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노동자들, ‘단체교섭권 침해’ 정부 지침에 행정소송
공공노동자들, ‘단체교섭권 침해’ 정부 지침에 행정소송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3.11 16:27
  • 수정 2024.03.1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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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2차례 권고에도 시정 없이 ‘예산운용지침’ 의결한 정부···
양대노총 공대위, 행정소송 통해 정부 지침 무효화 요구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양대노총의 공공노동자들이 정부의 ‘2024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처분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양대노총 공대위)*는 11일 오전 서울시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14일 정부가 확정한 2024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이 “노정교섭을 해태하는 행위이자 (공공노동자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라는) ILO(국제노동기구)의 권고를 무시한 것”이라며 이를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국노총 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보건의료노조 등 양대노총의 5개 공공부문 산별노조·연맹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양대노총 공대위는 2022년 6월과 7월 ‘정부가 공공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ILO에 한국 정부를 제소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에는 이에 대한 추가 자료를 제출했다. ILO는 이 가운데 2022년 제소 건에 대해 공공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해 6월과 11월 ‘공공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체계를 수립할 것’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과 공공기관 노동조건을 협의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노조와 협의 없이 지난해 12월 14일 예산운용지침을 의결하고 같은 달 28일에는 ‘2023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냈다. 정부는 이들 지침과 편람을 통해 공공기관의 인건비와 복리후생비를 결정하고, 공공기관 노사 간 단체협약 내용이 정부 지침에 부합하는지 평가해 점수를 매긴 뒤 이를 토대로 성과급 삭감 여부를 결정해 왔다는 게 양대노총 공대위의 설명이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마친 (왼쪽부터)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정정희 공공연맹 위원장, 송민 공공노련 상임부위원장이 서울행정법원 민원실에 행정소송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 무효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마친 (왼쪽부터)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정정희 공공연맹 위원장, 송민 공공노련 상임부위원장이 서울행정법원 민원실에 행정소송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양대노총 공대위 측 소송 대리인단인 박운병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정부가 지침을 일방적으로 통보해 임금인상률 등 공공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번 예산운용지침의 일방적 통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제33조와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 제98호가 모든 노동자의 자주적인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운병 변호사는 이어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행정권에 의해 침해된 권익을 구제하기 위한 사법 제도가 보장돼야 한다”며 서울행정법원이 예산운용지침의 위법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소송 대리인단인 조민지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예산운용지침의 법적 근거가 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목적이 각 공공기관의 자율경영·책임경영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점을 들어 “기획재정부의 지침이 이 취지와 달리 공공기관의 자율경영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지 변호사에 따르면 앞으로 소송 대리인단은 △예산운용지침이 각 공공기관에 직접적으로 구속력을 발휘하며 인건비 편성·집행의 구체적 권리를 제한한다는 점 △예산운용지침이 가이드라인을 넘어서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노사합의 요소들을 결정짓고 있다는 점 등을 입증할 예정이다.

양대노총 공대위는 정부가 공공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이번 행정소송을 시작으로 공공노동자의 노정교섭을 쟁취하고 (정부의) ILO 권고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