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녹색 단협’, 미래를 위한 노동조합의 약속
[커버스토리②] ‘녹색 단협’, 미래를 위한 노동조합의 약속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9.12 00:02
  • 수정 2022.09.14 0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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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폭우·폭염·가뭄 빈번해질 2100년...“기후위기는 내 사업장 문제”
조합원과 지역, 시민 건강과 분리될 수 없는 노조의 기후위기 대응

‘이런’ 단체협약

‘노동조합의 A-Z’라고 불리는 단체협약. 단체협약에 담을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대체로 조합원과 사업장을 위한 내용이 담기지만, 몇몇 조항은 사업장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참여와혁신>은 건강, 녹색, 젠더, 연대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하거나 준비 중인 노동조합을 만났다.

커버스토리② 기후위기 시대, 녹색 단체협약 

8월 24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 활동발표’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8월 24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 활동발표’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2100년, 만 2세인 유아가 80세를 맞이할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기초과학연구원(IBS) 등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80년 뒤 지구를 예측했다. 분석 결과, 2100년 지구의 평균 기온이 2000년 대비 4℃ 오른다. 이 경우, 세계 일부 지역엔 하루 800㎜ 이상의 ‘물 폭탄’이 종종 쏟아진다. 이는 지난달 8일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었던 최대 강수량 380㎜를 두 배 넘는 수치다. 인류는 물론 지금의 생태계가 큰 위기를 맞는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2.9℃만 높아져도 35%의 생물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다.

재앙으로 닥칠 기후위기를 막고자 2015년 12월 세계 195개 국가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채택했다.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2℃ 아래로 억제하고, 나아가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론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탄소가 꼽힌다.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위기를 줄일 수 있다. 화석연료 중심인 산업 활동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폐기물 발생을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 일부 기업은 탄소중립을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강화하는 환경 규제 정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측면도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공산품을 소비한 노동자라고 기후위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만 녹색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실직 등 노동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완충 방안이 필요하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다.

지난 6월 21일 민주노총이 선포한 ‘녹색 단협 운동’에는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의식이 담겨있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감축 방안과 정의로운 전환을 단체협약의 주요 의제로 삼고자 한다. 민주노총은 “녹색 단협 운동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이 멀고 무거운 과제가 아니라 내 사업장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하고, 구체적 쟁취 과제 제시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성과들을 쌓아나가는 체계적 노조 활동을 확장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녹색 단협’은 이제 시작 단계다. 최근 몇 년간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며, 환경보호와 녹색 공정을 중심으로 관련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있다. 주요 쟁점 사항 중 하나인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단체협약은 아직 사업장 단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고용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골자로 한 ‘산업 전환 협약’을 체결한 정도다. 워낙 큰 의제라 개별 기업 단위에서 체결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일터에 확산하는 기후변화 위기

2021년 보건의료노조는 공동요구안에 ‘기후위기 극복’ 조항을 신설했다. 일선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한 보건의료 노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했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기후위기를 실감한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다. 팬데믹 초기 급증하는 환자로 의료 현장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었다. 보건의료산업 노사는 지난해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 보건의료산업 노사 공동선언문’에서 “지난 2년간 허술한 감염병 대응체계와 부족한 인력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기후위기는 인류 생존의 위기이자 보건의료의 위기임을 온몸으로 절감했다”고 밝혔다.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기후변화로 인한 사상자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폭염·폭풍·홍수 등으로 인한 피해자 속출, 온열질환 증가,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식량 부족, 신종 감염병 등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로 인해 보건 위기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보건의료산업 노사는 공동선언에서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신종 감염병 위기가 오더라도 국민과 환자들이 안심하고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는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1년 보건의료산업 산별중앙교섭 조인식’에서 노사는 기후위기 대응에 관해 합의했다. ⓒ 보건의료노조
‘2021년 보건의료산업 산별중앙교섭 조인식’에서 노사는 기후위기 대응에 관해 합의했다. ⓒ 보건의료노조

