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있지만 미래는 '암담'
‘꿈’은 있지만 미래는 '암담'
  • 정유경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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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노동을 ‘왕따’ 시키다
④ 현장인터뷰_ 노동을 말하다

뿌리 깊은 노동에 대한 편견
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은 사회적 과제

동호공고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동호공고 폐교 논란은 단지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실업계고 전체의 문제이며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점점 퇴색되어 가는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동호공고 사태와 관련된 이들에게 ‘노동’에 대해 물었다. 현재 열심히 꿈을 좇고 있는 실업계 학생들에게서 노동의 미래를, 실업계고 교사에게서 실업계 교육의 현주소를, 남산타워 주민들에게서 현재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노동’의 현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 전국기능경기대회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 노동은 어떤 의미며 노동자에 대한 생각은 무엇이냐고.


노동자를 꿈꾸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노동은 무엇인지, 노동자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늘 고민 하는 듯 했다. 노동과 노동자가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길은 무엇인지 말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 노동의 미래를 키워가고 있는 학생들의 눈

“제 자신이 부끄럽지 않아요”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2학년 박○○ 학생 (전자과)

전자과에서 주로 납땜과 컴퓨터를 배우고 있어요. 졸업을 하면 이 기술을 바탕으로 저의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사실 사회에서 실업계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모이는 학교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실업계라서 제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어요.

 

실업계 간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도 반대 하지 않으셨고요. 우리나라는 실업계 학생들은 무조건 불량학생이고 담배피우고 나쁜 짓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도 꿈을 갖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직 이론은 별로지만 실습은 정말 재미있어요. 제가 나중에 결혼해서 제 자식을 낳더라도 실업계로 진학한다고 하면 결코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학교가 없어지면 내 꿈도 없어지는 것”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1학년 최○○ 학생 (정보통신과)


원래 꿈은 자동차 공고에 진학하는 거였지만 지금은 통신을 전공하고 있어요. 컴퓨터 엑셀 작성이나 납땜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공부들이 저에게도 잘 맞고 재미있어서 나중에 직업으로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회사에 취직해서 문서를 다루고 싶어요. 학교가 폐교 된다는 결정을 들었을 때 ‘낚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특성화 고교로 전환되는 줄 알고 기대에 부풀었는데 주민들 때문에 폐교 된다고 하니 제 꿈도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도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저희를 좀 예쁘게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인문계 학생들과 비교될 때는 속상해요”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3학년 조○○ 학생(기계과)

제가 다니는 학교가 폐교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방송특성화고로 전환된다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계과에 다니는데 저희 과는 인기가 없어 없어진다고 해서 조금 아쉬워요. 중학교 때는 공부를 안 해서 어쩔 수 없이 공고에 오게 됐어요. 오기 전에는 공고 생활이 힘들 줄 알았는데 막상 오고 나니 애들도 좋고 학교 생활도 즐겁습니다. 요즘 공고에서도 많이들 대학으로 진학하고 취직도 잘 되니까 공고에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인문계 학생들과 비교할 때는 가끔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학급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 신입생을 더 많이 뽑고 학교도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 노동을 보는 실업계 고교 교사의 눈

동호공고는 실업계 고교 전체의 현실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교사 ○○○

현재 우리 사회는 동호공고 뿐만 아니라 모든 실업계 고등학교가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인정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해서 실업계 고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학교가 당장 폐교 된다고 해도 학부모들은 제대로 된 관심조차 기울일 수 없을 만큼 생업에 바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저소득층 가정이기에 그 분들은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남산타워 주민들이 초등학교 때문에 강력하게 항의할 때 동호공고 부모님들은 생업에 쫓겨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실업계 고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가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 형편이 안 돼서, 머리가 안 돼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손재주 하나로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실업계 고등학교입니다. 일반 고등학생과 실업계 고등학생을 비교했을 때 실업계 학생들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실업계 고교생이라면 담배피우고 술 먹고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전체 학생들이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런 아이들이 유독 많다는 것이고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들은 인문계 학교에서도 존재 합니다. 실업계 고교라서 그런 문제들이 더 확대 해석 되는 것 같습니다. 동호공고의 경우도 이런 이유 때문에 동호공고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 아파트 주민들이 또 다시 상처를 줘서는 안 됩니다.

 

실업계 고교는 노동의 미래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 오성훈 방송영상과장


실업계 고교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고와 외고, 특목고의 입지는 환영하지만 동호공고 뿐만 아니라 다른 공고의 입지는 모든 지역에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실업계 고교, 나아가 노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땅값이 교육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 분위기가 있습니다.


또한 실업계를 졸업해서 가지는 직업에 대한 편견도 있습니다. 대학을 나오면 엄청나게 월급을 많이 받지만 실업계 나와서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고 돈도 적게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분위기가 노동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면 자기 몸으로 땀 흘려서 노동할 사람들은 점점 줄어 들것입니다. 가령 집에 수도가 고장 나면 누가 고칠 수 있을까요? 실업계 고교는 우리 사회 노동의 미래입니다. 하루 빨리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아야지 실업계 교육도 편견에서 벗어나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 노동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

실업계 고교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지 않아   

남산타워 주민

동호공고 안에 초등학교를 만들어 주민들이 공고 학생이랑 초등학교 학생들을 안 붙여 놓으려고 한다는데 전 그게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아요. 사람들이 실업계 학교다 뭐니 이야기 하는데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교육평준화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상고 다 유명한 학교였습니다. 반에서 상위권 안에 못 들면 들어갈 수 없는 학교가 많았습니다. 그 학교 나온 판·검사 출신도 많아요. 실업계 학생들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이 있어 육체적인 노동을 한다면 쉽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 의사 시켜야지, 공장 보낼 수 없다   

상가 주민


사실 자녀들을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내 아이가 공고 학생들과 같이 공부한다고 하면 불안해 할 것 같아요. 요즘 세상이 무섭다고들 하잖아요. 요즘은 초등학생 고학년들을 중학생들이 찍어서 데리고 간다고 하는데 사실 학교도 마음 편히 놓고 보낼 수 없거든요. 아무래도 공고 학생이라고 하면 공부를 별로 안하니까 우리 아이들도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 많이 들어요.


