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뭐래도 기능인을 향한 내 꿈은 접지 않는다
남들이 뭐래도 기능인을 향한 내 꿈은 접지 않는다
  • 정유경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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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노동을 ‘왕따’ 시키다
② 기술전문가를 꿈꾸는 사람들

기능경기대회에서 찾은 기능 꿈나무들의 ‘꿈’ 이야기

늦더위가 한창인 지난 9월 13일, 충남 당진에 위치한 신성대학 캠퍼스 안은 유난히 소란스럽다. 캠퍼스 한쪽에서 제 42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한 몇십 명의 선수들이 고장 난 자동차 수리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귀마개가 없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소음과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불꽃으로 눈과 목이 따갑지만 선수들의 눈은 오직 차체에만 집중이 돼 있다. 등은 땀에 젖을 대로 젖어 있고 선수들에게 제공된 1.8리터 생수병은 경기가 시작된지 3시간이 넘었지만 뚜껑도 따지지 않은 채 자리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자동차,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앳된 얼굴의 한 선수가 찌그러진 도어를 펴는데 온 정신을 쏟고 있다. 기다란 도구로 눌린 부분을 밑에서 들어 올리고 평평한 망치로 솟은 부분을 가라앉힌다. 판금이라고 하는 이 직종의 참가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대체로 움직임이 적다.


“판금할 땐 많이 움직일 필요가 없죠. 힘만 많이 준다고 무조건 펴지는 것이 아니에요. 잘 못하면 시작했을 때보다 더 엉망이 될 수도 있어요. 힘 조절을 잘해서 조금씩, 천천히 만져보고 또 만져보면서 조심스럽게 해야 하죠.” 참가 선수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두드리고 펴는 것보다 얼마나 많이 펴졌는지 만져 보는 횟수가 더 많게 느껴진다. 이러다 언제 다 펴나 생각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늦지만 다른 팀을 둘러 봐도 서두르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임이 적다고 쉽다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이게 별 다른 기술 없이 쉬워보여도 굉장히 까다로워요. 집중을 조금만 안 해도 애를 먹죠. 대회 나오기 전에 연습할 때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했었어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화도 많이 나고 속상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자꾸 말시키지 마세요. 저도 이제 경기에 집중해야죠. 이러다 선생님께 혼나겠어요.”

찌그러진 것을 펴는 원리는 같은, 차체 교정에 한창인 선수들도 문지르고 펴보기에 열중이다. 도어를 펴는 것과는 다르게 한군데 서 있지 않고 차체 이곳저곳을 만져보던 선수가 별안간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교정이 끝나 심사를 받겠다는 외침이다. 기계 소리 때문에 자신의 소리가 묻힐지도 몰라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오전 내내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선수는 그제서야 아쉬운 듯 차체에서 손을 떼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기 시작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내 꿈은 ‘명장’ 그리고 ‘세계 최고 기능인’

바쁘게 움직이는 선수들 사이로 다소 한가로워 보이는 선수가 눈에 띈다. 부산자동차고등학교에 다니는 박윤범 군은 참가 선수 3명을 도와주러온 4명의 보조선수들 중 한 명이다.


이번 대회에 따라온 보조선수들은 보통 내년에 선수로 나온다. 당장은 선수를 보조하는 보조선수의 이름이지만 내년에는 선수로 꼭 참여할 계획이라는 그는 당찬 각오를 밝힌다.


“제 꿈은 이 차체수리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절 명장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것만 생각하면 대회 준비하는 내내 연습하느라 힘들어도 힘이 나요.” 박 군은 진짜 명장이 된 것 마냥 환히 웃는다.


“주위에서는 왜 대학교를 안가고 힘든 기술을 배우냐고 물어봐요. 대학을 안가면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빠르게 기술을 더 배울 수 있잖아요. 어차피 기술을 배울 거라면 대학교에 가는 것보다 기술을 먼저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는 ‘기술자’를 무시하는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머리로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죠. 기술로, 특히 손의 감각으로 하는 일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거든요. 전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껴요.”


천안공고 경기장에서 만난, 경주공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천연호 선수의 기술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 않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왜 꺼려야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남들이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처럼 저도 기술을 공부하는 건데 말이죠. 기술 배워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대학 가서 다 성공하는 거 아니잖아요.” 한 번 말하기 시작한 그는 그 동안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쌓아온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 낸다.


“저는 꼭 세계대회에 나가 1등을 해서 기술을 배우고 기술자와 기능인으로 사는 것이 정신으로 하는 노동보다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겠어요”라고 포부를 밝히는 그의 모습에 기능인의 밝은 미래가 겹쳐 보인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점점 줄어가는 미래의 기능인

경기가 진행 중인 경기장 앞 쪽에는 각 직종에서 작년대회에서 1등을 한 선수가 시범을 보이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그 곳에서 박 군과 천 군처럼 최고의 기능인이 되겠다는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 김형준 씨를 만났다. 작년 전국대회 용접 직종에서 1등을 한 그는 어느새 한 대기업의 듬직한 노동자가 돼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우선 지금 목표는 세계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멀리 보면 명장이 되는 거고요. 어느 정도 제가 능력이 되면 용접연구소에서 후배들을 위한 좋은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꿈입니다. 열심히 쉬지 않고 노력한다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먼저 사회에 나온 선배로서 후배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충고한다. “기술을 가진 기능인은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야지 진정한 기능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가장 큰 문제는 후배들이 줄어든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가 이렇게  앞에 나와 시범을 보이는 이유도 줄어든 후배를 늘리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등을 한 선수가 나와 시범을 보여 대회장을 찾은 학생들이 기능인이 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하는 하는 목적이라는 게 대회관계자의 귀띔이다.


실제로 기능인 양성의 첫 관문인 공업계고교의 취업률은 줄어들고 대학으로의 진학률은 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공개한 2005년 진학률 추이 자료에 따르면 공업계고교의 대학진학률이 64%가 넘는다. 기능인 대회에 참가한 공업계 고교 학생들과 교사들도 “현재의 추이도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남공고 손용섭 교사도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기술직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이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반면에 정말 좋아서 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런 학생들의 취업과 장래를 보장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는 기능인의 입지가 좁아지고 기능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경기대회에 참여한 선수들과 보조선수들의 열정을 보면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기능인이 되기 위해 불똥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용접에 몰두하고, 의자가 있는데도 혹시 회로가 안보일까 한나절 넘게 허리 한 번 못 펴는 젊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 기능인의 미래는 희망적일 뿐이다. 보조선수들의 열기도 선수 못지않다. 행여나 선수들의 경기장면을 놓칠까 경기장 앞을 떠나지 않고 몇 시간이고 서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땅거미가 질 때가 되서야 경기장을 나온 선수들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대부분 같은 학교 선수들과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눈치다. 대회 3일 째인 내일도 그들은 희망을 가슴에 안고 경기장에 도착할 것이다.


자면서도 1등 기능인이 되는 꿈을 꾸는 그들에게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사위원의 목소리는  기회와 도전과 희망의 종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