이러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단체협약에는 노사가 현장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담았다. ▲감염병·의료재난 발생 시대비체계 구축 ▲전 직원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대응 교육 정례적 시행 ▲환자·보호자 대상 기후위기 알리기 캠페인 전개 ▲생활용 일회용품 줄이기 등이다. 아울러 노사는 에너지 사용이 많은 산업적 특징을 고려해, 저탄소 의료기관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해나가기로 했다. ▲의료기관 내 온실가스 배출 줄이기 ▲재생에너지 확대 및 에너지 효율화 방안 마련 등이다. 지산하 보건의료노조 홍보부장은 “아직 현장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보인 것으로 파악되진 않는다”면서도 “적잖은 지부에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노동자를 보호하면 환경도 보호한다

‘녹색 단협’ 체결은 주로 기후변화에 대한 변화를 체감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제조업이 대표적이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 위치한 대창은 황동봉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구리 스크랩, 아연 등을 녹여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사업장엔 용해로가 있다. 황동봉 분야에선 국내 1위 업체로, 지난해 연 매출은 1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40년 넘은 공장에는 노후 설비가 많고, 먼지 등 유해 물질을 빨아들일 집진 시설이 부족했다. 큰 규모를 자랑하지만, 환경 부분은 비교적 취약했던 것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는 몇 년간 대책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김관운 지회장의 말이다.

“용해 작업을 하면 유해 물질이 현장에 다량 분포되는 경우가 있어요. 산화 과정에서 납·비산 등의 여러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데, 피부에 닿으면 트러블 등이 발생해요. 특히 근무 경력이 비교적 짧은 사람들은 내성이 없다 보니 어려움을 많이 호소해요. 집진 시설이 충분했다면 상당 수준 예방할 수 있던 부분이거든요. 몇 년 전부터 집진시설을 보강해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지금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시기라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노동조합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건 지난해부터다. 당시 단체교섭에서 대창지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사측과 이어갔다. 김관운 지회장은 사회적으로 대두된 기후위기와 금속노조의 공동요구안 등을 변화의 요인으로 꼽았다.

“2~3년 전부터 기후위기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니 사측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작년 교섭에서 노사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얘기를 했어요. 사회 전반에 친환경 공정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였고, 일부 사안에 공감대를 이뤘어요. 금속노조 중앙에서 공동요구안에 기후위기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아직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회사 안전보건팀이 주도하며 점차 환경을 개선하고 있어요.”

2021년 단체혁약에서 대청 노사는 에너지 효율화, 스마트 생태공장 구축, 에너지관리 시스템 설치 등을 단체협약에 담았다. 집진기 증설·재배치, 태영광 발전소 설치, 에너지 절감형으로 변압기 교체 등의 내용이 포함됐고 현재 완료된 상태다. 김관운 지회장은 “사측도 원칙적으로 대책을 세워야하는 부분이었지만, 노사협의로 접근을 했다면 비용 많이 드는 부분에서 분명히 차일피일 미루지 않았을까 한다”며 “비선, 유해먼지 등이 그 전보다 많이 줄어 현장 조합원들이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합원의 건강에서 시작했지만, 집진기와 고효율 변압기 설치 등은 사업장을 넘어 사회 전반의 오염을 줄이는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김관운 지회장은 “내가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유해 물질이 배출되는 게 결코 좋지는 않다”며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접할 때면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지역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노동자와 사업주의 환경보호 의무

폐기물처리시설인 화성소각장은 환경기초시설로 분류된다. 폐기물 소각 후 발생한 가스와 폐수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법적 기준을 준수해야하며, 이를 어길시 환경 당국으로부터 처벌받는다.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화성소각장분회는 2013년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부터 환경보호에 관한 조항을 넣었다.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회사와 조합은 환경관계법에서 규제하는 폐수, 배출가스 등 유해 물질을 법적기준치 이내로 준수하도록 노력하며, 후손들에게 물려줄 깨끗한 환경을 위하여 서로가최대한 노력한다”고 명시했다.

최근에야 기후위기, 환경보호 등에 관한 단체협약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해당 조항을 단체협약에 넣게 된 배경을 물어보니, 곽경준 화성소각장분회 분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폐기물소각장을 위탁 운영하는 주체는 회사지만, 현장에서 소각장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건 노동자잖아요. 사측에 ‘법 기준을 맞추라’고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노동자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거로 생각해요. 콕 짚어서 변화한 부분이 없어, 어떻게 보면 선언적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 등 노동조건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깨끗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회사와 함께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넣었어요.”

