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착함이란 무엇인가?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착함이란 무엇인가?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3.07 11:18
  • 수정 2023.03.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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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돌봄노동, 치매, 유튜브로 만든 선함이란 질문
“염병, 너무 애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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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고독사 워크숍’, 민음사, 2022년 (단편소설 이미지가 마땅치 않아 박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이미지로 대체)

우리는 착하게 살기를 은연중에 암시받는다. 권선징악을 학습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콩쥐팥쥐,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어릴 적부터 동화를 통해, 혹은 어른들이 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통해,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착하게 살기’가 무의식에 새겨진다.그런데 ‘착하게 살기’란 무엇인가? ‘착함’ 더하기 ‘살기’로 나눠진다면, ‘살기’는 ‘착함’보다 다소 쉽게 이해가 된다.(물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도 무척 어렵다.) ‘살기’는 설명하고 예로 들 수 있는 것들이 꽤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함’이란 무엇인가? 착함을 설명하고 예로 들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와 같은 절대적인 것들이다. 이외의 영역에서 착함은 어떻게 판단하나? 윤리의 잣대는 시대에 따라 또는 실시간으로, 상황적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잣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남의 착함을 판단할 때 착함의 절대적인 것들만 잣대로 삼는다.

박지영의 단편소설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는 착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선동(착할 선, 아이 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삼남매 중 막내)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이야기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자식이 돌보는 것이 착한 행위인가, 오히려 자식이 안 돌보는 게 착한 행위인가.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동이, 코인(가상화폐)으로 자산을 탕진하고 오갈 데 없는 선동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일정한 목적이 있다. 그렇다고 돌봄노동을 가족이 한다는 이유로 노동의 가격을 최소한 줄이려고 선동을 착한 아이로 불렀다가, 미친놈으로 불렀다가 하는 형과 누나는 코로나19 시기에 온종일 돌봄노동을, 또는 온종일 돌봄노동 중 일부를 자신의 노동으로 부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편으론 선동이 아버지를 돌보지 않고, 형과 누나가 어떤 식으로든 돌봤다면 아버지는 좀 더 학대 아닌 학대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불러도 대답 없는 밥솥처럼 무엇이 착한 것인지에 대해 답을 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무엇이 최선(최대의 선)인가?

박지영은 단편소설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를 통해 착함을 고민하게 하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의 키워드를 소설 속에 담아 지금 시대의 윤리적 잣대에 더 각을 세우게 한다. 코로나19, 돌봄노동, 치매, 유튜브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과 후는 다른 차원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코로나19 시기의 돌봄노동도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됐다. 가족 부양의 진실을 더욱 고민하게 한다. 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치매 노인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치매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기존의 치매 돌봄이 아무 답이나 반응을 하지 못하는 돌봄 대상자에게 윤리적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를 통해 돌봄노동 자체에 대해도 고민하게 한다. 돌봄노동은 희생과 숭고함만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할 시대이다. 그리고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속 유튜브의 등장은 백미다. 유튜브로 모든 것이 전시되는 시대,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를 끝까지 다 읽으면 어느 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함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정도는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이 소설의 앞부분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갑자기 찾아보고 싶은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밥솥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가끔은 ‘쿠쿠’처럼 무의미한 말을 내뱉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아들 선동의 이름(이름은 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의 아버지가 지어 줬다.)을 두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강만석(선동의 아버지)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착한 아이의 세계란 얼마나 좁고 답답한가. 수많은 삶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선한 억압에 강만석은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강만석이 강선동에게 한 말이 있다. “염병 (착한 아이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착하려고 애쓰는 순간 착함과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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