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빵구’ 아닐 아픔을 향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빵구’ 아닐 아픔을 향해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12.30 09:32
  • 수정 2022.12.30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 조한진희·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 북콘서트
건강은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가 아니라 투쟁을 통해 좋아진다

[리포트] 이달의 책 추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총장실 앞 농성장에서 북콘서트 중인 조한진희 씨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에게 아픔은 ‘빵구’였다. 아프면 담당하는 구역엔 구멍이 나고, 옆 동료에 추가 노동을 부탁해야 했다. 집에서도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살림을 부탁해야 했다. 그럴 때 청소노동자들은 미안했다.

그런 청소노동자들에게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쓴 조한진희 씨가 찾아왔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을 일터를 만들고자 싸우는 청소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조한진희 씨는 기존 건강권 담론을 확장시킨 질병권(잘 아플 권리)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말해왔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과 생활임금 보장, 휴게실 개선과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총장실 앞 무기한 철야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엔 집중 결의대회도 진행한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은 질병권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청소노동자들의 고착화된 저임금 구조를 바꾸고, 휴게실과 샤워실을 통해 지금보다 잘 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일터에서 질병권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게 돕는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조직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사업장 중에는 업무 외적으로 아프더라도 일정 기간 평균 임금 100%를 받으며 휴직할 수 있는 분회도 있다. 노동자들이 일터에 충분히 있으면 아픔은 구멍이 아니게 된다. 동료에게 미안하지 않으면서 아플 수 있게 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조한진희 씨는 지난 12월 7일 덕성여대 총장실 앞 농성장에서 진행된 북콘서트에서 청소노동자들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그중 한 가지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까?’였다. 조한진희 씨가 2009년부터 아픈 후 동료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조한진희 씨의 주위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거니까 다른 생각 말고 잘 쉬어서 낫기만 해’라며 일도 대신 해 주고, 병원비에 보태라며 돈도 보내줬다. 조한진희 씨는 처음엔 고맙다고 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염려’의 말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조한진희 씨는 여전히 아프기 이전으로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일주일엔 3일 정도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저는 계속 골골거리면서 적당히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저같이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어떻게 들릴까요?’ 이런 지점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들이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전제로 구성되고 설계된 것 자체가 문제고, 아픈 몸으로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제되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들을 가지게 됐어요.”

‘내가 몸이 아프니까 성격파탄자가 되는구나’ 싶어 자책하던 조한진희 씨는 어쩌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으로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겐 잘 아플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조한진희 씨의 북콘서트에 참여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성차별 사회에선
여성들이 더 아프다

조한진희 씨가 노동자들에게 또 던진 질문은 ‘성차별 사회에선 여성들이 더 많이 아플까요?’였다. “남성이 100을 받는다면 여성은 65의 임금을 받는다고 해요. 남성 정규직이 100을 받을 때 여성 비정규직은 얼마나 받을까요? 제가 찾아본 자료들마다 조금씩은 달랐는데요. 가장 적게 잡은 곳은 25를 잡더라고요. 좀 많이 잡은 데도 48정도였어요.”

“여성분들이 퇴직하시면 요양 보호사나 간병인 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간병인 구하는 사이트를 들어가 봤는데, 10시간에서 12시간 일을 하고 10만 원 정도 받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집에 형광등이 고장 나서 안정기를 교체하려고 사람을 부르니까 교체 시간은 15분에서 30분 정도였는데, 5만 원에서 7만 원을 받더라고요.”

“간병노동도 전기노동처럼 굉장히 전문적인 노동인데 사회가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죠. 환자가 수치심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면서 옷을 갈아입히는 것, 얼마나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겠어요. 원래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 감정 배려하는 것 잘 하지. 이런 식으로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죠. 술을 마셔서, 짜게 먹어서 아픈 게 아니라 일터에서의 차별과 혐오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거예요.”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은 노동자들을 아프게 한다. 여기에 조한진희 씨는 “노동에 숨어있는 굉장한 차별”로 사회가 여성 노동자를 특히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고정된 성역할이 만든 노동시장과 성별임금격차, 직장 내 성폭력 경험 등이 아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니나 블루베리보다
투쟁이 건강에 이롭다

조한진희 씨는 마지막으로 “노니 안 먹고 블루베리 안 먹어서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너무 긴 노동시간과 부당한 저임금, 관리되지 않는 위험물질들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는 것들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한진희 씨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가 아닌 투쟁을 통해서 좋아진다”고 믿는다. “건강은 노동조합에서, 농성장에서 부당한 저임금과 안전한 노동환경을 이야기하면서 좋아질 뿐 아니라, 저항하고 변화시킴으로 훨씬 좋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조한진희 씨의 말에 노동자들과 덕성여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경숙 덕성여대 분회장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걸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플 때 아프고 쉬면서 충분히 아픔을 이야기하고 살았어도 됐는데 그렇게 못했다”며 “반대로 아픈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안부를 물었을 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인희 덕성여대 학생(22학번)도 “9월부터 노동자분들과 연대를 시작했다. 연대 활동을 하다 보니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의 불통과 차별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밤에 총장님은 왜 그러는 걸까 고민을 하다 보니 수면 패턴도 불규칙해지고, 야식과 음주를 즐기게 됐다”면서도, “우리가 사회 구조 때문에 아픈 것이라는 선생님의 위로를 잘 전달받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