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불법 아냐··· 보건의료노동자들 파업 이유 헤아려 달라”
“정치·불법 아냐··· 보건의료노동자들 파업 이유 헤아려 달라”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7.10 15:38
  • 수정 2023.07.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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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산별 총파업투쟁 계획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
13일 총파업, 의료현장 문제 해법 모색 위한 파업··· “고뇌의 찬 결심 이해 부탁”
보건의료노조가 10일 오전 11시 '산별 총파업투쟁 계획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노조 생명홀에서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오는 13일부터 무기한 산별 총파업을 준비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정치·불법 파업”이라는 일각의 시선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요구와 파업에 귀를 기울여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이 10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료현장의 절박한 상황을 국민에 알리고 같이 해법을 모색하고자 잠시 파업을 시작한다”며 “환자분들께서는 다소 불편하시겠지만 더 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우리들의 고뇌에 찬 결심을 이해하고 함께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근무조별 간호사 대 환자 수 1:5로 환자 안전 보장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업무 범위 명확화 △의사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 및 의료민영화 중단, 공익적자 및 회복기 지원 확대 △코로나19 영웅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 △노동개악 중단, 장시간 노동 부추기는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등을 요구로 내걸고 오는 13일부터 무기한 산별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파업은 노동법에 근거해 모든 법적 절차와 요건을 갖추면서 진행 중인 지극히 합법적인 파업임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2일 보건의료노조와 정부가 맺은 합의엔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과 공공의료 확충 등이 담겼고, 그 이후부터 노조는 합의 이행을 촉구해온 바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와 노정합의 이행 점검회의를 수차례 진행하고, 지난 5월부터는 산별중앙교섭·특성교섭 등을 통해 사용자에 노조의 요구가 사업장에서 실현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측은 제도 개선과 비용 지원 등 정부를 핑계 대며 노동조합의 절실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채 눈치 보기와 시간 끌기 등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했다”며 “정부는 의료현장의 인력 대란과 필수의료·공공의료 붕괴 위기를 수수방관하고, 기존에 약속했던 코로나19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과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등 각종 제도개선 정책 추진 일정을 미루면서 노사교섭의 핵심쟁점 타결에 어떠한 지원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약속의 이행이 지지부진하자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27일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지난달 28일부터 7일까지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 6만 4,257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 결과 총파업은 91.63%(4만 8,911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는 8.15%(4.350명), 무효표는 0.19%(103명)다. 투표율은 83.07%(5만 3,380명)다. 보건의료노조 역사상 최대 규모 파업으로, 총파업이 실현된다면 2004년 주5일제 쟁취를 요구하며 벌인 총파업 이후 19년 만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 파업을 대정부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며 “간호사 한 명이 환자를 미국·일본의 두 배, 세 배가 넘는 12명에서 많게는 20명~30명까지 보느라 버틸 수 없어 환자 곁을 떠나는 극한직업을 바꾸고자 간호사 한 명이 환자 5명을 보게 해 달라는 게 정치파업이냐”고도 물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인력이 부족해서 환자들이 아프다고 해도, 궁금해 해도 눈도 못 마주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경력 간호사도 환자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더 잘 해주지 못한 내 탓인 것 같아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며 “이렇게 잘못된 의료제도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국민과 병원노동자에게 전가되는 대한민국에서 비정상적인 의료현장을 바꾸기 위한 요구를 사용자와 정부에게 하는 것을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정치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꼭 이 말씀만 드리겠다. 우리 요구는 특정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만의 이익을 위해 하는 요구도 아니”라며 “환자 불편과 피해에 대한 걱정은 파업 때만 하지 말고 평소 잘못된 의료제도로 인한 불편과 피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정부와 언론에 부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오는 13일부터 무기한 산별 총파업에 들어가되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분만실·신생아실 등 환자 생명과 직결된 업무엔 필수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다. 의료기관 내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비해선 응급대기반(CPR팀)을 병원별로 구성해 가동한다. 총파업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각 의료기관에서 비상 대기하며 환자에 상황을 알리는 등 불편을 최소화하는 홍보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무기한 산별 총파업 하루 전인 12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은 각 의료기관별·지역별로 총파업 전야제를 진행하고, 파업 첫날인 13일엔 서울에서 대규모 상경파업을 전개한 후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결합한다. 파업 2일차인 14일엔 세종시(전국 거점)와 서울, 부산, 광주(지역 거점) 등 4개 지역에서 총파업대회를 연다. 만약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총파업 요구가 해결된다면 산별중앙교섭·특성교섭·현장교섭을 신속히 타결할 방침이다.

보건의료노조는 파업 2일차 이후 일정·방식과 관련한 논의를 11일 산별총파업투쟁중앙본부(중투본) 회의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나순자 위원장은 “이제 정부가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간 하기로 약속했던 각종 정책을 국민에 보고하고 발표하길 바란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시간만 끄는 교섭이, 지키지도 못하는 합의서가 아니라 환자와 노동자가 있는 의료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라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의료기관 파업 상황 점검반’을 꾸리고 “의료이용 차질 발생 여부 등 상황 파악, 비상진료기관(보건소 포함) 운영현황 점검, 지자체·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의료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체위기평가회의를 통해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 발령을 결정하기도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의료기관 파업 상황 점검반 반장)은 “노조의 합법적인 권리행사는 보장되지만,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불법파업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필수유지업무의 중단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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