곽경준 분회장은 노동조합이 출범하기 전부터도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시설이 들어선 지역 인근 주민의 암 발병률이 높다는 기사를 종종 접했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들은 유해 물질이나 환경오염 관련 이슈가 터지면, 화성소각장 측에 소명을 요구하거나 질의를 하기도 한다.

“‘법 기준을 잘 지키며 운영하고, 일하는 우리도 멀쩡한데 왜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할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공감되는 면이 있죠. 지난 3월엔 소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체내에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는 보도도 있었어요. 사고 발생 사업장도 아니고, 어떤 위험성 있는 결과가 나온 적도 없지만 많이 걱정되죠. 대부분의 지역 주민이 인근에서 오래 사신 분들이니까요. 오염 요소를 처리한 가스를 배출하더라도, 항상 조심해야한다 생각해요.”
 

폐기물을 소각 중인 화성소각장 노동자들
폐기물을 소각 중인 화성소각장 노동자들 ⓒ 곽경준 화성소각장분회 분회장

노동조합이 출범한 직후, 첫 단체협약안을 만들기 위해 소집한 총회에서 조합원 대부분은 환경보호 조항을 넣길 바랐다. 화성시 주민이기도 한 조합원들은 혹여 지역을 오염시키고, 주민에게 피해가 생겨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 환경보호 조항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다.

“조합원 입장에선 ‘후손들에게 물려줄 깨끗한 환경을 위하여 서로가 최대한 노력’한다고 선언한 셈이잖아요. 노동자는 단순 업무 처리자가 아니라, 현장의 감시자 역할을 하기도 해요. 단순히 법적 기준만 지킬 게 아니라 일할 때 좀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화성소각장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할당 지정 사업장이기도 하지만, 자원회수시설이다. 폐기물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열을 회수해 전기를 생산한 뒤 주변의 지역난방으로 공급한다. 곽경준 분회장은 “대체에너지원 발생에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그러한 생각을 서로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소각장과 마찬가지로 폐기물처리업체인 클렌코의 노동조합도 환경오염에 대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충북 청주시 북이면에 위치한 클렌코는 중부권 최대 폐기물처리업체다. 노동조합은 2019년 6월 출범했다. 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평등지부 클렌코지회는 2020년 9월 맺은 첫 단체협약에 ‘폐기물처리 업체로서 사회적 책무’ 조항을 넣었다.

클렌코지회가 이러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건 청주시가 회사에 내린 행정처분과 무관하지 않다. 2017년 검찰과 환경부의 합동점검에서 클렌코가 기존에 허가받은 용량보다 많은 양의 폐기물을 소각한 사실이 적발됐다. 검찰은 11월 클렌코와 대표를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이에 청주시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영업허가취소 처분을 했다. 클렌코는 청주시를 상대로 '폐기물처리업 허가취소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클렌코가 기준치보다 많은 폐기물을 소각한 사실이 밝혀지며, 인근 주민과 시민단체 등은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노동자에게도 위기였다. 성문모 클렌코지회 지회장은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자 단체협약에 넣은 것”이라며 ‘환경보호’관련 내용을 담은 다른 소각로 업계의 단체협약을 참고해가며 조항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회사가 잘못해서 충청북도에서 매스컴을 타면, 회사도 타격을 입지만 노동자도 창피하죠. 어느 회사에 다닌다고 떳떳하게 말을 못해요. 인식을 좋게 만드는 것도 노동조합의 의무라는 생각에 넣었어요. 예전처럼 하다가는 회사를 운영하지 못하는 시대예요. 민원도 많고 SNS도 활성화되어 있잖아요. 주먹구구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제대로 경영해야 회사도 살고 노동자도 살아요.”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며 ‘녹색 단협’도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작업 환경 곳곳에서 기후위기 심화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노동자들”이 교섭권을 이용해 정부와 사용자에게 탄소중립 실현을 적극 주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석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단체협약에 기후정의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했고, 그에 따라 녹색 단협운동을 선포하게됐다”며 “노조법이 보호하는 단체협약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미진했지만 앞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단체협약의 핵심 의제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