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불평등 완화를 위한 연대를 교섭에 담다
[커버스토리④] 불평등 완화를 위한 연대를 교섭에 담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9.12 00:04
  • 수정 2022.09.14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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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산업 내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연대임금
노사가 조성한 사회연대기금, 취약계층 노동자들과의 연대

‘이런’ 단체협약

‘노동조합의 A-Z’라고 불리는 단체협약. 단체협약에 담을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대체로 조합원과 사업장을 위한 내용이 담기지만, 몇몇 조항은 사업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참여와혁신>은 건강, 녹색, 젠더, 연대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준비 중인 노동조합을 만났다.

커버스토리④ 연대가 노사 교섭을 만났을 때

한국 사회 여러 격차 문제 중 하나로 임금 격차 문제가 꼽힌다. 물론 임금 격차는 꾸준히 줄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2008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의 55.5%, 절반 수준이었다. 2021년 기준 72.9%까지 좁아졌다. 그럼에도 한국의 임금 격차 수준은 국제적으로 높은 편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임금 격차는 미국 다음으로 크다. 2020년 기준 미국의 임금10분위배율*이 4.84배로 OECD국가 중 1위, 한국이 3.60배로 2위이다. 비교대상국 중 임금10분위배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스웨덴으로 2.14배이다.
*임금10분위배율 : ‘상위 10% 노동자 평균임금 ÷ 하위 10% 노동자 평균임금’. 즉 임금 수준 상위 10%의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하위 10% 노동자 평균임금의 몇 배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치로 임금 격차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임

임금 격차 문제는 소득 불평등을 야기하고 여러 사회병리 현상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한 사회는 해당 사회의 임금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중 하나가 연대임금 전략이다.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다. 연대임금을 통한 임금 격차 해소는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고소득-저소득 구조로 나뉜 노동자 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대임금을 달성하는 ‘전략’은 다양하다. 노사 임금교섭을 통한 방안,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을 활용한 방안,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부 주도의 적정임금 정책 방안 등 여러 가지 접근법들이 있다. 또한 산업 내 공정 거래를 위한 원-하청 불공정거래 개선, 원-하청 공동복지기금 마련 등 다양한 상생 제도도 연대임금 전략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이다. 이러한 여러 방안들이 입체적으로 얽혀 연대임금을 완성하고 임금 격차를 해소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연대임금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곳곳에 있다. 특히 노동조합 중심으로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를 완화하고 노동자 집단 내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곳이 있다.
 

ⓒ 금융노조
ⓒ 금융노조

금융노조, 비정규직 차별철폐로
시작한 연대임금 전략

그중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의 연대임금 전략 구사는 오래됐다. 2004년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정규직 임금인상률의 2배로 한다는 금융 노사의 산별임금협약이 추진됐다.(현재는 일반직군과 저임금 직군의 임금 격차 해소라는 말로 바꿔 쓰인다. 저임금 직군은 일반직군 임금 수준의 80% 미만인 직군이다.)

금융산업 내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금융노조의 고민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노조는 2003년 임단협을 준비하면서 단체협약과 관련한 7개 핵심사항을 정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비정규직 차별철폐이다. 임금 인상 및 노동조건을 정규직과 동일화한다는 목표였다. 당시 금융 노사는 ‘비정규직 관련 공동합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2004년에는 격차 해소를 위한 금융노조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금융노조는 노동자 연대를 위한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2004년 임단협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당시 금융노조는 임금 인상과 관련해 정규직은 10.7%,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졸초임 대비 85%를 요구했다. 산별중앙교섭 끝에 금융 노사는 ‘정규직3.8%±α 인상’,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2배 이상 임금 인상’을 하기로 임금협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2배 인상’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까지 이러한 임금협약 기조는 유지돼 오고 있다. 보통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일반직군의 임금인상률이 정해지고, 저임금 직군의 인상률은 지부 노사가 보충교섭으로 정한다고 임금협약을 맺는다. 이후 지부별 보충교섭으로 저임금 직군의 인상률을 일반직군 인상률의 1.5~2.0배로 정한다.

이러한 임금협약 외에도 2004년에는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위한 금융 노사의 합의가 있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를 도입하고, 향후 3년 내 비정규직 비율을 1999년 6월말 수준으로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 임금 및 처우개선을 명문화한 큰 성과를 거둔 산별중앙교섭이라고 평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가속화,
연대임금의 필요성 대두시킨 배경

당시 금융노조가 격차 해소를 위한 산별중앙교섭을 펼친 데에는 사회적 배경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김일영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가속화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양극화는 심화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이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과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적극적으로 산별 차원에서 고민한결과”라고 설명했다.

《금융노조 60년사》에서도 “2004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세로 경제 불안과 불확실성이 지속됐다. 수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아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신용불량자 문제로 카드 대란이 일어났으며 이는 은행의 경영을 불안하게 했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현격한 임금 격차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고 당시 배경을 밝히고 있다. 또한 외환위기 직후부터 은행권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채용 등이 누적돼 오고 있었다.

이러한 방안으로 임금협약을 통해 동일 산업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들은 다른 곳에서도 시도됐다. 흔히 하후상박(下厚上薄, 아래는 두텁게 위는 얇게)이라 불리며 현장에서 적용되기도 한다.

