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코미디, 혹은 반전드라마
한편의 코미디, 혹은 반전드라마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09.2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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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지부, 결선 진출자 가리기까지 6박7일 간의 풀 스토리

[10신] 길고 험난했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제3대 지부 임원 선출을 위한 1라운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기호 1번 이경훈 후보조(전현노)와 기호 3번 권오일 후보조(민주현장)가 결선 진출의 주인공들이다.

이번 선거는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 87년 9월 초대 임원 선거를 치른 후 열두 번의 위원장 선거와 두 번의 지부장 선거를 치르는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재투표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사상 초유’의 사태를 바라보는 조합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15일 투표 실시 이후 21일 결선 진출자를 가리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6박7일 간 펼쳐진 스토리는 한편의 코미디로 시작해 반전드라마로 끝을 맺었다. 그나마 액션 활극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할만하다.


15일, 창원에서 시작된 ‘비극’

문제의 발단은 15일 창원에서 비롯된다. 판매위원회 경남지회의 투표가 진행된 창원에서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226명. 그런데 현대차지부는 관례적으로 해당 지역 소속조합원 숫자보다 많은 투표용지를 보낸다. 선관위원과 참관인, 그리고 출장자들이 해당 지역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한 배려다.

문제는 ‘떨어지지 않는 숫자’로 도착한 투표용지였다. 250장이 오는 것이 그간 관례로 볼 때 정상적인데 251장이 왔던 것. 더구나 이 투표용지의 일련번호는 마지막 숫자가 0으로 끝나야 하는데 3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당시 선관위원들은 참관인(공교롭게도 창원에는 기호 3, 4번 측이 참관인을 파견하지 않아 1, 2번 참관인들만 있었다)들과의 합의 하에 잘못 온 투표용지라는 결론을 내린다. 바로 이 지점이 코미디로 변질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은 그 ‘잘못 온’ 투표용지를 돌려보내는 방법으로 아무 것도 표기하지 않은 채로 투표함에 집어넣은 것.

16일 새벽, 화약고에 불이 붙다

16일 새벽, 한창 개표가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혼란이 발생한다. 앞서의 경위로 투표용지 한 장이 더 들어간 투표함이 발견된 것. 당연히 논란이 발생한다. 투표자보다 투표용지가 많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쪽이 기호 3번 권오일 후보 진영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판매위원회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이 투표함을 제외하고 일단 개표를 진행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후보 간 표차가 개표하지 않은 226표보다 적은 86표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개표 결과 기호 1번 이경훈 후보조와 기호 4번 김홍규 후보조는 1, 4위로 확정됐지만 결선 진출을 두고 기호 3번 권오일 후보조와 기호 2번 홍성봉 후보조가 86표차를 기록했다. 선관위는 장고 끝에 16일 오후 재투표로 방침을 정했다.

법리적으로 볼 때 타당한 결정으로 보였다. 투표자보다 많은 투표용지가 나온 이상 선거 무효로 결론날 가능성이 높고, 새벽 개표 진행 과정에서 후보자간 표차가 미개표한 표보다 적을 경우 재투표한다는 방침에 합의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17일, 코미디와 활극 사이

당연히 홍성봉 후보 진영은 환호했고 권오일 후보 진영은 반발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선관위는 재투표 방침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17일, 4위로 탈락이 확정된 김홍규 후보 진영에서 기존 투표 결과에 승복한다면서 만약 재투표가 실시되더라도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사실상의 후보 사퇴 선언을 했다. 재투표에 반대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런 가운데 17일 저녁 무렵부터 재투표 없이 미개표된 투표용지만 개표한 후 결선 진출자를 확정지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장의 ‘유령표’가 어떤 의도를 지닌 부정선거가 아닌 단순한 ‘해프닝’이라는 점이 명확해지면서 재투표의 명분이 약해진 것.

선관위는 18일 오전 재투표 없이 기존 개표를 속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개표를 하기로 했지만, 홍성봉 후보 진영 조직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결정을 다시 미뤘다. 이때 홍성봉 후보 쪽에서는 이미 선거 결과 수용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일반 조직원들이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말 동안 냉각기를 가지기로 했고, 그 와중에 각 후보 진영과 선관위가 계속 대화를 진행했다. 그리고 일요일인 20일 오후 들어 홍성봉 후보 진영이 혼란을 매듭지으면서 후일을 도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21일, 반전드라마 막 내리다

21일 오전 홍성봉 후보 진영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방침을 밝혔고, 오후 열지 못했던 226장(백지 투표용지를 포함할 경우 227장)에 대한 개표가 진행됐다. 그 결과는 기존의 결과를 뒤집지 못했다.

길고 황당했던 6박7일 간의 선거 드라마는 그렇게 1부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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