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땀의 의미’ 짓밟히는 ‘땀의 가치’
잊혀지는 ‘땀의 의미’ 짓밟히는 ‘땀의 가치’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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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노동을 ‘왕따’ 시키다
⑥ 노동의 오늘

노동에 대해 아예 가르치지 않는 학교
권리도 의무도 아닌 ‘돈’으로만 따진다

주가가 다시 2000선을 돌파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실시간 주가 등락 상황을 지켜보면서 환호하거나 또 한숨을 내쉰다. 정부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지난 5년 새 다섯 배나 뛴 곳도 있다. 사람들은 지금도 부동산 정보에 귀기울인다.


대규모 노동조합들이 노동운동의 정신, 사회적 연대를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관심은 ‘임금이 얼마나 더 오르는가’에 쏠려 있다. 노동조합의 도덕성이나 정책능력 등은 별반 관심이 없다. 그저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노동조합을 원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바닥 수준인가를 드러낸다. 인간적인 노동, 창조적인 노동보다는 노동을 통한 ‘돈’에 관심을 쏟고, 더 나아가 일하지 않고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몰두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노동의 오늘이다.

 

대한민국 노동·기술 교육의 현실

노동부가 지난 7월 23일부터 한달 간 아르바이트생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 600개소를 점검한 결과, 점검사업장의 63.8%인 410개 사업장에서 715건의 노동법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법 위반 사업장들은 근로시간이나 임금 등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거나 최저임금, 근로시간 등을 위반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계층을 상대로 법을 위반했다는 점에서 위반 사업장들이 처벌을 받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위법 사례를 적발하고 사법조치를 하면 끝나는 문제일까? 아르바이트 고용사업장의 2/3가 법을 위반할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용사업주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피고용자인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지 몰랐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르바이트는 노동시장에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이 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사실 ‘아르바이트’란 본래의 직업이 아닌 임시로 하는 일(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가리키는데, 노동법에는 아르바이트란 용어가 없지만 통상적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나 짧은 기간 동안 임시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이른바 비정규 노동의 한 종류이며, 이들의 노동 또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노동부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노동교육 현실의 반증이다. 그리고 그것을 악용한 결과다.

실제 일전에 한 대학에서 아르바이트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10%만이 서면으로 작성했다고 대답했다. 또 사업장 내에 취업규칙이 비치되어 있는지에 대해 ‘모른다’는 대답이 46%였고, ‘없다’도 38%로, 84%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취업규칙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대답이 70%였고, ‘알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비단 특정대학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설문결과를 볼 때 노동부의 조사결과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실제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는 사업장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대학진학이 지상과제가 된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두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기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의 존재와 내용에 대해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이도 알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규수업으로는 모자라 보충수업에, 학원·과외까지 하며 수학공식이나 영어단어는 외워야 하지만 노동권에 대해선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국민의 권리 중의 하나로만 배울 뿐이다. 초·중·고 12년의 교육이수 과정 속에 노동과 관련된 독립적인 교육이나 교과서 내의 단원은 없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교육연구사는 “아이들이 여러 교과에 복합적으로 녹여 자연스럽게 노동에 대한 문제를 습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는 김모 교사는 “‘시민윤리’ 단원의 소단원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윤리’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고 서양사상 중 하나로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나오지만, 노동의 의미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내용은 없다”고 전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교육위원회 김경원 위원장도 “프랑스나 일본 등의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노동문제에 있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없다”며, 일례로 “노동조합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아이들에게 편견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대학 진학이 지상과제가 되어 버린 우리의 현실은 ‘땀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은 고사하고, 대놓고 무시하고 비하하기도 한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 할래?’ 등의 급훈들은 우리나라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 키워

결국 ‘땀의 의미’를 배운 바가 없는 아이들의 첫 노동경험은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문제가 전문계 고교생들의 ‘현장실습’이다. 전문계고생의 기술·기능 강화와 현장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1973년 산업교육진흥법이 규정·실시됐고, 전문계고 3학년생들은 2학기엔 의무적으로 산업체로 파견돼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대다수 전문계고의 현장실습이 다분히 형식적이고 파행적으로 이뤄져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고등교육에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할 교육과정을 다 끝내지 않았음에도 ‘때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현장실습이 이뤄지고, 학생들 전공과 상관없는 실습이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또 학생·학부모·교사·산업체 모두 현장실습을 교육과정의 일환이 아닌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해 학생들은 진로와 연계되지 않는 일시적인 아르바이트로, 산업체는 저임금 단순대체인력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다보니 현장실습생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실습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가 2002년 12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전국의 전문계고 학생 7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현장실습생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다 잡다한 업무를 강요받는 등 극도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려 있었다.


이 외에도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해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시킨다든지 정신적·물리적 폭력, 성희롱, 부당해고 등 현장실습에서 실습생들에게 행해지는 부당노동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술인으로서의 꿈을 키우는 아이들의 ‘땀의 가치’를 어른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무참히 짓밟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 못해 학교로 돌아오면 “참을성이 부족하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학생에게 돌리기 일쑤다. 하지만 사실 현장실습에 앞서 아이들에게 노동의 가치나 현장실습을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결국 아이들은 노동의 의미도 모른 채 산업현장에 투입되고 그곳에서 노동의 가치를 깨우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것을 겪으며 마음에 상처를 받고 사회와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늘어가는 ‘3D’업종들과 ‘이태백’ 시대

현장실습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지난 5월 1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실업계고교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김경원 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중소기업과 담당 교사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교육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전문인을 키우는 기술교육은 스킬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측면에서 김 위원장은 현행 기능경기대회를 비판한다.


현재 학생들의 기능경기대회에서의 성적이 교사들의 평가와 학교 인지도에 영향을 미치므로, 방과 후에 기능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기술만을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능경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더라도 실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창의성이 부족하고 작은 변수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전한다. 기술인으로서 꿈을 키우며 흘린 아이들의 땀방울이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좌절되는 또 하나의 경우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노동을 기피하게 된다. 이런 기피현상은 다시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란 신조어까지 생기며 실업률은 높아지는 반면 중소기업 등 생산공정에서의 인력이 부족한 모순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이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비용 낭비로 이어지게 된다.


김경원 위원장은 “3D 업종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전문기술을 요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런 기술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며 “노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3D 업종을 양산하고 기피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는 노동이란 뜻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르바이트는 직업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임시로 하는 일로 변질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노동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