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질적 도약’할 때, 바로 지금”
“보건의료노조 ‘질적 도약’할 때, 바로 지금”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11.27 11:47
  • 수정 2023.11.27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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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당선자
새로운 바람은 현장에서부터, 현장에서 답 찾아갈 것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당선인을 20일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지방 공공병원에 가보니까 외래도 응급실도 텅텅 비었어요. 오셔서 얼마나 심각한지 한번 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당선인은 현장 유세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지역 공공병원들을 떠올렸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을 만나며 “중앙을 신뢰하고 진짜 큰 우산으로 생각한다”는 느낌과 동시에 “현장은 중앙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3년 동안 202개 지부를 다 순회하겠다”는 말도 탁 나왔다.

산별노조 전환 25주년. 양적으로 성장한 보건의료노조에 필요한 건 질적인 도약이고, “현장에서 답을 찾고, 현장과 함께 소통하는 것, 그래서 현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최희선 당선인이 생각하는 질적 도약의 동력이다. 지난 20일 오후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에서 최희선 당선인에게 앞으로 보건의료노조 3년을 어떻게 이끌 계획인지 물었다.

중앙은 저 멀리 달리기하는데
현장은 제자리걸음, 소통 있어야

- 현장 유세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전국을 도니까 서울지역본부랑 또 달랐다. 서울엔 공공병원이 서남병원, 동부병원, 북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이렇게 있는데, 지방 공공병원을 가보니까 외래도 응급실도 텅텅 비었다. 코로나19 시기 손 퉁퉁 붓고 메디폼 붙여가면서 일했던 조합원들이 지금 임금체불을 걱정하는 게 굉장히 안타까웠다. 또 ‘현장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조합원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정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들을 해주셔서 힘을 받았다.

- 캐치프레이즈는 어떤 의미인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 전환 25주년, 병원노련까지 합치면 35주년이 됐는데, 보건의료노조의 위상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점점 조직이 커지다 보니 중앙의 요구와 정책 방향을 현장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앙은 저 멀리 달리기를 하고 간다면 현장은 거북이처럼 걸음마를 한다. 현장 지도부는 3년마다 한 번씩 바뀌다 보니까 늘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중간 소통이 좀 원활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고, 조직이 커지는 만큼 질적 도약도 해야 될 시기가 됐다는 거다.

- 질적 도약을 함께할 송금희 수석부위원장과 곽경선 사무처장을 소개해 달라.

송금희 수석부위원장은 원주연세의료원지부 지부장을 오래 했고, 9기 집행부 때 사무처장으로 와서 그간 하지 못했던 규약·규정을 손보며 체계를 잡는 데 일조했다. 21년 9.2 노정합의, 22년 정책대회, 23년 산별 총파업을 하면서 전체 조직을 아우르는 일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곽경선 사무처장은 원광대산본병원 물리치료사인데, 물리치료사가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을 한 건 최초다. 부위원장을 3년 하면서 전북지역본부와 광주전남지역본부 투쟁 사업장을 잘 이끌었고, 정신재활요양담당 부위원장을 맡고는 지부장님들과 학습과 토론을 열심히 했다. 야무지게 잘 해내주실 거라 생각한다. 보건의료노조 위수사가 모두 여성인 것도 처음이다.

- 위수사 구성에 우려는 없었나?

우려라기보다는 세 명이 다 사립대병원지부 출신이니까 공공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국립대병원, 특수목적공공병원, 의료원 담당 부위원장들을 다 둘 예정이다. 순회하면서는 그런 말을 했다. 세 명이 다 사립대병원지부(출신)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공의료를 위해서 더 잘 할 거다(웃음). 

교육·자료·바텀업 체계로
중앙·현장 연결할 것

- 질적 도약의 방법은?

