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좋은 일자리, 누가 만드냐가 무슨 대순가요?
[기고] 좋은 일자리, 누가 만드냐가 무슨 대순가요?
  • 참여와혁신
  • 승인 2021.12.13 13:54
  • 수정 2021.12.21 1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 원장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MZ세대를 찾아다니며 머리를 조아린다. 선거의 승패를 결정할 유권자 집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 듯 약속 경쟁 중이다. 아직은 공약이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일자리 약속은 대부분 ‘많이 만들겠다’는 의지표명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MZ세대의 입장에서 일자리 문제는 양보다는 질의 문제다. 좋지 않은 일자리는 지금도 많다.

MZ세대에게 좋은 일자리의 판단 기준은 근로 조건이나 고용 안전성이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기 위해 어릴 적부터 투자한 돈과 각고의 노력에 상응하는지 여부다. 어지간한 회사나 일자리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과 부모의 눈에는 차지 않는 이유다. 중소기업이나 사양산업 일자리가 대부분 그렇다. 전자는 구조적 문제고, 후자는 공정한 전환의 대상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기업은 신규 채용보다 경력직 채용을 선호한다. 신입사원의 실무 투입 준비용 교육·훈련비조차도 아까운 것이다. 코로나19로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린 회사도 예외가 아니다. IT업계 소프트웨어 영역의 사업 확대나 부실하던 경영관리의 체계화에 필요한 인력 수요는 타 업종에서 경력직이 옮겨와 메운다. 업종 간 인력 이동이 일부 좋은 일자리의 근로조건 추가 개선엔 도움이 되지만, 신규 채용의 활성화로 연결되진 못하고 있다.

MZ세대의 일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일자리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왜 꼭 취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사회적 고립을 택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온갖 방법을 다해 보아도 취업이 어려우니 일자리 중심의 세상과 선을 긋고 싶을 터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정부가 돈과 법률을 들고 앞에 나서기보다 가족, 이웃이나 친구, 그리고 전문가가 해당 청년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청년은 ‘도움이나 돌봄의 대상이 되기보다 함께 해주는 것을 더 원한다.’ 어느 청년센터 관계자의 말이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청년이 마주하고 있는 일자리 문제가 이처럼 복잡다기해 보이지만 좋은 일자리가 많으면 풀지 못할 바도 아니다. 물론 여기에 기업의 이윤극대화 원칙이 큰 장해물인 건 맞다. 그러나 시장 실패를 시장의 자동 기제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보수경제학의 믿음 말고도 해결 방안이 있다.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지만, 민간이 수익성을 이유로 수행하지 않거나 못 하는 일은 공공이 감당해야 할 과제다.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의무다. 실제로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헌법상 의무 수행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적극 방해하는 세력의 범위는 넓고 힘도 세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이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정책으로 실행하고자 했다. 일부 여론은 나라가 내일이라도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온갖 난리를 쳐댔다. 좀이 슨 지도 이미 오래된 외국 교과서에서 어쭙잖은 근거를 찾아주거나, 심지어 날뛰는 여론 앞에서 선동의 나팔을 불어대던 무리들. 나라와 청년은 어찌 됐든 자기 자리 지키기에 수치심마저 팽개치거나, 정치공학적 잔머리나 굴려대는 이러저러한 꾼들.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우리가 꼭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자주 만나는 청년에게 물었다. 민간과 공공 중에서 누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까? 광속으로 돌아온 대답, 명쾌하다. “그걸 누가 만드냐가 무슨 대순가요? 둘이 함께 만들든지, 서로 많이 만들기 경쟁이라도 하든지.” 필자와 함께 사는 M세대와 Z세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대선후보들이 그리도 애써 경청하고자 하는 MZ세대의 의견이다.

이런 의견을 참조해서 독자들께선 다음 문제를 고민해 보시라. 좋은 일자리가 모자라서 청년과 나라가 곤경에 빠져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①자기는 만들지 않으면서 다른 곳에서도 만들지 말라거나, 내가 만들 터니 돈과 권력을 모두 넘기라는 주장 ②누구든 관계없으니, 필요한 일자리를 우선 만들기나 하라는 주장. 둘 중에서 어떤 게 더 현실적이고 정의로운 주장인가? ②가 더 정의롭다고 공감하는 세력이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을 청년들과 함께 결국은 이뤄낼 수 있는 정책적, 정치적 실천력까지도 두루 갖추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