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전문가들, “노란봉투법, 법리적으로 타당···거부권은 위헌적”
법률 전문가들, “노란봉투법, 법리적으로 타당···거부권은 위헌적”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6.27 15:47
  • 수정 2023.06.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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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교수·연구자·법률가 단체 국회서 기자회견 열어
노조법 2·3조 개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대통령 거부권 추진 반대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대통령의 거부권 추진 반대 전국 교수·연구자·법률가 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이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대통령의 거부권 추진 반대 전국 교수·연구자·법률가 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3조 일부개정법률안)’이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 오를 전망이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본회의 안건 부의를 요청한 이후부터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오르내리자 반발도 잇따른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전국의 교수·연구자·법률가 단체들과 27일 오전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국회 본회의 통과 촉구, 대통령 거부권 추진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엔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12개 법률 전문가 단체가 참여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은 사용자 정의를 확대(노조법 제2조)하고, 노동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노조법 제3조)하는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안건 부의를 요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상임위에서 본회의 부의를 요구한 법안은 30일 이내에 본회의에 부의돼야 한다. 24일로 30일이 지났고, 오는 30일 본회의가 예정돼 있어 이날 노란봉투법이 주요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야당은 30일 노란봉투법을 처리하겠단 의사를 지속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25일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30일 본회의에서 노사 상생과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합법 노조 활동 보장법’(노란봉투법)과 이태원 참사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를 추진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를 중심으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오르내려 본회의에서 통과된다고 해도 공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5일 “민주당이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의 일방 처리를 예고하고 나섰다”며 “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 악법을 막아낼 것”이라고 맞섰다. 대통령실에서도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는 발언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국회가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최대 200표)가 찬성해야 해 기준이 까다로워진다. 21대 국회 의석 수 구성으로 봐도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야당만으론 재의결시킬 수 없는 구조다. 윤석열 대통령의 1·2호 거부권 행사 대상이었던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제정안도 줄줄이 폐기 수순을 밟았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헌법학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이 위헌적이거나 집행 불가능한 경우, 재정상 감당 불가능한 경우, 공익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등에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며 “그러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의견, 최근 대법원의 판결, 인권위의 권고, 노동법의 존재 의의 등을 종합하면 법체계상, 법리상 전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대통령의 거부권 추진 반대 전국 교수·연구자·법률가 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대통령의 거부권 추진 반대 전국 교수·연구자·법률가 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그간 사법부가 이번 노조법 개정안과 닮은 판시를 이미 해 왔다고 주장했다. 15일에도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을 상대로 울산공장 1·2라인 점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쟁의행위의 책임은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에 있으며, 개별 조합원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는 조합원의 지위와 역할 정도를 고려해 책임 정도를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은 모든 조합원에게 같은 책임을 지우는 민법상의 법리를 제한하자는 것이 판결의 취지임을 명확히 했다”며 “노란봉투법으로 지칭되는 노조법 개정안도 시민법 영역인 민법을 단체법인 노조법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고, 책임의 정도에 따라 범위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과 노조법 개정안은 그 취지를 같이하기에 노조법 개정안의 법적 근거가 된다는 점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용우 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변호사)도 “노조법 개정안의 사용자 개념은 이미 대법원에서 판결을 통해 판시한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노동쟁의 개정도 판결에서 확인됐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에서 가능한 입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며 “노조법 개정은 권한을 행사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헌법의 책임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거부권 행사 대신 신속한 법 개정 공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도 지난 3월 법제사법위원회에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개정안은 노동자 개인에게 과다한 배상책임이 부과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으로 그 입법취지에 공감할 수 있다”며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개별 노동자 등이 손해액 전부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도록 할 것인지, 개정안과 같이 행위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달리 정하도록 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선재원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은 “대통령 거부권은 무리한 입법에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고, 노조법 개정안은 절차와 내용에서 전혀 무리하지 않다는 것이 대법 판결과 법원행정처 입장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며 “이런데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3권분립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위헌 행위”라 경고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에서 오는 30일 노란봉투법 통과를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번에 우리가 통과시키려 하는 노조법 개정안은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판례에 의해 인정돼 왔던 변화된 노사관계 현실을 반영한 개정안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여당은 노동자 권리 보장을 담은 개정안과 판례에 대해 매우 근거 없는 공격을 하고 있다. 억지스런 주장을 접고 현실적으로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도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에는 반드시 결사의 자유가 포함돼야 한다. 노란봉투법을 거부한다면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고, 노정관계 파탄이라는 엄청난 역풍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며 “노란봉투법 통과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