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직접 물어보니 "노동시간 유연화? 현실성 없어"
직장인에게 직접 물어보니 "노동시간 유연화? 현실성 없어"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3.28 21:15
  • 수정 2023.03.28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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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길거리 공연 열고 "노동시간 유연화 반대" 의견 알려
버스킹 구경하던 직장인들 "현실성 없는 유연화 정책 반대" 동조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28일 오후 밴드 '꽃다지'가 서울 정동 정동길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를 위한 정동길 버스킹'에 참여해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28일 민주노총 주최로 정동길 한복판에서 길거리 공연(버스킹)이 열렸다. 공연을 통해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대 의견을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취지다. 버스킹은 직장인들 점심시간에 맞춰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께까지 계속됐다. 무대에는 허영택, 꽃다지 등의 가수들이 올랐다.

앞서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년(年)으로 다양화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제도'라고 강조했지만 최장 주 69시간의 과로를 정부에서 부추기는 꼴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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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개악 저지를 위한 정동길 버스킹'과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민주노총은 이날 거리공연과 함께 시민들을 대상으로 1주일 최대 노동시간이 얼마였으면 좋겠는지 묻는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주 40시간 미만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의 선지가 4개(주 40시간·52시간·60시간·69시간)밖에 없는 것을 보고 한 시민은 “주4일제가 없어 선택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 대다수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이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IT노동자 이유나(31세) 씨는 “업계마다, 회사마다, 심지어는 회사 안에서도 팀마다 사정이 달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힘들어 보인다. 작은 회사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며 “지금 우리 회사에서도 (몰아서 휴식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유나 씨와 함께 걷던 동료 2명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인근 은행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노아무개 씨는 “우리 같은 경우엔 일이 몰려서 과로했더라도 (몰아서 휴식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사무직 노동자 김 아무개(45세) 씨는 “과거로의 회귀"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한국은) 장시간 노동으로 지탱되는 나라가 아니“라며 ”지금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잘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지 유연화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핀테크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대학생 윤 아무개(23세) 씨는 “이상적으론 좋아 보이지만 악용될 확률이 굉장히 높아 보인다”며 “지금 인턴을 하는 회사는 주40시간을 잘 지켜서 별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일이 많은 회사에선 악용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50대 진세창 씨는 해당 정책에 대해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의 정책”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몰아서 쉬는 건 좋겠지만 몰아서 일하는 것은 사람을 굉장히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몰아서 일하는 것이) 사용자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돼 악용 가능성이 높다”며 “몰아서 쉴 수 있다는 ‘당의정’(알약 등에 당분을 입혀 쓴 약을 먹기 편하게 만든 것)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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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밴드 '꽃다지'가 서울 정동 정동길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를 위한 정동길 버스킹'에 참여해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시민들은 버스킹 공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참 공연을 구경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간다”며 회사로 향한 30대 황아무개 씨는 “어렸을 때 많이 듣던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을 갑자기 라이브로 들을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이어 “투쟁 일변도의 민주노총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런 행사로 만나게 돼 좋았다. (문화 행사도) 자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 영상을 찍어 누군가에게 전송하고 있던 김승현(29) 씨는 “(민주노총의) 집회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할 때가 많아서 가끔 거부 반응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버스킹을 통해 시민들에게 다가오려는 시도는 신선했다. 노동시간 유연화 반대라는 메시지도 와 닿았다”고 했다.

공연을 마친 밴드 꽃다지는 “정동길에 이렇게 유동 인구가 많은지 몰랐다. 직장인들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 사회에도 꽤 정착된 것 같아서 좋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노동환경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버스킹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을 위해 우리 노래 중 부드러운 노래 위주로 선곡했다”고 덧붙였다.

박성환 민주노총 문화국장은 “오늘 시민들이 즐거워해 기획한 입장에서도 즐거웠다"며 "앞으로 이런 이색 선전전도 자주 기획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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