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늪’에 빠지다
노동의 가치, ‘늪’에 빠지다
  • 박인희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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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노동을 ‘왕따’ 시키다
③ 노동을 바라보는 두 가지 풍경

대한민국 노동이 죽어가고 있다
노동을 천박하게 여기는 인식부터 바꿔야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70년대 기계 공장에서 사용되던 구호이다. 한때 건강한 땀방울로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켰던 노동이지만 시대는 변했다. 그리고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현재 취업자들의 구직성향, 실업계 고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만 보더라도 노동인식에 대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얼마 전 폐교 논란이 일었던 동호공고 사태와 올해로 42회 째를 맞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이 두 가지 풍경은 ‘노동’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노동의 꿈’이 꺾여버린 ‘공업고등학교’의 젊은 그들, 그리고 ‘노동의 꿈’을 위해 세상과 부딪쳐 나가는 첫 발을 내딛은 ‘기능경기대회’의 젊은 그들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이제는 낯설어진 기능한국의 꿈

전국기능경기대회는 전국의 실업계고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들의 기술을 겨루는 장이다.


1966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2회 째를 맞고 있는 이 대회는 노동자의 직업능력개발과 기업체의 산업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국제대회 파견을 위한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이 대회는 그간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나 작년부터는 경기를 공개적으로 치르고 있다. 그 이유는 공정성을 갖추기 위한 부분도 있지만 기능경기대회를 홍보하고 기능인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기능경기대회가 기능인을 양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갖고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실시된 전국기능경기대회도 예년과 같이 참가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처럼 자신의 기술을 열심히 갈고 닦으며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이제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기능직’이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다.


최고의 기능인을 꿈꾸는 학생들조차 기능직 노동은 그저 3D업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대회의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일반적으로 몸으로 하는 노동은 힘들고 하찮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전한다. 반면 “학사모를 쓰고 대학을 졸업해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무직 노동에 대한 환상은 아주 높다”고 설명하면서 “기능직은 힘들고 하찮지만 사무직은 고차원적이면서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모두 기능직 노동에 대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으로부터 교육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심사위원은 “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는 최근의 구직 성향도 모두 노동에 대한 가치가 올바로 서지 않아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의 기술을 꿈꾸며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조차도 기능직 노동에 대한 어두운 현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기능에 대한 학생 및 일반인의 관심 부족

전국기능경기대회는 기능인에서 나아가 일반인들의 관심을 유도해 국민의 축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이지만 참가자를 제외한 다른 실업계고 학생들이나 일반인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기능인에게는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장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속에 치러지는 것은 기능직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부족함을 드러낸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경기대회 자체도 참석하는 학생들의 열기는 여전하나 기능경기대회는 아직 여러 가지 환경적인 한계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직 공개로 진행하는 방식이 정착되지 않았고 우선 경기장이 협소하고 학부모, 교사, 보조선수가 구경할 자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기능경기대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능인을 취업과 연결시킬 기업과의 연결고리가 중요하지만 기능경기대회의 입상이 취업과  직결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경기 관계자들은 “기능경기대회를 통해 취업의 길이 열린다면 참여도도 높아지고 기능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또한 “참가자들이 메달에만 연연하지 말고 자신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하고 임하는 것이 기능인으로서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부푼 꿈을 안고 대회에서 입상해도 노동에 대한 사회의 가치가 올바로 서지 않는 이상 이들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제2의 동호공고 탄생하지 말아야

동호공고 사태는 폐교가 철회되고 동호공고 내 초등학교를 신설하는 것으로 일단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제2의 동호공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업계 교육, 나아가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로 잡는 일이 필요하다.


동호공고 사태는 우리 나라 교육이 입시위주로 흘러가고 있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실업계 고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우선 동호공고에 폐교 결정이 행정예고 되기까지 그 어디에서도 동호공고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그저 남산타워 주민들의 압박만이 작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초등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동호공고로 인해 주변 부동산 가격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의견도 제기 되었다.


최근 특목고나 과학고의 유치가 자치단체장들의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고 이를 위해 이들 고등학교의 유치를 위해 힘을 기울이는 것이 사회의 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동호공고와 같은 실업계 고등학교는 혐오시설로 간주되어 입지가 예정되자마자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동호공고 인근 부동산 업자는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남산타운 주민들이 폐교를 주장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좋은 학군이 형성되면 주변 땅 값이 올라가기 마련”이라고 조심스레 이야기 한다. 


동호공고 관계자는 여기에 대해 “교육 받는 학생들의 의견은 배제한 채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교육이 자본의 논리에 이끌려 가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동호공고 사태는 남산타워 주민과 동호공고 학생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동호공고, 나아가 실업계 고교에 대한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받은 학생들의 상처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동호공고 사태가 공론화 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실업계 교육에 대한 인식, 그리고 노동에 대한 인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14년 동안 실업계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오성훈 교사는 “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생활이 어려워 등록금과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의 학부모들도 대학에 진학하길 희망 한다”며 “실업계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동호공고 측은 학교의 폐교 입안을 추진했던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해야 학생들과 지역주민 그리고 교육당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아쉬웠던 기능경기대회와 우리사회 노동 인식에 대한 현주소를 발견한 동호공고 사태는 노동이 죽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본 기능직 노동의 그늘, 동호공고 사태에서 불거진 실업계 교육에 대한 편견. 노동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책임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는 변했다. 기계 공장에는 더 이상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구호는 붙어 있지 않지만 결국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은 건강한 땀방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