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절망에도 사랑으로’ 노동자대회 전태일들
[종합] ‘절망에도 사랑으로’ 노동자대회 전태일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1.12 16:52
  • 수정 2023.11.13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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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전태일 열사 53주기 양대노총 전국노동자대회 개최
정권에 대한 분노, 더 힘든 노동자에 대한 연대의 마음 모여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22살 청년 전태일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근로기준법 책을 꼭 안은 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그의 유언은 재가 아닌 불꽃이 돼 노동운동으로 되살아났습니다. 

“태일이 자신의 생명을 던짐으로써 한국 노동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노동운동이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태일의 죽음으로 시작된 노동운동의 발달은 70년대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활동을 비롯해 민주노동운동의 발달에 있어 근원이 됐습니다. 또한 지식인들이 노동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고 민중의 삶과 투쟁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기폭제가 됐습니다.” (전태일재단)

아울러 전국의 노동자들은 1988년부터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외치며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11월에 노동자대회를 준비했는데요. 올해 11월에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민주노총이 ‘윤석열 정권 퇴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퇴진광장 열자!’ 등의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민주노총이 ‘윤석열 정권 퇴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퇴진광장 열자!’ 등의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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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노총은 전태일 열사 53주기를 맞아 11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서울 여의도에 약 6만 명, 민주노총은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에 약 5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날 양대노총은 모두 노동조합을 정책 파트너가 아닌 혁신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정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 높였습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 마지막으로 요구한다. 지난 30년 동안 사회적 대화를 이끈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정책의 주체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라”며 “국민을 이기는 정권, 국민인 노동자를 이기는 정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통령 단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1년 6개월간 세상은 뒤죽박죽 엉망이 돼버렸다”며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노동조합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11·11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11·11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참여와혁신] 노동자대회에서 만난 기울어진 세계들

대회 단상 아래 노동자들은 정권에 대한 분노 외에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요?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목격한 열두세 살의 소녀들이 일당 70원을 받으며 점심도 굶은 채 일하는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과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일터는 여전했습니다.

“같은 건설 현장에서 일해도 종합건설사 직원이 쓰는 화장실과 건설노동자들이 쓰는 화장실이 다르다.” (노개형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도건설지부 조합원)

“같이 일하는 공무원들과 공무직이 임금에서 차이도 크게 나고, 복지 등에서도 차이가 크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차이가 차별로 느껴질 정도다.” (박상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전북본부 본부장)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식대도 받지 못해 자비로 해결하고, 초과 노동수당도 한 번 받지 못했다.” (박준성 한국노총 공공연맹 산업안전보건공단노조 조합원)

 

[참여와혁신] 전태일 53주기, 풀빵 사주고픈 ‘당신’

삼켜내기 퍽퍽한 삶이지만, 노동자대회에 모인 노동자들의 마음엔 더 어려운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핫바리 인생’의 절박함을 잘 알기에, 어린 시다들의 고통에 더 마음이 아팠던 전태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투쟁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풀빵을 주고 싶다. 노동을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고 외롭게 투쟁하고 있을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싶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부산지역본부 대남병원지부 조합원)

“노동자 내부에서도 삶의 편차가 너무 크다고 느낀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풀빵을 나누고 싶다.” (허차우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부산지역본부 동구지부 지부장) 

“여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모든 노동자에게 풀빵을 사주고 싶다.” (박용락 한국노총 금속노련 상임부위원장)

 

2년 전 세상에 처음 공개된 전태일 열사의 친필 일기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났던” 엄혹했던 당시 노동현실을 극복하려는 전태일 열사의 의지가 곳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절망은 없다”는 말은 네 번이나 적혀 있었는데요.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절망은 없이 “내일을 위해 산다”고 다짐했던 청년 전태일, 부당에 대한 분노, 연대와 사랑의 마음을 외친 거리 위 노동자들은 닮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이소선 합창단이 전태일 추모가를 부르고 있다.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2020년ㄴ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이소선 합창단이 전태일 추모가를 부르고 있다. ⓒ참여와혁신 포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