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돌보기》, 돌봄이 일로 인정받는 순간
《초파리 돌보기》, 돌봄이 일로 인정받는 순간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6.03 22:00
  • 수정 2022.06.03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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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은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건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증명받는다는 것

 [리포트] 이달의 책 추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갈무리

6월에 소개할 책은 임솔아 작가의 단편소설 《초파리 돌보기》, 2022년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다. 《초파리 돌보기》는 이원영을 권지유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다. 이원영과 권지유는 엄마와 딸 사이다. 이원영은 희소병에 걸렸다. 온몸에 털이 빠지고, 더운 날에도 추위를 느끼고, 잘 먹지를 못하고, 몸에 힘이 없다. 권지유는 소설가다. 엄마가 원인 모를,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엄마가 오래 전 과학기술원 실험동에서 ‘초파리 돌보기’ 일을 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원영은 그 이유를 ‘초파리 돌보기’에서 찾지 않는다.

왜 이원영은 그 이유를 ‘초파리 돌보기’에서 찾지 않으려 하는가. 이 물음에 앞서 권지유의 생각만을 따라간다면 초파리 돌보기 때문‘이라’는 확정보다는 초파리 돌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추측에 머무른다. 시간 순서상 ‘초파리 돌보기’라는 일을 한 뒤부터 생겨난 원인 모를 증상들이었을 뿐 명확한 인과관계는 나오지 않는다. 딸 권지유는 추측을 확정으로 바꾸기 위해 소설 쓰기를 빙자해 엄마 이원영의 기억을 더듬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읽는 이(나)와 권지유는 이원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원영은 애초에 ‘초파리 돌보기’는 자신의 이유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초파리 돌보기는 이원영이 그토록 꿈꿔왔던 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 노동으로 인정받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증명을 해주는 무엇인가였기 때문이다.

“원영은 1978년 가발 공장 취업 이후 외판원, 마트 캐셔, 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 볼펜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 등을 거치며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그럼에도 ‘50대 무경력 주부’로 취급됐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 자체가 드물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일을 하느냐 했다. 집에 있어도 되지 않느냐 했다. 딸에게 개인 교습을 시켜줄 수는 없었지만, 학원에 보낼 수 있을 정도는 됐다.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었던 시절에도 원영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학원비 몇 푼 버느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낫지 않냐는 식이었다. 원영은 자기 일을 갖고 싶었다. 집을 갖고 싶다거나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여느 사람처럼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33년 동안 그랬다.”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초파리 돌보기》, p.10)

그래서 이원영은 권지유가 탐탁지 않았다.

“지유는 원영에게 매일 전화를 걸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의 이름이 뭐였냐는 둥, 실험을 주도했던 교수는 누구였냐는 둥 물었다. 지유는 원영을 닦달했다. 잘 기억해보라고, 잊고 있는 것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하루는 지각을 했다고 원영이 말했다. 손을 씻는 것을 잊어버렸다. 초파리들은 바이러스에 걸렸다. 그날 원영이 손을 댄 초파리는 다 죽었다. 굳이 따지자면 해를 끼친 쪽은 초파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원영은 덧붙였다. “이상한 건 없다니까.” 없는 얘기를 지어내려는 지유가 원영은 탐탁지 않았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쓰면 안 된다고 여겼다. 초파리 실험동은 원영의 꿈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초파리 돌보기》, p.27)

읽은 이에 따라 이 단편소설은 산업재해를 다룬 이야기로, 감정노동을 다룬 이야기로, 돌봄노동을 다룬 이야기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색채를 가진 글이다. 내가 본 색채는 돌봄노동의 가치다. 초파리라는 어떻게 보면 작고 하찮은 것을 돌보더라도 일로 인정받는, 그래서 자신의 일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단편소설은 돌봄을 향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시선을 완곡히 비판한다. 돌봄에 있어서 작고 하찮다고 여기는 시선 말이다. 초파리라는 대상을 통해서가 아니어도 우리는 종종 돌봄의 가치를 작고 하찮게 여긴다. 정작 돌보는 이들은 그것이 초파리이든 무엇이든 온 신경을 다해 돌본다. 혹여나 내가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로 다양한 색채를 가진 이야기들은 여성노동이라는 한 지점으로 모이기도 한다.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기준 28페이지 하단에서부터 29페이지로 이어지는 글은 어떻게 여성노동이라는 한 지점으로 모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면에 옮기고 싶지만 찾아 읽는 맛이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이 짧은 소설 안에는 많은 사연들이 응축해 들어있다. 그리고 이원영의 딸 권지유가 어떻게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지 역시 찾아 읽는 맛이 더 클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한다고 여겨지는 노동 뒤에 숨겨진 노동인 돌봄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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