶과 무관한 “욕설사태”로 온 나라에 욕설과 헛웃음이 휘몰아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오랜만에 기업과 수많은 노동자의 일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안이 화두로 떠올랐다. 

각 주체가 다루는 중점 분야는 서로 다르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의회는 기업이 청구한 손해배상 관련 법률 문제, 노조는 초기업·산별교섭 등 교섭구조 문제의 대안찾기에 열중이다. 이 주제를 이 글에서 모두 다루는 것은 필자의 역량 밖이다. 그래서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방안 찾기가 재정·금융·사회정책의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보다 노동 내부의 재분배로 좁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언급하고, 이번엔 교섭체계 문제에 집중키로 한다. 손해배상 문제는 나중에 별도로 다룰 기회를 가질 계획이다.

초기업·산별교섭체계 논의는 한 가지만 고쳤으면 한다. 논의 방식의 문제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산별교섭체계 논의의 비교 및 평가의 기준은 주로 독일이나 유럽의 ‘80년대 이전, 즉 교섭체계의 조율된 분권화 이전이다. 현실이 문제라며 공간과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제도를 미래상으로 설정하고, 그를 프레임 삼아 오늘을 비판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일은 실제로 그리하는 사람들도 부인할 만한 우려스러운 일이다. 최우선 과제는 현장에서 현실을 바꾸고 있기에 미래 기획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나 힘을 찾아내는 것이다. 현장에서 미래로 가는 경로 기획의 핵심은 두 가지다. 법의 제·개정 외에 이 글에서 주로 다룰 기존 법·제도 내에서 운용의 묘를 살리거나 힘을 바탕으로 하는 단체교섭. 

기존 법·제도의 운용의 묘 살리기가 도움이 되는 범위는 산별교섭체계의 주체, 내용, 형식 모두를 포괄한다. 주체와 관련해서는 산별사용자단체의 권한과 의무의 일치를 눈여겨볼 만하다. 이정희(2017)가 지적한 대로 참여 자격이 사용자단체인 각종 정부위원회엔 참여하면서 초기업 교섭엔 응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면, 이런 불공정한 사안의 해소는 제도 운용의 묘만 살려도 될 터다. 단체협약 효력 확장도 사문화된 지역 관련 법 규정의 실질화나 금융노사의 사회연대임금의 취지를 잘 살리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하다. 아울러 교섭 비용 혹은 부담을 이유로 집단교섭을 꺼리는 사용자 설득에 금융노사의 순번제 교섭대표단 제도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행 법·제도 내에서 산별 차원의 단체교섭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는 사안도 있다. 산별사용자단체의 설립 및 교섭 참여는 법적 강제보다 노조에 허용된 다양한 합법적 힘을 바탕으로 한 단체교섭이 유력한 방안이다. 후자의 실현이 쉽지 않더라도 전자의 법제화보단 어렵지 않아 보인다. 노사관계라는 자치영역에 사용자에 부담이 될 법 개정을 완수할 정치세력을 기대한다면, 단순히 희망고문에 불과한가? 아울러 산별교섭체계의 완성, (사회적) 직무급과 산별-지부 사이의 쟁의행위 주체의 정리 등을 정치적 교환의 대상으로 삼아볼 수 있다. 수년에 걸친 집중 논의와 체계적 준비가 필요한 말 그대로 빅딜이다.   

한국의 산별교섭체계가 최근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기업 혹은 산별 교섭체계가 형성되지 않았던 산업·업종에서 초기업 노사관계 질서가 새로 형성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건설, 배달, 택시, 공공연구, 언론 등이 대표 사례다. 공공연구와 언론 외 대부분 업종은 저임금 혹은 무임금체계라는 특징을 가진 2차 노동시장에 속한다. 노동사회학자 박명준(한국노동연구원 연수과정주임교수)이 기업이 아닌 산별 차원에서 사회적 직무급 테이블의 작성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라고 평가한 영역이다. 산별 교섭구조를 만든다 하더라도 교섭 의제가 미래 지향적이지 않으면 교섭구조 개편의 의미가 반감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교섭의 의제와 형식은 선후를 따질 수 없다.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는, 함께여야만 둘 다 살 수 있는 공생관계다. 눈여겨볼 것은 2차 노동시장 내 대부분의 기업이 임금테이블 작성조차 힘겨운 각종 여건이 열악한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임금테이블을 개별 기업의 바깥에서 사회적으로 작성할 타당성과 필요성이 있다. 이를 신규 산별교섭체계의 노력과 성과가 증명한다.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다음 문제는 우선순위다. 하청중소기업 혹은 독립중소기업 단위, 업종과 지역 단위 중 어느 단위의 어느 쪽의 임금테이블 작성이 더 시급한지가 새로운 쟁점이다. 

현실에서 현실을 미래 지향적으로 바꿀 단초를 찾아내, 갈고 닦아서 미래를 향한 디딤돌로 쓰자는 얘기가 이렇게 길어졌다. 복잡다기한 현상에만 대응하는 대증요법, 그리고 모든 원인을 어떤 하나로 환원해 일하는 방식의 문제점은 두루 아는 바다.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현행 법·제도 내에서 운용의 묘 살리기, 노사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단체교섭, 행정 및 법의 제·개정 등 다양한 방법을 산업이나 기업 혹은 노사의 특성에 걸맞게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아울러 현장에서 미래를 향하는 여정은 한두 사람이나 특정 정파, 조직의 거친 말이나 폭력으로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전체 경로와 복잡다기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역량 있는 사람들이 공감과 연대를 기조로 운영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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