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지역 일자리 만들기’의 필수 사회적 대화
⑤ ‘지역 일자리 만들기’의 필수 사회적 대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12.11 13:57
  • 수정 2023.12.11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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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상생·협력 일자리 위한 지역의 사회적 대화들
상생·협력 일자리 모델 마련 과정에서
지역 차원 사회적 대화 이어갔던 고창·김제·순천·삼척·태백
삼척시가 지난 10월 27일 진행한 ‘삼척형 상생&협력 일자리 사업 공론화’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삼척에서 생활한 지 7년이 됐는데, ‘삼척’하면 떠오르는 게 없어요.” 삼척형 상생·협력 일자리의 비전을 토론하던 한 주민의 말이다. 삼척시는 석탄산업이 쇠퇴하며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역 경제 침체, 그리고 폐광으로 인한 실직이라는 연쇄적인 위기를 맞았다.

삼척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속가능한 상생·협력 일자리 모델을 고안해 활력을 되찾는 일은 대다수 지역에게 절박한 과제다. 일자리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어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까? 답은 그 곳에서 일하고 살아온 이해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다. ‘2023년 상생·협력 일자리 컨설팅 지원사업’에 참여해 지역 맞춤형 일자리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해온 고창군·김제시·순천시·삼척시·태백시의 이야기를 전한다.

주민 갈등 봉합, 정책 권고·보완
전라권, 사회적 대화 효과 톡톡히

고창군은 기업 유치를 둘러싼 지난한 갈등을 겪은 지역이다. 인구소멸과 고령화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되기에 양질의 일자리를 신속하게 창출해야 한단 의견엔 이견이 없었지만 청정고창이란 가치도 고창 군민들에겐 중요했다. 환경을 훼손하는 기업이 고창군에 유치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이런 상황에선 무작정 기업 유치를 추진하기보다 고창에서 ‘좋은 일자리와 좋은 기업’을 무엇이라고 보면 좋을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선행돼야 했다. 고창이 지난해부터 ‘경청대화’를 추진해온 이유다.

경청대화에서 고창의 노사민정과 청년들은 환경 보존과 기업 유치 중 무엇이 우선인지 토론했고, 기업 유치에서 최소한 환경 관련법 기준을 맞춘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더불어 △청정고창 보전이 가능한 친환경 일자리 △고(高)근로조건 기업유치로 인력확보 경쟁방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청년 유입 및 정착 촉진 △군민들과 적극적 소통 및 의견수렴으로 갈등을 예방하는 것이 좋은 일자리 모델에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 했다.

사회적 대화로 정한 방향성은 고창군이 상생·협력 일자리 모델을 만드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고창군은 9월 삼성전자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투자협약엔 오폐수 발생량이 적은 사업을 추진하고, 전문 엔지니어·시설관리 인력을 채용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고창군처럼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었던 김제시는 강점이었던 ‘농업’에 기술혁신을 더한 미래 먹거리를 찾았다. 첨단 농기계 산업과 특장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지역 경제의 활력을 도모해 보겠다는 목표다. 김제시엔 소위 이름 있는 대기업은 없지만 특장차 연구개발에 골몰하는 중견기업들, 협력사들, 강소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김제시는 첨단 농기계 산업과 특장차 산업의 생태계를 공고히하기 위해 지역의 사람들을 만났다. 먼저 김제시는 노사실무협의회를 여러 차례 진행해 ‘김제형 일자리’에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지 들었다. 노사실무협의회에서 김제시 노사민정은 김제시가 청년 인구 유입을 지원해야 함과 동시에 중장년층도 지원에서 소외돼선 안 된단 의견을 폈다.

또 버스 노선이 없는 산업단지의 경우 구직자들이 취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고, 산업단지 입주기업에서 일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교통비를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으나 예산 소진으로 사라진 점이 지적됐다.

