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교육 담당’ 상담노동자도 ‘신입 공채’ 응시하라는 건보공단?
‘신입 교육 담당’ 상담노동자도 ‘신입 공채’ 응시하라는 건보공단?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3.12.08 09:05
  • 수정 2023.12.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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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노동자 정규직 전환에 ‘자격 검증 위한 채용전형’ 넣겠다는 건보공단
상담노동자들, “고용노동부 인증 교육 이수하고 시험 치르며 검증받았다”
7일 오전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교육관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사 증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상담노동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이 공단이 내놓은 정규직 전환 채용안에 반발하고 있다. 공단은 채용안에 ‘공정 채용을 위한 검증’이란 취지로 입사시기별 차등을 둔 전형 절차를 적용했으나, 상담노동자들은 “입사 전후로 이미 여러 차례 검증 절차를 거쳤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지부장 이은영, 이하 지부)는 7일 오전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교육관에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사 증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공단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상담노동자들은 “공단이 불필요한 자격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단 고객센터는 그간 민간업체에 위탁돼 2년마다 새로운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고객센터의 상담노동자들 역시 민간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그러던 중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공단의 경우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를 통해 소속기관을 새로 설립하는 방식의 상담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2021년 결정했다.

그러나 공단은 상담노동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공정 채용을 위한 검증 절차’로서 입사 시점에 따라 차등을 둬 제한경쟁 또는 공개경쟁을 실시하겠다는 채용안을 지난 10월 26일 발표했다.

‘전환채용’ 비율은 절반,
그마저도 전형 탈락하면 실직

해당 채용안에 따르면 전체 상담노동자 1,693명 중 정부 정책의 후속조치로 ‘민간위탁 정책 추진방향’이 발표된 뒤(2019년 2월 28일 이후) 입사한 700명은 ‘전환채용’이 아닌 ‘공개채용’ 대상이 된다. 최대 4~5년차 경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신규 응시자와 경쟁하게 되는 셈이다.

또 전환채용 대상으로 선정된 993명도 일정한 전형에 합격해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게 했다. 이들 중 정규직 전환 정책이 가시화되기 전(2017년 5월 12일 이전) 입사한 782명은 ‘서류전형, 인성검사, 면접전형’의 3단계 전형으로 평가받게 된다. 반면 같은 해 5월 13일 이후에 입사한 211명은 ‘서류전형, 기초지식평가, 인성검사, 면접전형, 공정확인면접전형’으로 총 5단계 전형을 거친다.

이런 절차를 설정한 이유로 공단은 “‘정책추진방향이 발표된 시점에 민간위탁 수탁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환 대상이기에, 원칙적으로는 2019년 2월 28일 이후 채용된 인원은 전환 대상이 아니”라고 지난달 3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또한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절차”라고도 덧붙였다.

기자회견에서 증언한 임성은 지부 서울지회 조합원은 “2년 전 사회적 합의로 이뤄낸 대로 ‘소속기관 전원 고용 승계’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2021년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는 소속기관 신설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결정하면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상담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권고한 바 있다. 소속기관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후 2년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지난달 24일에는 협의회 위원 4명이 “사회적 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지원 지부 정책국장은 이번 채용안이 “각 단계에 합격해야 다음 전형 응시 기회가 주어지는 구조”라며, “18년 이상 상담 업무를 맡은 숙련된 상담노동자조차 한 단계라도 불합격하면 그대로 실직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별·분기별 시험, 만족도 평가
“지속적으로 검증받았다”

이날 증언에 나선 상담노동자들은 “이미 공단에서는 여러 단계에 걸친 시험과 평가로 상담노동자들의 업무 능력을 검증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장용옥 지부 광주지회 조합원은 “입사 당시에도 전화 응대 테스트를 했다. 합격해 교육생이 된 후에도 과목별 시험, 종합시험, 상담·전산 업무 실기 평가를 모두 거친 뒤에 정식으로 입사했다”고 밝혔다.

지부에 따르면 공단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모두 입사 전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건강보험 양성교육’을 이수했다. 이때 여러 차례 시험을 치렀는데, 일정 점수를 획득하지 못하면 ‘미이수’ 처리돼 입사할 수 없다.

송옥황 지부 대구지회 조합원은 “2020년까지는 이른바 ‘공단 시험’이라 불리는 분기별 감사가 있어,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검증받았다”고 말했다. 송옥황 조합원에 따르면 분기별로 치르는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수탁업체 측에서도 매달 자체 시험을 치렀다. 송옥황 조합원은 “‘공단 시험’ 점수는 수탁업체 평가에도 반영되는지라, 한 문제라도 틀리면 대역죄인이 됐다”고 토로했다.

파트장으로 신규 입사자 교육 업무를 맡고 있다는 김윤지 지부 경인지회 조합원은 “파트장이 되려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매니저와 1:1 면담을 거쳐 합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윤지 조합원은 “공단의 입장대로 ‘상담노동자들의 자질이 증명되지 않았다’면 지금껏 자질도 없는 내가 신입 교육 자료를 만들고 상담을 지도했단 말이냐”고 물었다.

공단이 내놓은 채용안에 따르면 김윤지 조합원은 다른 상담노동자들을 지도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검증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입사자와 함께 공개채용에 응시해야 한다. 김윤지 조합원은 2021년 6월 입사자로, 민간위탁 정책 추진방안이 발표된 2019년 2월 27일이 지난 뒤 입사했기 때문이다.

다만 공단은 지난달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추진방안 발표 이후 입사한 700명의 상담노동자는 “기존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근무 기간 및 경력에 따라 (공개채용 전형에서) 가점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역업체 계약 만료까지 4개월
지부 조합원들은 단식 이어가

지난해 3월에 체결한 용역 계약은 4개월 후인 내년 3월 만료되지만 공단이 설립해야 할 소속기관은 아직 없다. 상담노동자들은 ‘해고 없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이은영 지부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35일 동안의 단식을 중단했고, 6일부터는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지부 조합원들 역시 릴레이 단식을 벌이고 있다.

지부는 “공단에 꾸준히 교섭을 요청했고, 지난 4일 정기석 공단 이사장과 면담에서도 교섭을 통한 사태 해결에 서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지부와 공단은 오는 8일부터 관련 교섭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지원 정책국장은 교섭에서 이번 채용안을 비롯해, 상담노동자들이 채용될 소속기관의 설립 시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