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진료 차질이고 의료 공백인가, 누가 대화를 거부하나?”
“무엇이 진료 차질이고 의료 공백인가, 누가 대화를 거부하나?”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7.13 17:31
  • 수정 2023.07.13 1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건의료노조 무기한 산별 총파업 시작··· 2만 조합원 서울 집결
“인력 부족·구인난이 진짜 진료 차질, 대화 문 잠근 건 정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대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대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의료 공백이 발생하니 파업을 접으라고 합니다. 보건의료노동자의 66%가 이직을 고려하고, 신규간호사의 52.8%가 1년 안에 사직합니다. 극심한 인력 부족, 심각한 인력 구인난이 진짜 진료 차질이고 의료 공백 아닙니까?··· ‘국민의 간병비 고통을 해결하자’, ‘국민 생명을 살려낸 공공병원 살려내자’, 이걸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면, 정치파업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파업하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라고 합니다. 대화를 요구한 쪽은 보건의료노조입니다. 누가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까?”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의 무기한 산별 총파업이 시작된 13일 나순자 노조 위원장이 광화문에서 열린 총파업대회에서 크게 외쳤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 진료 차질과 의료 공백을 말하며 대화로 해결하란 일각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대화를 끊어버린 보건복지부가 파업을 유도했다”고 말을 이은 나순자 위원장은 “우리의 요구는 절박하다. 최소한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이라도 보장되면 좋겠다. 응급 오프(OFF) 쓰지 않고 필요할 때 휴가 쓰고 싶다”며 “우리의 파업은 환자 안전과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파업이며, 고통과 절망의 일터를 희망과 미래가 있는 일터로 만들기 위한 자랑스러운 파업”이라고 발언했다.

2004년 총파업 이후 19년 만
역사적인 총파업 기필코 승리할 것

보건의료노조가 13일 오전 7시부터 “의료현장의 인력 대란과 필수의료·공공의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위대한 역사적 출발점”이라 표현하는 무기한 산별 총파업에 돌입했다. 2004년 총파업 이후 19년 만에 진행되는 보건의료노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다. 보건의료노조에는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보호사, 원무과·총무과, 전산실, 청소·시설·주차·보안 등 60여개 직종에 종사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가입돼 있다.

이번 총파업 투쟁에는 보건의료노조 산하 200개 지부, 220개 사업장 조합원 8만 5,000명 중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최종 쟁의권을 확보한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 조합원 6만여 명이 함께한다. 이중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분만실·신생아실 등에 투입되는 조합원 1만 5,000여 명을 제외한 실제 파업 인원은 4만 5,000명이다. 의료기관 특성별로는 20개 사립대병원지부, 7개 국립대병원지부,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26개 대한적십자사지부, 26개 지방의료원지부, 19개 민간중소병원지부, 6개 정신·재활·요양 의료기관지부, 6개 비정규직지부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산별 총파업 1일차를 맞아 진행된 총파업대회에 참여해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근무조별 간호사 대 환자 수 1:5로 환자 안전 보장 △직종별 적정 인력기준 마련 및 업무 범위 명확화 △의사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 및 의료민영화 중단, 공익적자 및 회복기 지원 확대 △코로나19 영웅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노동개악 중단, 장시간 노동 부추기는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등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7대 요구를 실현시킬 것이라 결의했다. 이날 총파업 대회엔 노조 추산 2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자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대회에서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각종 의료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 적은 인력과 많은 업무량에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소진·탈진·사직이 줄을 잇고, 코로나19 최전선에서 환자 생명을 지킨 공공병원이 토사구팽당해 고사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환자들의 고통과 피해를 수수방관하고 보건의료노동자의 분노와 절규를 외면하는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 우리는 역사적인 산별 총파업 투쟁에 나섰다. 이 자랑스럽고 역사적인 총파업 투쟁을 기필코 승리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총파업대회’에 참가자들이 ‘간병비 해결위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총파업대회’에 참가자들이 ‘간병비 해결위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간병비·적정 인력기준·감염병 전담병원
‘핵심 쟁점’, “이제는 변해야 한다”

보건의료노조가 밝힌 산별 총파업의 핵심 쟁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전면 확대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확대 등 세 가지다.

‘보호자 없는 병원’이라 불리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가족 간병 없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이 간병을 맡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모든 병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간병 살인’, ‘간병 파산’ 등이 상징하는 비싼 간병비와 간병에 대한 보호자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해왔다. 간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우리나라에선 국가가 제도로 간병을 책임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에서다.

