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일은 무엇인지 폭넓고 깊은 해답
《일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일은 무엇인지 폭넓고 깊은 해답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7.11 21:23
  • 수정 2022.07.11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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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고, 귀찮고, 고통스럽고... 그래도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
“일은 좋든 싫든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는 좌표로 작용한다”

[리포트] 이달의 책 추천

알 지니, 《일이란 무엇인가》, 동녘, 2007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면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한 유명한 말이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을 하면 삶은 질식돼 죽어간다.’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트 카뮈가 한 유명한 말이다.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작가는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프랑스 작가 둘이 일과 관해 유명한 말을 했다.

프랑스어로 ‘일’, ‘노동’은 ‘travail’이다. 어원을 따지고 보면 고통과 고생을 뜻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라틴어 ‘tripalium’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tripalium은 로마 군대가 사용하던 고문 기구였다. travail의 어원도 공교롭다.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으니 일은 고통스럽다. 어떻게 일을 하냐에 따라 인간의 삶은 질식의 고통에 빠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을 하기 싫어하거나 귀찮아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일에서 나의 본질을 찾으려고 한다. 흔히 말해 보람을 느끼고 사회 속 나의 존재를 확인하며 충만한 자아를 가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일은 인간에게 상당히 역설적이다. 어쩌면 travail을 어원 삼아 만들어진 다른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은 travail에서 나왔다고 한다. 여행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현대와 같이 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은, 그리고 교통수단과 숙박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고대와 중세에는 여행은 고역이기 마련이었다. 한편으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일반 평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귀족들의 여행은 상대적으로 편했을 텐데, 그렇다면 누구의 여행이 고역이었을까. 짐작하건대 성직자나 수도자이지 않을까 한다. 순례길 혹은 깨달음을 얻으러 방랑했던 걸음은 상당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에서 나타나는 광활한 대서양을 보는 듯한 환희가 여행의 끝에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일이 가진 특성이라고 생각해보면 일이 왜 인간에게 그렇게 역설적인지 퍼즐이 맞춰진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일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왜 이렇게 얄밉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파괴적이고, 때로는 창조적인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일이란 무엇인가? 일이란 게 무엇이기에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삶의 부패를 초래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기계처럼 일을 하면 삶이 질식의 괴로움에 빠지는 것일까. 알 지니 로욜라 대학교 철학 교수가 2000년에 쓰고, 2007년 들녘 출판사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일이란 무엇인가》는 그 물음에 대해 넓고 깊게 답한다. 사회학, 문학, 문화인류학, 철학, 역사학, 경제학 등 많은 분야를 통섭해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을 들려준다.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든 아니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버리든 우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일은 좋든 싫든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는 좌표로 작용한다. 따라서 일을 하는 동안 실망과 권태, 고생스러움을 완전히 피할 수야 없지만, 최소한 일을 통해 목적의식과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조셉 콘래드(소설가)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일을 싫어한다. 그러나 일에 내재되어 있는 요소, 즉 일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나만의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일이란 무엇인가》, p327)

위에 옮겨놓은 맛보기처럼 인간에게 역설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일에 대해 왜 그러한지 이 책은 설명해준다. 일이란 무엇인지, 흔히 이야기하는 노동윤리란 무엇인지, 과한 일에서 오는 일중독-스트레스-피로는 무엇인지, 좋은 업무와 나쁜 업무는 무엇인지, 노동의 종말은 있는지 등 총 14개의 장을 통해 일의 실체를 파헤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생각났던 날이 있다. 지난 2020년 12월이다. 2021년 1월호 커버스토리를 쓰기 위해 열두 사람을 만났다. 직접 만나거나 통화하거나 영상 통화를 활용했다. 2021년 주제는 커버스토리 제목인 ‘일과 나’처럼 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의 고달픔 속에서도 일의 참맛을 느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공교로운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그 당시 취재로 만났던 사람들은 고달픈 일 속에서 ‘발견한 나 자신, 찾았던 나만의 진실들’을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해줬다.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보다 일은 고통스러운데, 어떤 이들은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자신만의 진리를 찾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솟아난다면, 그리고 그 해답을 폭넓게 듣고 싶다면 나온 지는 좀 됐지만 《일이란 무엇인가》는 꽤나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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