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대회에서 만난 기울어진 세계들
노동자대회에서 만난 기울어진 세계들
  • 박완순·백승윤·김광수·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3.11.11 21:32
  • 수정 2023.11.11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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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3주기 전국노동자대회서 노동자들이 말한 불평등과 차별
비정규직이라서 공무직이라서···그럼에도 희망은 노동조합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11·11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11·11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오늘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꿈꿨던 세상일까. 전태일 열사 53주기를 맞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11일 서울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일터와 일상에서 느끼거나 목격한 불평등과 차별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존재 자체가
차별과 불평등의 이유가 될까?

노개형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 조합원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많이 당한다. 최근에는 조합원을 건설사에서 아예 고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별한다”고 말했다.

한상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명 공공연대노조 경기도본부 동두천지부 조합원은 환경미화원이다. 그는 “일을 하면서 불평등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환경미화원이라 했을 때 주변에서 얕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기분이 좋지 않다. 이것도 일종의 불평등”이라고 이야기했다.

왜 누구는
이런 환경에서 일해야 할까?

“이번 여름 정말 더웠다. 하지만 용역회사가 있는 건물은 냉방 시스템이 부실했다. 찜통 같던 더위에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며 김필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한국장학재단콜센터지회 부지회장이 말했다. 대부분 민간 위탁 운영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많이 다르다고도 덧붙였다.

김현웅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은 화장실마저 다르다는 데서 차별을 느낀다고 했다. “같은 건설 현장에서 일해도 종합건설사 직원이 쓰는 화장실과 건설노동자들이 쓰는 화장실이 다르다”며 “우리는 재래식 화장실이고, 쾌적한 신식 화장실은 도어락이 걸려 있다”고 씁쓸해 했다.

비정규직·공무직,
다른 처우에서 오는 박탈감

강대빈 한국노총 공공연맹 한국환경공단통합노조 위원장은 “일반직과 공무직이 함께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처우가 다른 부분이 불평등이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서경원 한국노총 공공연맹 전국공무직노조 정읍시지부 사무처장도 공무직 이야기를 전했는데, “같은 위험한 업무를 해도 일반직의 경우 위험수당이 책정돼 있는데, 공무직의 경우 매년 시와 협상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전북본부 본부장은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과 공무직이 임금에서 차이도 크게 나고, 복지 등에서도 차이가 크다”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차이가 차별로 느껴질 정도다. 공무직 처우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꼭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불평등한 처우로 “아예 없는 사람 취급 같아 속상하다”고 말한 한순희 사무금융노조 전국협동조합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성과급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 표창이라 해도, 초단기간노동자·계약직 등 비정규직은 본사 표창 수상 후보에서 애초에 제외된다”고 토로했다. 일하는 보람마저 차별로 인해 느낄 수 없다는 의미다.

많은 노동자들이 지적한
임금 격차

김장호 한국노총 금속노련 화천기공노조 부위원장은 “비정규직 차별이 굉장히 심하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일 금융노조 총무기획본부 본부장도 “불평등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같은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임금 격차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김정식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부평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의 경험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업무 간 차이가 크지 않지만 비정규직 시급은 정규직에 미치지 못한다. 지금의 임금 인상률은 물가 인상률을 감당하기 부족해 가장으로서 힘들다. 비정규직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최혜영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강원대학교지부 한국어교원지회 지회장은 “내가 일하는 곳에서 정규직 강의하는 사람들의 시급은 10만 원이지만, 우리 한국어교원의 시급은 3만 원”이라며 “10년 넘도록 한 번도 임금 인상이 된 적이 없다. 게다가 초단시간노동자라 생계유지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가 특히나 비정규직,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중간 착취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조합원은 “시청에서 인건비 등을 포함해 내린 사업비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안 쓰이고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며 “노동자들은 식대도 받지 못해 자비로 해결하고, 초과 노동수당도 한 번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박준성 한국노총 공공연맹 산업안전보건공단노조 조합원은 “비정규직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도 이야기했다. 채수용 한국노총 공공연맹 울산시설공단노조 위원장은 “(이러한 일들로 인해) 양극화가 문제”라며 “끝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 동구지부 조합원도 “이제 한국은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라고 하는데, 자본을 가진 사람은 계속 부를 늘리고 있다”며 “국민이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시켜 분배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희망했다.

정치적 목소리 내기의 불평등

최형규 한국노총 교사노조연맹 강원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정부와 국회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노동자의 목소리도 위로 올라기지 못하고 어딘가에 막혀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 연합노련 연세의료원노조 소속 한 조합원도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이 왔다갔다 한다”며 정작 노동자의 목소리는 반영 안 된다고 꼬집었다.

허차우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 동구지부 지부장은 “공무원은 정치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선출직 공무원의 역량을 가장 가까이서 파악할 수 있는 게 공무원인데도, 그와 관련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더 좋은 지방 정부를 꾸릴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 아닌지. 국가적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불평등 문제들

이외에 여러 노동자들이 현장의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했다. 장병운 한국노총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공감소통국 본부장은 “노동조합 없는 소기업들의 노동자들이 특히나 불평등을 많이 겪고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한국노총 자동차노련 한 조합원은 “노동 시간이 문제”라며 “그런데 위에서는 주4일을 할지 말지 이야기가 아니라 주69시간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용락 한국노총 금속노련 상임부위원장은 “대통령은 자유와 평등, 공정을 이야기하면서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게 역행하며 불평등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윤지선 한국노총 의료노련 순천향대병원 부천병원노조 조직부장은 일터 속 권력 관계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경영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으로 노동자와 노동자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노동조합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만난 많은 노동자들이 불평등과 차별의 세계를 말했다. 그럼에도 기울어진 세계에 균형을 맞추는 건 노동조합이라고 했다. 한국노총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한 조합원은 “최근에는 많이 고쳐지고 있는 것 같다. (노동계에서의 요구로) 52시간 근무가 정착되고 추가 근무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오경선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천분회 조합원은 “일터에서 다양한 불평등이 있었지만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로 많이 해소됐다”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교섭을 통해 안정적인 급여를 받게 됐고, 단체협약도 처음으로 체결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