당연히 부모 입장에서는 좋은 대학 나와서 의사나 판·검사 시키고 싶지 실업고등학교 보내서 공장 들어가게 하고 싶겠어요? 저희 세대가 힘들게 자랐기 때문에 아이들만큼은 손에 기름때 안 묻히게 하고 싶어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이게 대다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닌 가 싶네요.

 


◈ 노동을 보는 기능경기대회 참가 학생들의 눈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대우 받는 노동자가 되고 싶어요   

기능경기대회 참가 선수 (CNC/밀링)

노동자라는 말이 좀 낯설어요. 물론 저도 노동을 하면서 이제 살아야겠죠. 내년에 졸업하면 저도 노동자가 될테니까요. 만약 대학을 가지 않는다면요. 지금까지 계획은 대학은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기능경기대회에 목숨을 걸었어요.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더 대우받는 노동자가 되고 싶어서죠. 그냥 기술만 배우면 작은 회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기능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더 크고 돈을 많이 받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 기왕 노동이라는 것을 하려면 대우받으면서 해야죠.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노동은 당연히 해야 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요. 주위에서는 공부를 잘하면 부러워해도 기술로 성공을 하면 부러워 안 해요. 다 같이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나 몰라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는 말은 세 살 먹은 꼬마도 아는 것이 아닌가요.

 

하고 싶은 일 해야 행복한 노동자죠   

기능경기대회 참가 보조선수 (용접)


 사실 저는 인문계를 가지 못해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비록 인문계는 아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부모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고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막상 해보니 공부보다 용접기술을 배우는 게 더 재미있습니다. 저한테 소질이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용접기술을 제대로 배워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엄마는 허락을 하셨는데 아빠는 여전히 용접 배우는 것은 싫어하세요. 예전보다 반대가 줄긴 했지만 아직도 공부만 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설득할 자신 있어요. 


봄부터 방학 때도 안 쉬고 학교에 나와 연습을 했습니다. 지금은 2학년이고 보조선수지만 그래도 연습은 꼭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힘들어도 재미있어요.


전 노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회에 진출해 노동을 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일로 노동을 하고 싶어요. 주위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 노동을 보는 노동자의 눈


기술 있는 사람 인정해 줬으면    

하윤기 심사위원 (충남테크노파크 정밀가공지원센터)


저도 이 기능경기대회 출신입니다. 제 30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CNC/기계 직종 1등을 했었어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발전된 기능인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공작 기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배우려고 대학도 다녔고요. 그러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기능인이라고 기능, 기술만 익히면 안 된다는 것을요. 이론도 접목을 해야 보는 눈도 넓어지고 역량이 커지는 거죠.


하지만 보통 기능인들은 자신의 역량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고 남과 경쟁하려는 성향이 강하죠. ‘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가 돼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진 기능인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방법이나 기술을 따라하고 인정하는 것에 익숙치 않고요.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론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듣고 느껴야 기술이 발전이 되는 거죠.


또,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인 노력도 같이 가야 합니다.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처럼 대대손손 기술이 있는 사람을 인정해주고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노력한 만큼 그 사람의 전문성을 크게 봐야 한다는 겁니다.     

 

기능인 꺼려하는 사회적 풍토 우려     

김윤식 심사장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교감)


사회와 부모 그리고 학생들에게 기능인은 기피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기능인이 하는 일은 비전도 없고 3D업종이라고 생각을 하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완성교육이 돼야 하는데 계속 교육이 되고 있습니다. 공업계 고교를 졸업해도 대학을 진학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몸으로, 기술로 일하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부모가 주입시키니 문제입니다.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조차도 기술을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이것은 사회전반에 박혀 있는 노동에 대한 편견 때문입니다. 흔히 몸으로 하는 힘든 일들은 노동의 가치가 낮고, 정신적이고 사무적인 일은 노동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을 하죠.


이런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것을 미래의 노동자로서 아이들도 늘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거죠. 진정한 노동이란 무엇인지, 노동의 종류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매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우리끼리 하는 말로 ‘기능인이 애국자’라는 말을 합니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될 수 있었던 데는 기능인의 공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죠. 기능인이 줄어들면 산업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노동자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이창희 심사위원(한국폴리텍Ⅳ대학 로봇자동차과 교수)


요즘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실업자가 더 많아지는 거죠. 본인의 능력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니 눈만 높아지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참 노동의 가치가 발휘되는 거죠. 힘들고 어렵진 않은지, 보수는 얼마나 되는지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죠. 사회 탓, 정부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가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능인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합니다. 기능인은 어렵다, 힘들다 하면서 보수는 그들의 노력과 능력에 훨씬 못 미칩니다. 기능인을 장려해야 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기능인을 전문인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