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콜센터노동자들 “AI로 업무강도 높아져···고용불안도 여전”
국민은행 콜센터노동자들 “AI로 업무강도 높아져···고용불안도 여전”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14 18:06
  • 수정 2024.02.14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든든한콜센터지부, 14일 콜센터노동자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 열어
국민은행 “AI 도입으로 콜 줄었다”지만···노동자들 “오히려 일 늘었다”
14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열린 ‘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사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간접고용 계약직으로 일하는 KB국민은행 콜센터노동자들이 KB국민은행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국민은행이 지난해 ‘AI 도입으로 콜이 줄었다’며 인력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에 내몰았다고 지적하며, “직접고용으로 고용안정을 보장하며 콜센터노동자와 상담 AI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지부장 김현주)는 14일 서울시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사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든든한콜센터지부는 지난해까지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등에 협의회 형태로 가입한 콜센터노동자 조합원 수가 늘어나면서 2024년 1월부터 별도 지부로 출범했다.

든든한콜센터지부는 “2년마다 반복되는 고용불안이나 제대로 휴식하지도 못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저임금과 실적 압박 등 KB국민은행 콜센터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간접고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KB국민은행은 2년 주기로 입찰공고를 내 콜센터 상담 업무를 수탁할 용역업체를 변경해 왔다. 콜센터노동자들도 2년마다 새로운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현주 든든한콜센터지부 지부장은 “예전에는 불안하더라도 고용이 승계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상담사 240여 명이 해고를 통보받은 이후로는 (용역업체나 KB국민은행의) 그런 말도 통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 콜센터 용역업체 입찰공고를 새롭게 내며 6곳이었던 콜센터 용역업체를 4곳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 2곳에 소속돼 일하던 노동자 240여 명이 같은 해 12월 해고를 통보받았다. 노동자들은 집단 해고를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결국 신규 용역업체 2곳에서 자진 퇴사자 등을 제외한 234명을 고용하기로 결정하며 실직 위기를 벗었다.

국민은행은 “AI 도입으로 콜 감소했다”지만···
노동자들, 식사·휴식 없이 통화하고 AI 학습 피드백까지

KB국민은행 측은 지난해 12월 인원 감축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대해 “AI서비스 고도화 등의 영향으로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콜 수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반순금 든든한콜센터지부 국민은행콜센터 효성ITX지회 지회장은 “지난 2개월간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고 하루에 100~200콜을 처리했는데, 인원을 감축했다면 어떻게 이 콜을 감당하려 했느냐(고 국민은행에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든든한콜센터지부가 제공한 지난 1월 15일자 업무시간 기록 자료에 따르면 예금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 A씨는 하루 동안 207건의 콜을 소화했다. 정보 조회, 사후 안내, 회선 연결 등의 시간을 모두 제외한 순수 통화시간만 6시간 5분에 달했다. 이 노동자가 사용한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은 각각 28분 24초와 9분 48초에 불과하다. 같은 날 다른 노동자는 식사나 휴식을 일절 하지 못한 채 154건의 콜을 소화하기도 했다.

콜센터노동자들은 ‘AI 상담 서비스가 고도화됐다’는 대목도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반순금 지회장은 “고객이 불분명한 발음이나 부정확한 용어로 대답했을 때 AI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통화를 끊어버리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또 고객의 문의에서 일정 키워드가 인식됐을 때 그에 해당하는 온라인 서비스 경로만을 안내한 뒤 임의로 통화를 종료하기도 한다는 게 반순금 지회장의 설명이다.

반순금 지회장은 “AI의 임의 통화 종료가 일정 횟수 이상 반복되면 콜센터노동자에게로 콜이 넘어오는데, 이때 그 전화를 받는 노동자에게는 (통화 종료에 대한) 상황이 공유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노동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객의 항의를 감당해야 하고, 상황 파악을 위해 이전 통화 내역을 전화번호로 역추적해 일일이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주 든든한콜센터지부 국민은행콜센터 KS고용정보지회 지회장은 상담 AI의 학습 과정 자체도 콜센터노동자들의 노동에 의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지회장은 AI가 내놓은 틀린 답을 정정하거나 고객의 부정확한 말을 요약해 정확한 서비스를 안내하게끔 학습시키는 일은 콜센터노동자들의 수동 피드백에 의해 이뤄진다며 “결국 콜센터노동자의 직무능력을 빼가서 상담AI를 만드는 셈”이라고 호소했다.

14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열린 ‘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사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실적 압박·고용불안 원인은 ‘경쟁입찰 간접고용’”
AI 도입 맞물려 더 큰 불안 느끼는 콜센터노동자들

콜센터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식사·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에 수백 건의 콜을 소화하고, AI 학습 피드백 등 추가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실적 압박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지회장은 “콜을 소화한 건수나 건당 소모되는 시간, AI 학습 피드백 프로그램 이용 내역 등에 점수가 매겨져 용역업체 평가에 반영된다”고 했다. 용역업체는 다음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 타 업체와 경쟁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실적이 나오지 않아 점수가 일정 수준에 못 미치면 다음 계약에 영향이 간다’며 압박을 준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도급계약을 맺을 용역업체를 2년마다 새롭게 선정하고 노동자들이 새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어 가며 일자리를 유지하는 고용형태로 인해 콜센터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노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노동자 240여 명이 해고를 통보받았던 일이 대표적이다.

든든한콜센터지부는 이 같은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경쟁입찰을 통한 간접고용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며 “KB국민은행이 콜센터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당장 직접고용이 어렵다면 자회사 형태로 콜센터를 운영하는 KB손해보험의 사례와 같이 최소한 고용안정이라도 보장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반순금 지회장은 “AI도입으로 인해 느끼는 불안은 모든 콜센터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자회사 소속 노동자들이나 정규직들은 사측과 논의할 수 있는 여지도 많고 고용불안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240여 명의 집단 해고가 AI 도입 문제와 맞물리며 조합원들에게 더욱 심한 공포로 다가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KB국민은행 측은 <참여와혁신>에 “KB국민은행은 민법에 따라 도급계약을 맺은 수탁업체의 인사·노무에 대해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또 콜센터노동자들이 요구한 직접고용이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콜센터 운영에 대한 입장을 묻자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