9.2 노정합의 이후 현장이 많이 바뀌었는데, 현장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와 닿지 않아한다. 예를 들어 9.2 노정합의 후속조치로 교대제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간호사 근무 체계가 데이, 이브닝, 나이트 3교대인데 지속가능한 근무체계를 만들자고 해서 데이 하는 달은 데이만, 이브닝 하는 달은 이브닝만, 나이트는 전담 간호사를 배치해서 한 달에 근무를 더 적게 하고 있다. 정부 재정으로 추가되는 인건비를 줄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투쟁해서 만든 제도인데, 현장에서 노조가 해서 된 건지 모른다. 현장까지 활동을 전달하는 걸 열심히 하겠다는 거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현장과 함께 소통하는 것, 그래서 현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주의 깊게 보려고 한다. 순회 돌면서 탁 나와 버린 말이 있는데, 3년 동안 202개 지부 다 순회하겠다고 했다. 1년에 70개씩 가면 된다. 광주전남지역 순회를 도는데 하루에 7개 지부를 돌았다. 이렇게 돌면 돌 수 있을 것 같다. 조직실장한테 ‘내가 당선되면 나랑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 소통 사업을 구체화할 계획인가?

현장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교육과 자료 공유에 목말라 있더라. 중앙, 지역본부, 지부가 할 교육들을 체계화하려고 한다.

현장에서는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위원회를 분기별로 하는데 지부장이나 전임자가 바뀌었을 때 꼼꼼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 사이버 자료실을 구축해서 현장에서 다양한 지부들의 자료를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

보통 요구안 같은 경우도 중앙이 초안을 만들면 지역본부가 논의하고 지부로 내린다. 이게 아니라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하려고 한다. 지금은 현장제안제도라고 이름 붙였는데 홈페이지에 상시적인 방을 만든다거나 다양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역본부 역할이 중요하다. 지부랑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교육을 더 하려고 하는 거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당선인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인력 기준 마련·주4일제·적정의료시스템
제10대 집행부 임기의 과제

- 감염병 전담병원 순회가 인상 깊었다고도 했는데, 지금 보건의료노동자들과 보건의료산업의 상황을 어떻게 보나?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19. 이렇게 보면 3~4년, 4~5년 주기로 한 번씩 훑고 가는 감염병이 있었다. ‘공공병원이니까 우리가 해야지 누가 하냐’면서 했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이렇게 토사구팽 당하면 다음 감염병이 왔을 때는 공공병원이 ‘우리 전담병원 못 하겠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보건의료산업은 민간이 90% 공공이 10%다. 90%는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과잉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인력을 줄여야 한다. 인력 쥐어짜기를 당한 현장의 노동조건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너무 과열되고 있다. 지방에 아프신 분들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와서 치료를 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점점 대학병원들이 제2병원, 제3병원, 제4병원을 수도권 중심으로만 만든다. 지역 의료가 붕괴된 거다. 지역에서는 의사·간호사 구하기 어렵고 병원을 유지하기 어려우니까 축소하거나 문을 닫는다.

- 보건의료노조는 공공·지역·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목소리를 계속 내 왔다. 지난 집행부도 마찬가지였는데, 활동을 평가한다면?

9기 집행부는 어떻게 평가할 게 없을 정도로 훌륭히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9.2 노정합의에는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꼭 붙어야 한다고 나는 말하는데, 그 합의대로만 되도 현장과 의료계가 엄청 많이 바뀌겠단 희망을 가졌다. 그 큰 합의를 하고 22년엔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큰 노조에서나 했던 정책대회를 2박 3일간 했다. 앞으로 우리가 가져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올해는 총파업이야!’ 이러시는 거다. ‘아니 또 왜 갑자기 총파업이야’ 싶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노정 합의가 하나도 이행되지 않고 있어 올해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거였다. 19년 만에 총파업을 하니까 ‘얼마나?’, ‘과연 될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는데 (총파업 결의대회 때) 그 폭우 속에서 어느 한 명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정부가 그거 보고 무서워했을 것 같았다.

- 9.2 노정합의 이행과 관련한 공약들이 많은데,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공약과 이행 계획을 공유해 달라.

