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은 사양할게요》, 청춘이라는 배역을 이해하는 과정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청춘이라는 배역을 이해하는 과정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2.01 11:29
  • 수정 2023.02.01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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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무대에 선 기분이다”
새로움은 오히려 감내해야 하는 무엇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 창비 ⓒ 창비

재밌는 소설을 고르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있다. 어느 유명한 작가, 혹은 관심 있는 작가의 보증된 소설이라고 해도 꼭 하는 행동이다. 서점에 가서 실물 책을 사서 본문의 첫 페이지를 편다. 그리고 첫 문장을 본다. 첫 문장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면, 책을 닫고 왼손으로는 책등을 잡고 오른손 엄지로 책장을 쓸어내리듯 튕기며 넘기다 아무 곳에서 멈춘다. 그리고 그 페이지의 첫 문장을 읽는다. 그렇게 의식은 종료되고, 그 문장이 마음에 든다면 책을 구입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김유담의 소설을 좋아했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청춘의 삶을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게 풀어내줘서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나면 그 글 안에 주인공이 알게 모르게 성장 혹은 성숙해 있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렇지만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도 역시나 구매하기 전 같은 의식을 치렀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은 “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무대에 선 기분이다”였고, 그 다음 무작위로 고른 페이지의 첫 문장은 “감정을 이용하는 게 나쁘다는 전제 자체를 뒤집는 질문에 나는 순간 조금 당황했다”였다. 두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무대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등장의 결말은 어떻게 될지 알고 싶었다. 감정을 이용하는 게 나쁘다는 전제는 어떤 상황에서의 사건에서 나온 것인지도 궁금했다.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공감이 돼서 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일하다 부끄러울 때, 불편할 때, 괜히 일이 안 풀리고 말릴 때가 떠올랐다. 감정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간도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면 취재원에게 공감한 척, 혹은 누군가의 고통을 전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심에는 신입사원 조연희가 있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 무작위로 고른 페이지의 첫 문장은 조연희의 마음 속 말이다. 조연희가 대학시절 연극동아리에 묻혀 살았던 것처럼, 당시의 자발적 열정과는 동일할 수 없지만 신입사원 조연희는 일터에 묻혀 살아나가야 할 첫 시작점에 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상황들을 마주해야 한다. 새로운 것은 흔히 말하는 좋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겪어가는 조연희를 보며 읽는 이의 마음도 이리저리 동요한다. 새로움은 오히려 감내하거나 싸워야 할 대상, 결국에는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무엇이었다. 그래서 새로움은 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무대였고, 감정을 이용하는 게 나쁘다는 전제 자체를 뒤집는 질문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에도 도달하게 했다.

조연희의 이야기와 함께, 그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읽는 이의 마음을 구겼다가 폈다 한다. 얄미운 존재이지만 아주 가끔 선배 노릇은 하는 성 대리, 조연희가 속한 팀을 이끌고 있는 책임감이 뛰어난 폭군 천 팀장, 결국 자기 생각대로 결론을 짓고 그 결론은 너희한테서 나온 것이라는 회의 구조를 통해 외형적 민주주의 만들기 달인인 하 본부장.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가 그들과 함께 회사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때론 짜증나고, 때론 살짝 웃음이 나오고, 때론 무기력해진다. 조연희의 연극 동아리 동기인 장미, 선배인 소연 언니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모순 덩어리들을 삼켜 나가고, 그 모순이 가끔은 추억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소설가 권여선은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의 추천사로 이런 글을 남겼다. “김유담은 우리의 청춘이 시보다 팍팍한 산문에 가깝다는 것을, 성장은 모험담이 아니라 부조리한 에피소드의 연쇄라는 것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시절의 아픔이 낭만적으로 녹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다. 김유담이 쓴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는 청춘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고 낯설고 아픈 그대로의 것이며 그 결과는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의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사방이 어두워졌다. 암전, 그리고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천장에 불이 켜지면서 각자의 자리가 채워지고 새로운 일과가 시작될 것이다. 어제와 별다르지 않은 똑같은 일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과정들의 세밀한 이야기, 그 결과에 도달하는 에피소드들을 읽고 생각에 빠져보고 싶은 이들에게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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