청년과 여성 등 김제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소(小)공론화’장을 열기도 했다.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는 정책권고안의 형태로 김제시에 전달됐고, 정책권고안이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김제시 노사민정협의회에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초경량 소재 산업(마그네슘 소재 부품 특화)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2020년부터 해룡산단에 마그네슘 기업 집적화 단지를 조성해온 순천시는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 간 가치사슬을 만들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양성해 노동환경도 개선하겠단 구상이다.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준비하던 순천시는 향후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할 상생협약을 구체화하고자 11월 28일 공론화 프로그램을 열게 됐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엔 순천시 노사민정협의회 구성원들과 기업체 등 약 50명이 참여했다. 특히 최종 수요처 기업들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수요처 발굴을 위한 지역 경제 주체 간 역할이 심도 깊게 논의됐다.

더불어 지역의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적정한 임금을 노사가 합의하면, 정부와 지역의 민간 단체에서 이행을 보증한다는 내용의 ‘적정 사회적 임금’ 실현방안도 논의됐다. 이날 참여자들이 제기한 의견들을 가지고 순천시는 상생협약서를 보완할 계획이다.

주력이었던 석탄 산업 쇠퇴해
이해관계자 지혜 모은 삼척·태백

삼척시는 세대통합형 힐링빌리지 ‘도계빌리지’와 ‘삼척 살아보기(삼척 LIFE)’, ‘삼척 돌아보기(삼척 TOUR)’라는 이름의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도계빌리지는 지역주민과 귀농귀촌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세대 통합 생활기반을 마련해보겠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삼척 살아보기엔 단기 체류 프로젝트 등이 담겼고, 삼척 돌아보기는 지역 특산을 관광자원과 연계해 관광객 유치를 돕는다.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삼척시는 이해당사자들과 연말 전까지 상생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공론화 프로그램은 협약안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면 좋을지, 또 진행하려는 사업에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를 듣기 위해 진행됐다. 공론화 프로그램은 9월과 10월 두 차례 열렸는데 9월엔 토론회 형식으로, 10월은 발표와 분임토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10월 27일 열린 공론화 프로그램에선 삼척시의 일자리 현황 조사 결과 발표와 도계빌리지, 삼척 살아보기, 삼척 돌아보기 사업의 얼개를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설명을 들은 참여자들은 분임토의를 통해 각각의 사업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 이야기했다. 이날 행사엔 노사민정 이해관계자 약 50명이 참여했다.

분임토의에선 오후 6~7시만 돼도 밥 먹을 곳이 별로 없어 청년이 머물 수 있도록 문화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 삼척시를 대표할 수 있는 랜드 마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 공공과 민간이 함께 사업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태백시의 상황도 삼척시와 비슷하다. 태백시의 경제를 지탱해왔던 장성광업소가 내년 6월 폐광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산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만큼 다른 산업을 주력으로 둬야 했고, 태백시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산림·목재를 활용한 미래지향적인 일자리 창출 모델 마련을 도모하는 중이다.

태백시 노사민정은 이 방향성에 공감하며 태백형 상생·협력 노사민정 실무협의회와 숙의·공론화 추진단을 꾸려 꾸준한 대화를 거쳤다. 11월 24일엔 노사민정 실무협의회 위원 12명과 공론화 위원 20명이 참여하는 자리가 있기도 했다. 이날 태백시청 대회의실에 모인 참여자들은 태백형 상생·협력 일자리를 계속 추진하기 위한 기초 협약 선언문 초안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선 태백시가 맞닥뜨린 일자리 위기를 극복하고, 기후위기 대응과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산업 질서에 부합하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단 말들이 오갔다. 만들어진 일자리는 우리 사회 노동시장의 다양한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해야 한단 의견도 있었다. 태백시 노사민정이 그간 나눈 대화들은 추후 기초 협약 선언문에 담길 예정이다. 

*이 기사는 참여와혁신과 노사발전재단의 공동기획으로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