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심장》,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마음’ 담은 소설
《제비심장》,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마음’ 담은 소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4.08 00:05
  • 수정 2022.04.12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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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시(時)보다 아름답고, 때로는 르포보다 날카로운 소설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의 비밀이자 진실” 담아

[리포트] 이달의 책 추천

《제비심장》 김숨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21.

지난 2월 취재 차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매달 한 번 열리는 여성 조합원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철배”를 만드는 그들은 더없이 따뜻했다. 처음 보는 낯선 기자에게 가장 통통한 치킨 닭다리 골라, 혹여나 기름이 묻지 않게 휴지로 손잡이를 만들어서 손에 꼭 쥐여줄 정도로.

이들을 다시 만난 건 지난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이었다. 노란색 안전모와 형광색 도장복, 산업용 마스크. 서울 한복판에서 흰 눈처럼 하얀 페인트가 묻어있는 작업복을 차려입고 이들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감정이 북받치는지 서럽게 우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가 왜 그리 서럽게 우는지, 그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제비심장》은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철판이 이상해. 울고 있는 것 같아.”
“녹가루가 흐르고 있어서 그래.”
“철판이 나보다 낫네.”
“뭐가?”
“난 울고 싶어도 못 우는데.”(p.145)

눈동자에 낀 유리가루는 눈물로 씻어내야 한다. 눈물 말고 다른 걸로는 씻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울고 싶어도 참는다. 슬픈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우리에게 눈물은 유리가루를 씻어내라고 있는 거니까.(p.38)

김숨 작가의 다른 책과 같이 《제비심장》 역시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다. 작가가 묘사하는 조선소는 사실적이라기보다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한다. 선박의 엔진부를 일컫는 ‘철상자’에서는 “망치, 나사, 철사, 발판, 페인트통, 호스, 스패너, 전동 드릴, 죽은 종달새, 안전모, 작업화 그리고 얼굴”이 날아다니기도 한다.(p.45~46)

주인공 ‘혜숙’과 ‘미애’, ‘분희’, ‘최 씨’, ‘정 씨’, ‘무하마드’ 등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긴 하지만, 소설 전체를 이끌고 가는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 그들이 일하면서 나누는 잡담, 잠깐의 쉬는 시간이나 퇴근하면서 잠깐잠깐 마주칠 때의 시시콜콜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노동과정이나 고용형태, 노동환경을 서술하는 작가의 시선은 르포 못지않게 날카롭다.

용접공들은 발판에 무릎을 꿇고서, 납작 엎드리고, 쭈그리고 앉아, 때로는 드러누워서 용접 작업을 한다. 손과 용접기만 겨우 들어갈 만큼 협소한 곳은 한 손에 거울을 들고, 다른 손에는 용접기를 들고 용접할 곳을 거울로 비워가며 작업을 한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장시간 작업하다 보니 예사로 어깨나 등에 담이 들고 허리나 목을 삐끗한다.(p.91)

조선소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저녁 5시까지다. 두 시간마다 10분 휴식시간이 있고,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다. 잔업은 밤 8시까지 하는 1차 잔업과 10시까지 하는 2차 잔업이 있다.
휴식 시간이 되면 우리는 두 부류로 나뉜다. 철상자 안에서 버티는 부류와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한 모금이라도 들이마시려는 부류. 나는 후자에 속한다. 철계단을 올라가는 데 최소 3분, 내려오는 데 최소 2분이 걸리기 때문에 바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분 남짓이지만 나는 바람이 너무 쐬고 싶어 꾸역꾸역 철계단을 올라간다.(p.148~149)

연극과 르포, 소설을 오가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삶에서 우러난 말들을 스쳐나가듯 내뱉는다. 조선소의 위험은 무엇인지, 여성으로서 조선소에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하는 게 아니라 느끼게 한다.

“습, 습! 자네 익힐 습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나? 깃 우(羽) 밑에 흰 백(白). 세상이 새하얗게 보일 때까지 죽어라 날갯짓을 해서 나는 법을 익혔다는 뜻이지.”(p.294)

7층 높이에서 발판과 함께 떨어졌다고 했어. 날아다니는 법만 터득하고 추락하는 법은 터득하지 못해서.(p.34~35)

“손녀 얼굴을 만지지 못했어. 세상 티끌이 하나도 안 묻은 얼굴에 시너 냄새가 밸까 봐. 녹슨 톱날 같은 내 손톱이 생채기를 낼까 봐. 나도 모르게 손을 잠바 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손녀 얼굴을 바라보는데 슬펐어.”(p.62)

“오늘은 내 엄마 영혼이 1년에 한 번 딸들을 만나러 오는 날이야. 난 못가. 작년에도 못 갔어. 잔업이 있어서 밤 10시까지 페인트칠을 했거든. 그런데 오늘도 잔업이 있네. 올해는 꼭 가려고 했는데.”(p.334)

28일 서울시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진행된 ‘조선산업 부활 떠받친 하청노동자 등에 체불·차별·산재 떠 얹는 조선사’ 기자회견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제비심장》에서는 날아가는 새에게 “심장”을 떨어뜨려달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일터에서 “제비 심장만 해질 것 같은 공포감”(p.40)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술 취한 남편 목소리가 들려오면 심장이 찌그러진 깡통”(p.260)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쪼그라든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심장 크기는 마치 새의 것과 꼭 맞을 것만 같다. 이들은 서로서로 날아가는 새가 심장을 떨어뜨려주길, 부디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길, 오늘 밤 평안히 잠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마음에 한 발짝 더 가닿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녀의 손이 들리더니 내 오른뺨을 어루만진다.
“혜숙아, 방금 널 위해 기도했어.”
“뭐라고?”
그녀는 까끌까끌하고 시너 냄새가 코를 톡 쏠 만큼 짙게 밴 손으로 내 뺨을 말없이 어루만지다, 멋쩍어하며 손을 거둬들인다.
“네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오늘 밤 네 몸과 영혼이 평안히 잠들게 해달라고…… 안녕.”
 “안녕.”
그녀가 가고, 나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을 소리 내 중얼거려본다.
“다치지 마.”
 “아프지 마.” (p.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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