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시계는 왜 더딜까” 53주기 전태일 추도식
“노동자의 시계는 왜 더딜까” 53주기 전태일 추도식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11.13 20:12
  • 수정 2023.11.13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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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 참석자들, 노조법 2·3조 개정안 공포 촉구
녹색병원·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전태일노동상’ 수상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이 11월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에서 열렸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이 11월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에서 열렸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추도사를 듣다 보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말만 다를 뿐 내용이 똑같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우리 노동자의 시계는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전태일 추모가를 작사한 박원섭 전 청계피복노동조합 교육선전부장의 말이다. 박원섭 씨는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이소선 어머니, 전태일의 친구들,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청계피복노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53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이 11월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에서 열렸다. 추도식에서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주로 나왔다.

추도식 사회를 맡은 박원섭 씨는 “지난 9일 국회에서 드디어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를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단식 농성, 오체투지를 하며 싸웠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머뭇거리지 말고 전태일 정신을 담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공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추도식은 홍인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장의 추모기도, 이덕우 전태일재단 이사장의 인사말, 참석자들의 전태일 추모가 합창, 양대 노총과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의 추도사, 이혜규 민중가수의 추모공연, 제31회 전태일노동상 시상식, 유가족 인사 및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추도식에서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윤석열 정권은 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운운하며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가 먼저 윤석열 대통령을 거부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120만 노동자들이 2023년 전태일이 되어, 양회동이 되어 윤석열 정부 반드시 끌어들이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발언했다.

강석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손배 가압류로, 산재로,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하는 노동자는 방치한 채 유독 노동법 2·3조 통과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저들은 과연 노동부인지 기업부인지 알 수 없다”며 “지난 11일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반민생, 반민주 정책에 맞선 전국 모든 노동자의 투쟁 깃발이 드높이 나부꼈다. 이것이 민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법 2·3조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된다면 150만 한국노총 조합원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하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동화면세점 앞에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담은 노조법 2·3조 개정안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단식농성 등 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투쟁에 힘을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녹색병원이 제31회 전태일노동상 단체 부문을 수상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녹색병원이 제31회 전태일노동상 단체 부문을 수상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제31회 전태일노동상 단체 부문 수상은 녹색병원이 받았다. 전태일노동상 심사위원회는 “녹색병원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처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의료취약계층의 손을 잡고 있다”며 “전태일의료센터 건립도 계획하고 있는 녹색병원에 기대와 응원의 마음을 담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전태일 정신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나눔, 배려, 연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꼭 노동자들만을 위한 정신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는 새로운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의료센터를 지으려 한다. 저희들이 성공하면 제2, 제3의 전태일 병원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한다. 모두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태일노동상 공로상은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수상했다. 지난 5월 김준영 사무처장은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머리를 다친 채로 구속됐고 이달 초 5개월 만에 보석 석방된 바 있다.

김준영 사무처장은 “20살에 참석한 집회에서 이소선 어머니 손을 잡고 마치 아들이 된 양 너무나 좋아했던 경험이 있다. 이후 23살부터 청계피복노조를 닮은 부천지역노조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오늘 전태일 노동상을 받게 됐다. ‘이 상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에 죄송스럽다”며 “앞으로도 열사 앞에서 반성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전태일재단은 추도식이 끝나고 참석자들에게 책 《비ː장한 불꽃》을 나눠줬다. 1975년 동아일보 기자에서 해고된 이태호 작가가 쓴 전태일 평전으로 출판사 인간과자연사가 11월 13일에 맞춰 발행했다. 이덕우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이은 새로운 전태일 평전”이라며 “여러분과 함께 읽으며 전태일의 삶을 반추하겠다. 또 그 뒤를 따르도록 모두 함께 애써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제31회 전태일노동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제53주기 전태일 추도식’에서 제31회 전태일노동상 공로상을 수상한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축하를 받고 있다.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