가장 필요한 건 인력 기준이다. 정부와 합의한 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인력 실태 조사까지는 복지부가 다 끝냈고,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의를 해야 한다. 기준을 마련해서 현장에 도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가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주 4일제다. 2004년도 산별 총파업 때 주 5일제를 걸고 투쟁을 해서 쟁취했다. 내년에 단체협약 협상이 있는 지부들이 많은데 몇 개 지부라도 시범 운영을 한다고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원하는 사람들, 몇 개 병동만 시범 운영을 하다가 공감대가 형성되면 공동 요구로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적정의료시스템을 만드는 거다. 수도권 중심의 과잉경쟁체계, 공공의료 부족 이런 부분들은 제도 개선 투쟁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세 가지를 가장 주요하게 추진해 나가겠다. 

- 인력 기준 마련과 의료 제도 개선은 정부 정책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의료 예산도 축소하고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예산을 아예 제로로 해놓은 상태다. 임기응변, 땜질식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교섭 대상이 아니고, 9.2 노정합의 이행 점검 회의를 같이 하는 거라고 한다. 그럼에도 계속 대화는 하려고 한다. 다만 우리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대정부·대국회 투쟁도 또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표준 임금 체계 마련은 ‘보건의료노조’의
역할···새봄지부 공동 교섭도 추진할 것

- 새로운 산별교섭 전략을 만들고 표준 임금 체계랑 노동 조건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산별교섭을 정상화시킬 방법은 결국 법제화다.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교섭 법제화 5만 입법 청원도 주도해서 달성했지만 발의도 안 된 상태다. 법제화를 하면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고, 그 과정에서 보건의료산업의 표준 임금을 정리하고 싶다.

대형 사업장 노동자와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의 임금 차이는 또 너무 심하다. 계약직도 많다. 심지어 동사무소에서 간호사를 채용하는데 최저임금 수준으로 뽑는다. 이거는 맞지 않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 정도 이상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표준 임금 체계를 만들자는 거고, 거기서 더 받을 수 있는 데들은 더 받으면 된다.

우리가 100만 보건의료노동자라고 하는데 보건의료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조가 우리 노조라고 나는 자부하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별 임금체계 연구는 올해부터 시작했고, 외국 단체협약도 비교 연구까지 끝냈다. 정비하면 되는 단계다.

- 새봄지부* 사용자와 공동교섭(하청업체 사용자 공동교섭, 원하청 공동교섭 등)을 추진하겠단 공약도 있다.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보건의료노조 새봄지부에는 각 병원 내 간접고용·비정규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쪼개기 계약을 하는 병원들이 있다. 병원 건물이 동관, 신관, 서관이라고 하자. 동관 2·3층은 a업체, 4·5층은 b업체랑 미화 용역 계약을 맺어서 서로 경쟁시키는 거다. 2·3층은 시급 1만 원, 4·5층은 시급 1만 1,000원이면 4·5층으로 옮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공동 교섭을 해야 한다.

또 하청 사용자도 원청의 을이다. (새봄지부의) 원청을 같은 테이블에 앉게 하지는 못해도 압박은 한다. 지금 그렇게는 하고 있는데 사실 교섭으로 끌어내는 게 가장 필요하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당선인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35년 노조 지켜왔던 선배들
빈자리 메꾸며 질적 도약할 때

- 조직화 계획은?

크게 두 가지다. 이미 노조가 있는데 조직률이 50% 미만이거나 소수 노조로 전락한 데들을 강화하는 방안이 첫 번째다. 조합 가입 대상은 몇백 명인데 조합원 수는 10여 명이라든가 명맥만 유지하는 데들이 좀 있다.

노조가 없는 곳들도 너무 많다. 시내 돌아다니면 ‘저 병원도, 저 병원도 노조가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없는 곳에 노조 깃발을 꽂기 쉽지 않다. 우리 위상이 더 강화되고, 표준 임금 체계를 만들면 ‘저거 나도 받고 싶은데’ 하면서 가입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한다.

보건의료노조 조직은 많이 성장했다. 35년 동안 보건의료노조를 지켜왔던 여러 선배님들이 이제 정년퇴직을 하나둘씩 하시는데, 이 빈자리를 메꾸는 걸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병원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한다면 하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지킨다. 그렇게 선배님들이 닦아놓은 좋은 길을 지켜나가면서 질적인 도약을 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