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왜 단체협약을 체결하려고 하시나요?
[커버스토리+] 왜 단체협약을 체결하려고 하시나요?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2.09.12 00:05
  • 수정 2022.09.13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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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 통해 노조 활동 보장, 제도 범위 밖 노동조건 개선 등 필요
법적 노동자성 불인정 등으로 교섭 거부 따라 단협 체결 어려운 문제도

‘이런’ 단체협약

‘노동조합의 A-Z’라고 불리는 단체협약. 단체협약에 담을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대체로 조합원과 사업장을 위한 내용이 담기지만, 몇몇 조항은 사업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참여와혁신>은 건강, 녹색, 젠더, 연대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준비 중인 노동조합을 만났다.

커버스토리+ 단체협약, 노동자 스스로를 지키는 수단

여기 단체협약 체결 자체가 어려운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아직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거나 오랫동안 단체교섭을 진행한 끝에 최근에 협약을 체결했다. 대기업 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개인사업자, 비정규직 등 노동자들의 신분이나 직업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이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단체협약 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체협약 체결은 왜 필요했으며, 그 체결 과정은 왜 어려웠는지 또는 체결이 왜 안 되고 있는지, 또 단체협약이 노동자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등을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봤다.

“노조 활동을 위한 제반 조건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서요”

작년 8월 12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기흥 나노파크에서 삼성전자 단체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DB

금속노련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위원장 대행 손우목)은 2013년 노동조합이 생겼지만 삼성전자의 무노조 경영방침에 따라 제대로 된 단체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을 이행하지 못해왔다. 손우목 삼성전자노조 위원장 대행은 단체협약 체결이 필요한 이유로 노동조합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조합 활동 시간(타임오프), 조합사무실 등의 보장을 짚었다. 노조 활동을 위한 제반 조건부터 마련해야 더 많은 자료를 조사해서 단체교섭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노조들은 활동 여건이 여의치 않아요. 업무가 끝난 이후 개인의 시간을 따로 빼가지고 노조 활동을 준비한다든지, 아니면 개인 연차 등을 이용해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또 여러 조합원들이 모이려면 시간 맞추는 것도 어렵고요. 뭔가 현업에서 나와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마련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첫 단체협약은 그 내용에 집중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난해 8월 삼성전자사무직노동조합, 삼성전자구미지부노동조합, 삼성전자노동조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4개 노동조합은 삼성전자공동교섭단을 구성해 삼성전자와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체협약에는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노동조합 전임자의 근로시간면제 적용 ▲유급 노동조합 활동 시간 보장 등이 포함됐다. 아울러 올해 8월 임금협약 체결을 통해 ▲2021년과 2022년 임금인상률 각각 7.5%, 9% 확정 ▲명절배려금 지급 일수(3일→4일) 확대 ▲올해에 한해 재충전휴가 미사용분 보상 등을 합의했다.

“법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요.”

지난해 10월 7일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카카오모빌리티가 국회에서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중재로 성실교섭 선언식을 열었다. ⓒ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최저 노동조건 기준을 규정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대리운전기사·학습지교사 등은 먼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고자 한다. 노사 합의를 통한 단체협약을 통해서라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보호받지 못하는 최소 노동조건 등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들은 소송을 통해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려 하고, 단체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 등의 권리를 행사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2012년 대구지역대리운전노동조합은 지자체로부터 설립신고증을 교부받고 업체들과 단체교섭을 통해 콜당 수수료 제한, 복지기금 조성 등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외 지역 대리운전노조들은 단체협약 체결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전국 단위 대리운전노조는 설립신고증이 없는 상태로 활동해왔다.

그러다 2019년 대리운전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고, 2020년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위원장 김주환)은 투쟁 끝에 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한편, 대리운전노조는 2016년 ‘카카오T 대리’ 앱을 통해 대리운전 시장에 진입한 카카오모빌리티에 교섭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중재로 카카오모빌리티와 성실교섭 선언식을 열고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대리운전기사들의 사회 안전망 마련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단체협약 체결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내년 7월 1일부터 대리운전기사들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아요. 그런데 내년 7월 1일 전까지 산재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잖아요. 따라서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이런 부분, 산재보험 적용 시기를 앞당기자는 등의 내용을 교섭에서 요구하고 있어요. 또 현장에서 대리운전 기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반영해 휴식권 보장 등의 복지 제도를 협약에 포함하고자 사측과 논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서
사용자가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네요”

작년 3월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DB

서비스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구몬지부(지부장 김미례)는 2000년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이후로 아직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2018년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노무 제공의 대가 명목으로 회사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는 등 근거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래서 재능교육엔 단체협약이 있다. 대교도 단체교섭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교원구몬 학습지 교사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아, 회사가 이를 근거로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구몬지부는 주장한다.

지난 7월 구몬지부는 교원구몬에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세 차례 보냈다. 구몬지부에 따르면, 교원구몬은 “구몬교사들이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며 “구몬교사가 노동자라는 법적 판단을 우선 받아야 한다”는 회신을 했다.

