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는 일터, 단협으로 담다
[커버스토리①]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는 일터, 단협으로 담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9.12 00:01
  • 수정 2022.09.14 0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시간 단축, 사업장을 넘어 전 사회로 퍼지다
마음 건강에 일터가 영향을 미친다면 마음 돌보기를 단협에

‘이런’ 단체협약

‘노동조합의 A-Z’라고 불리는 단체협약. 단체협약에 담을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대체로 조합원과 사업장을 위한 내용이 담기지만, 몇몇 조항은 사업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참여와혁신>은 건강, 녹색, 젠더, 연대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준비 중인 노동조합을 만났다.

커버스토리① 단협으로 건강한 일터 만들기

단체협약은 간단하고 건조하게 표현하면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가 임금, 인사, 고용안정, 노동시간, 노동조건, 노동조합 활동 보장, 기타 노사 사이 쟁점사항 등을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한 사항을 문서화한 것이다. 단체협약 내용 중 무엇 하나 안 중요한 것이 없겠지만 어떤 조건 속에서 일하는지를 규율한 것에 해당하는 임금, 고용, 노동시간, 노동조건은 노동자에게 특히나 중요하다.

그중 단체협약 안에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내용들이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 장시간 일하고 돈을 많이 버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 사회적으로 제기됐다. 육체적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 문제가 일터에서 대두됐다. 최근에는 초유의 감염병이 기폭제가 됐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건강 관련 어떤 내용들을 노사 교섭을 통해 현실화시켰을까.

그만 오래 일하고,
그만 밤에 일하자

노동시간의 양은 노동자 건강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오래 일하는 것은 피로를 유발한다. 오래 일해 야간노동까지 수행하게 되는데, 야간노동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적 전환점은 주5일제 시행이다. 주5일제 시행에 큰 역할을 한 것이 2002년 금융산업 노사의 주5일제 합의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주5일제 합의를 이끌었다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이끌어 심야노동의 고리를 약하게 만들었다. 2012년 현대차노사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고 물량보전 방안, 임금 보전 방안 등을 노사가 고민했다. 파급력은 컸다. 당시 기아차가, 한국GM이, 완성차업체 1차 하청업체들이 근무형태를 바꿨다. 기업 단위 합의였지만 현대차가 가진 산업에서 위치 때문에 산업 내부의 변화도 가져왔다.

최근에는 여기서 진일보한 노사 합의가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노사가 주4일 근무를 합의하고 몇 곳의 병동에서 시범실시하기로 했다. 노사 교섭을 통한 협약으로 진행하는 역사적인 실험이다.

뼈마디가 아픈 것도
노사가 논의할 수 있나요

일하다가 근골격계 질환이 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직업의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이 유독 많이 발생하는 직업이 있다. 간호사들도 그렇다. 환자를 옮기거나 오래 서 있거나 반복적인 동작을 유난히 취한다든가. 10여 년 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는 근골격계 질환 산재 인정 투쟁 끝에 노사가 함께하는 근골격계질환예방추진팀을 만들기로 단체협약을 맺었다. 추진팀을 통해 사업장 내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현장 개선 사업을 하는 내용을 담았다. 추진팀의 초기 활동으로 지금은 전국적으로 흔해진 간호사들의 운동화 착용이 그렇게 서울대병원에서 시작됐다. 당시 딱딱한 간호화로 오래 서있고 많이 걸어야 하는 간호사들이

다리에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했었다. 추진팀은 현장 친화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세세한 부분까지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바꾸고 있다. 앉을 때마다 닿아 무릎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스크 하부장을 뗐다. 하지 정맥류 예방을 위해 고탄력 스타킹을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연 2회 지급하도록 만들었다. 나의 몸을 지켜가며 일할 수 있는 길을 추진팀을 통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추진팀이 운영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노동조합의 끈질긴 투쟁과 교섭 끝에 맺은 협약이 자리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보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 돌보기에 대한 중요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우울증, 공황 등 심리 장애를 일터와 연관 짓지 않고 개인적인 사유로 돌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단협을 통해 선도적으로 돌보고 있는 곳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와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이다. 이 두 곳이 선도적일 수 있었던 이유에는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2003년 이후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9명이 공황장애로 자살했다. 긴 노동시간, 1인 근무, 컴컴한 지하철을 오래 응시해야 하는 상황, 생리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상황, 철로 소음 등으로 공황장애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대책위까지 꾸려져 이들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고, 기관사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싸움과 연구가 병행됐다. 이를 계기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단협을 노사가 맺었다. 철도노조도 마찬가지이다. 단체협약 제110조 정신건강 증진의 주요 내용으로 심리상담센터와 심리 치유프로그램 운영이 담겨있다.

단협으로 건강한 일터 만들기

이외에 많은 노동조합들이 사용자측과 단체협약을 맺으며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을 넣는다. 노사가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일터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산업안전보건법 강화로 노사가 함께 안전보건활동을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코로나19 이후로 안 다칠 권리뿐 아니라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로 사회적 요구가 확장되고 있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결국 단체협약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활동이 점점 기본이 되고,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