정부도 이 문제의식에 공감해 2021년 9월 2일 보건의료노조와 노정합의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해서는 참여를 희망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에 대해 전면 확대하는 방안을 2022년 상반기 중 마련하고, 2026년까지 시행한다”고 약속했지만 전면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않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자 한 명이 맡는 적정한 환자 비율을 정해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현장의 조합원들이 더 기다릴 수 없는 문제다. 보건의료노조는 근무조별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를 5명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노정합의 당시 2022년까지 근무조별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 기준을 마련해 올해 시행하겠다고 합의했지만 기준과 시행 시기를 확정하지 않고 있다.

총파업대회에서 공지현 한양대의료원지부 지부장은 “힘들어도 사람의 목숨이 달렸으니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 왔지만 정말이지 일이 너무 많아도 너무 많아 경력 10년차가 됐어도 퇴근시간을 2시간 이상 넘기는 일이 일상이었다. 나이트 근무 때는 할 일이 태산인데 날이 밝아오는 게 무서워 뜨는 해를 붙잡고 싶었다”며 “간호사 한 명이 적게는 8명에서 많게는 40명까지 평균 2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10시간을 넘게 근무하면서도 밥을 못 먹는 것은 당연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금만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25년을 버텼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며 “동료들이 떠나가지 않게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적정 인력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더 이상 간호사들의 꿈이 퇴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환자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공공병원들의 경영난도 문제시되고 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 감염병에 필요한 진료과가 아닌 곳을 축소·중단해야 하기에 감염병 이후 병상 가동률이 이전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 해제 이후 최대 6개월, 거점전담병원은 최대 1년 동안 지원금을 차등 제공해왔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게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지적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방의료원들의 결산자료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35개 지방의료원에 총 1조 5,598억 원(올해 3월 말 기준)의 손실보상금이 지원됐지만, 지방의료원들은 총 1조 5,737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동헌 남원의료원지부 지부장은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했던 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 시기 떠난 환자들이 돌아오지 않아 대부분 병상 가동률 40%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재정난에 임금 체불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행정명령대로 코로나19 환자만 받았는데 지금의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이라며 “우리를 영웅이라 불렀던 그 시기를 기억해 달라. 다시 찾아올 신종 감염병에 대응할 공공병원을 살려 달라. 그것이 보건의료노동자와 국민 모두가 안전하게 살 길”이라고 말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대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대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쟁점 해결 방안 없으면 파업 지속
향후 중투본에서 파업 방법 결정 예정

보건의료노조는 “그간 보건복지부와 노정합의 이행점검회의를 통해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안과 시기가 마련되지 않아 결국 총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파업을 앞두고 최선을 다해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오히려 태도를 바꿔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 대해 ‘정치파업’이라며 선을 긋고 환자 안전과 국민 생명이 달린 요구사항에 대화와 협상의 문을 닫아버렸다”며 “만약 보건복지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협상의 여지도, 타결의 여지도 없다”고 경고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 자체위기평가회의를 통해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의료기관 파업 상황 점검반’을 구성한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을 하루 앞둔 12일엔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파업 상황 점검이 아니라 의료현장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해법”이라며 “보건복지부는 병원장들만 만날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왜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 투쟁에 나서게 됐는지, 의료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절규를 듣고 보건의료노조와 진지한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산별 총파업 2일차인 14일엔 서울, 세종시, 부산, 광주 등 4개 거점 지역에서 총파업대회가 진행된다. “산별 총파업 7대 핵심요구에 대해 사용자와 정부가 실질적이고 전향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무기한 산별 총파업 투쟁을 이어간다”는 방침 아래 14일 중앙총파업투쟁본부 회의를 열고 무기한 산별 총파업 지속 여부와 투쟁 방식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노조는 “13일과 14일 이후의 산별 총파업 투쟁은 2021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인력 확충과 공공의료 확충에 합의했던 노정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의료현장의 인력 대란과 필수의료·공공의료 붕괴 위기를 방치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에 대한 노동·시민단체들의 지지도 이어지고 있다. 무상의료본부, 좋은공공병원설립운동본부, 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정의당, 진보당 등의 성명에 보건의료노조는 “지지와 연대 성명에 감사드린다”며 “비싼 간병비 해결, 보건의료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투쟁을 국민과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하자”고 전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