이와 관련해 김미례 학습지산업노조 구몬지부 지부장은 “일하는 사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든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수료 등 지급 방식이나 업무 형태가 재능이나 구몬이 다를 바 없다”며 “학습지 교사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모든 학습지 관련 기업 대상으로 소송을 계속 해야만 하는 거냐”며 단체협약 체결에 앞서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과정이 지난하다고 토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지부장 염정렬)도 2018년 대구 MBC와 방송작가 원고료 지급기준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후로 추가로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안동 MBC와 ‘원고료 지급 기준 협약’을, 2019년 포항 MBC와 ‘원고료 지급 기준 합의서’를 체결한 바 있으나 단체협약의 형태는 아니었다. 방송작가가 프리랜서에 해당해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방송사들의 주장에 따라, 방송작가와 방송사 간 단체협약 체결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7월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두 방송작가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행정법원 판결이 나와, 방송작가도 노동자라는 방송작가지부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염정렬 방송작가지부 지부장은 방송작가의 노조법상 노동자라는 주장과 함께 방송사에 단체교섭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년 매 분기마다 각 방송사에 단체교섭, 단체협약 관련한 공문을 보내고 있는데 다들 봐도 못 읽은 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방송작가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방송사는 저희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교섭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거죠. 일단 지금은 KBS와 협의체라도 구성해 원고료 등을 논의하고자 하는데요. 협의체는 수수료 요율 등 저희가 협상에서 요구할 수 있는 범위가 적어요. 단체교섭으로 들어가면 조합원들 대상으로 전반적인 임금 인상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협의체 등은 교섭에 비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근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서
사용자가 임금 등은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도 해요”

올해 3월 5일 한국경륜선수노동조합과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경륜선수노동조합

공공연맹 한국경륜선수노동조합(위원장 이현구)은 올해 3월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3월 경륜선수노조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상견례 이후로 노사는 여러 차례 교섭했지만, 기본급 지급 등 임금 관련 사항은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측의 주장으로 교섭이 결렬됐다. 이에 경륜선수노조는 지난해 7월부터 180일간 총파업에 돌입했고, 이후 노사는 올해 2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놓은 조정안을 바탕으로 다시 교섭을 진행한 후 단체협약을 맺었다.

단체협약에는 조합사무실 제공, 근로시간면제제도 도입 등을 명시했고, 노사는 제도개선TFT를 구성해 산재보험료 지원, 선수등록 취소제 기준 완화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또한 임금과 관련된 상금교섭은 별도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현구 경륜선수노조 위원장은 기본급 등 임금에 관한 사항을 단체협약으로 체결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경륜선수들은 공단이 주최하는 경기에 출전해야 출전 수당·안전 수당·상금 등의 급여를 받아요. 시합을 안 하면 급여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시합 없는 기간의 생계 보장을 위해 기본급을 요구했고, 그게 안 되면 훈련비 명목으로라도 지급하면 안 되겠냐고 사측에 요구했죠. 그런데 사측은 근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 등을 들어 기본급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이제 상금교섭을 통해 상금체계 등을 논의하겠지만, 기본급과 관련된 내용은 여전히 변화가 없어 좀 안타깝죠.”

“단체교섭이 아닌 노사협의회 등 다른 경로로
노동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사용자들이 단체교섭 대신 다른 경로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전자는 단체교섭과 별개로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인상률 등 노동조건을 결정한 바 있고, 지난해 단체협약에도 그 내용이 반영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손우목 위원장 대행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으로 노조 차원에서 참여한 적이 없다”며 “삼성전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사협의회 등을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노조와 협상하지 않고, 임금이나 이런 부분을 노사협의회를 통해 협의하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의견만 듣고 회사가 결정하려는 거죠. 또한 단체교섭에 따른 결과(단체협약)는 노조의 성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회사가 노조에 성과를 주기 싫어서 노사협의회를 통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카카오모빌리티는 2016년 대리운전 시장에 진출했을 때 대리운전노조와 업무양해각서를 맺고 노조로부터 대리운전기사 처우 등과 관련해 자문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자문을 통해 노조의 요구를 반영하기에는 부족했다고 김주환 위원장은 설명했다.

“회사한테 건의하는 형식이 되다 보니, 노조의 요구도 사용자가 듣고 싶은 내용만 취사선택할 수 있었죠. 진짜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의견을 들었다 정도로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교섭이 아니고서는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기 현실적으로 어렵겠다는 판단에 따라 교섭에 나서기 시작했던 거죠.”
 

“단체협약,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노동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수단”

단체협약 체결 자체가 어려운 이들에게 단체협약은 어떤 의미일까? 단체협약 체결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이자 노동조건 개선의 출발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의견 대부분은 일치했다.

손우목 삼성전자노조 위원장 대행 단체협약 체결 이전에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 등을 변경하는 경우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노사 합의를 통해 단체협약을 맺음으로써 협약 이전으로 노동조건이 후퇴되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지금부터 단체협약 안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갈 일만 남았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 특수고용노동자인 플랫폼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해 여러 사회 안전망으로부터 배제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예컨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죠.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그런 보호 수단이 없어요. 따라서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노동의 질을 개선시키는 게 중요하고 그 방법으로는 사실상 단체협약밖에 없어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단체교섭·협약은 좀 더 절박하게 필요하죠.

김미례 학습지산업노조 구몬지부 지부장 학습지 선생님이나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아이한테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지 둘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특수고용직(학습지 교사)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직업으로 더 낫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어떤 노동이든 다 가치가 있어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 등을 통해 우리 후대에 불리한 처우를 받는, 특수고용직과 같은 노동형태가 없어지길 바라요.

염정렬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지부장 방송작가도 노동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체협약 체결은 노동자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봐요. 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건 큰 의미가 따로 있다기보다 노동자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거죠.

이현구 경륜선수노조 위원장 단체협약을 체결한 지금부터 우리가 노동자로서 인정받는 첫 단추가 끼워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부터 단추를 쭉 잘 채우는지, 아니면 삐뚤빼뚤하게 채우는지는 노조랑 사측이 이제 만들어 가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