잘 알려진 사례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하후상박 원-하청 임금 연대가 있다. 금속노조 산별교섭에서도 하후상박 전략이 활용된 바 있다. 기업 단위 노동조합에서도 해당 기업 안의 저임금 직군의 임금인상률을 좀 더 높이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사무금융 노사,
사회연대기금 조성해 재단을 만들다

노사가 기금을 조성해 사회연대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는 동일 산업 내 노동자들, 같은 기업 내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취약계층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기금형성 활동이다. 기금 형성에 노동조합뿐 아니라 교섭을 통해 사용자측의 기금 출연을 이끌어내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도 활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이다. 2018년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하 사무금융노조)이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되는 2020년까지 노사가 함께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기금을 활용해 한국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목표였다.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 코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이기철 사무금융연맹 수석부위원장은 “2018년 초에 사업을 계획하면서 귀족노조 혹은 철밥통이라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임원들과 사무처 간부들이 했다”며 “이제는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사회연대를 할 수 있는 논의를 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는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방향을 잡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연대를 기조로 잡은 것은 공헌이나 봉사활동과는 다르게 시혜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꿀 수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라며 “시스템, 법제도, 사회문화를 바꾸는 활동을 사회연대기금으로 해나가는 목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연대 활동이 노동조합 집행부가 바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조합 외부에 독립적인 기구 형태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재단 방식을 활용하기로 했다.

ⓒ 사무금융노조

그렇게 시작한 논의로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의 씨앗을 만들게 된 자리가 2018년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연대기금 조성 제1차 사무금융 노사 산별중앙교섭’이다. 당시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한 31개 지부 노사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임금 총액의 0.4%씩, 3년간 600억 원의 사회연대기금을 출연하고 별도의 공익재단 설립을 통해 이를 운용하자고 합의했다. 현재까지 사무금융노조 산하 지부 노사들이 함께 기금을 출연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급여의 천원 단위를 기금으로 내고, 사용자는 그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는 방식으로 지부 단위(기업 단위)에서 기금을 출연한다.

해당 기금을 통해 비정규직 및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중소기업 등에 대출금리 인하 지원 등도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플랫폼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기금을 활용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최근에는 유급휴가가 없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 아프면 쉴 수 있도록 혹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유급 지원하고 있다. 의제를 확장해 청년 노동 문제, 디지털 전환으로 빚어지는 노동 문제, 기후위기 문제 관련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작년부터는 사무금융노조가 산하 지부와 결의한 임금협약 공동요구안에는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위해 조합원 1인당 월 5,000원을 임금인상 요구율에 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의 경우 ‘5.0% + 사회연대기금 월 5,000원(조합원 1인당) + α’가 임금인상 공동요구안이다. 안정적인 사회연대기금 조성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게 이기철 사무금융연맹 수석부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동안은 노사가 기금을 출연했지만 정기적이지 않는 등 안정적 기금 조성에 어려움이 있었다.

금융노조에도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있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은 2018년 10월에 정식 출범했는데, 2017년 11월 금융산업 노사의 재단 설립 합의가 있어 가능했다. 노사가 기금을 모으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과 2015년에 금융산업 노사 합의를 통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했었고, 거기에 2018년 노사가 함께 마련한 재원을 더해 총 2,000억 원 규모로 출발했다. 소방관 방화복 전용 특수세탁기 기증으로 시작해 점점 영역을 넓혀 일자리 창출 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청년 부채 문제 해결, 플랫폼노동자 직업훈련 및 자산형성 지원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상상한
사회연대를 위한 또 다른 방안

금융노조는 재단을 통하지 않고도 사회연대임금 활동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에는 임금 인상분 1.8%의 절반인 0.9%를 용역·파견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취약 노동자 및 코로나19로 실업을 맞은 노동자들의 대책 마련을 위해 근로복지진흥기금에 출연했다. 나머지 0.9%는 당시 침체된 내수 활성화 및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조합원들에게 온누리상품권 및 지역화폐로 지급했다.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병원 사업장 안에 함께 존재하는 파견·용역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올해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에 넣었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청소, 주차 등 파견·용역노동자들의 진료비 감면을 위한 노사 기금 마련을 단체협약으로 노사가 합의했다”며 “세상을 조금 더 평등하게 만들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연대임금 전략과 사회연대기금 조성
산별노조 구축으로 가능성 높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동조합의 연대임금 전략 예들을 살펴봤다. 그러나 전략을 달성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일례로 기금 출연을 위해 조합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 사회에 심해진 양극화만큼 심해진 것은 개인이 알아서 어떻게든 강해져 생존해야 한다는 무의식이다. 나의 몫을 일부 내놓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행위가 된 것이다. 다른 어려움은 사용자 측에게 기금 출연 의지를 다지게 하는 것이다. 이미 자체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기업 차원에서는 노동조합과 같이 연대활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노동조합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고 연대임금 전략과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해나가고 있다. 그 바탕에는 산별교섭이 자리하고 있다. 즉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일영 부위원장은 “아무리 만 명이 넘는 기업 단위 노동조합이라도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기업별 노동조합에서는 회사를 상대로만 하면 되지 않냐는 조합원들의 인식이 있어 제한적이다. 반면 산별노조는 연대임금 전략이나 사회연대활동을 담아낼 수 있다. 산별노조의 일은 산업 전체를 조망하고 사회적 의제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