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대물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의 무시’
진정 대물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노동의 무시’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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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대한민국, 노동을 ‘왕따’ 시키다
⑦ 노동의 내일

노동의 가치가 바로서는 그날은?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자식에게 권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참여와혁신>이 지난 7월 창간 3주년을 맞아 아버지가 노동자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꼭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은 5.02%에 불과 했다. 반면 많은 아이들이 ‘싫다(23.29%)’거나 ‘잘 모르겠다(50.68%)’고 답해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노동자인 부모와 아이들의 대답에서도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드러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육체노동은 하지 않는 게 행복한 삶?

노동자 부모들에게 자식에게 자신의 일을 권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나처럼 몸 써서 고생하는 일보다는 사무직들처럼 좀더 좋은 환경에서 덜 고생하고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내 자식이 좀더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어느 부모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답을 골라내는 방법을 배우고 대학을 가는 것만이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이고, 육체노동을 하면 그럴 수 없는 것일까?


우리가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노력한 만큼 흘리는 땀방울의 ‘가치’가 아니라 그 땀방울을 ‘무시’하는 태도일 것이다.

 

기능인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네트워크 구성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는 몇몇 사람의 주장이나 일시적인 캠페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김경원 위원장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노동의 신성함과 가치가 무시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아이들도 비전이 안 보이기 때문에 기능인으로서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런 아이들의 꿈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사회적인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하나의 대안으로서 “네트워크 구성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지역산단 활성화 방안 등을 고려함에 있어서 산단 내의 기업들과 지역의 전문계고와 연계해 현장에 맞는 필요인력의 공급과 수급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의 변화도 지적한다. “전문계고 실습생들이 기능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직업인으로서의 대우와 관심을 가져주고 애착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 등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력난 등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중소기업 성장지원은 물론 전체 직업교육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몇몇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병역특례의 근본적인 취지가 많이 사라졌다면서, 3D업종 기피현상을 줄이는 한 방법으로 기간산업 분야 등에 병역특례제도를 확대해 기능인들을 유인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육과정 개편으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노동 교육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노동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노동교육이 제도화돼야 한다.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사회 내 노사갈등 발생 자체를 부정하는 전제에서 출발, 노동인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인권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도록 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노동을 통한 사회적 관계 형성에서부터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당당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노동의 사회적 의미와 노동의 신성함을 경험하게 해 노동과 일에 대한 건강한 의식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의 가치, 노동권,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노동3권, 사회보장권, 프라이버시권, 경영참여권 등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노동인권프로그램 개발에는 정부(교육부, 노동부), 노동자 단체, 사용자 단체, 교원 단체, 인권 단체, 노동연구·교육 단체가 컨소시엄 형태로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전문계고 출신 성공사례 부각으로 학력중심 사회구조 극복

이외에도 성실하게 흘린 ‘땀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변화해야 할 것은 수없이 많다. 교육 현장에선 전문계고 교사들의 기술·노동교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면서 교사들부터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노동교육뿐만 아니라 인성교육 등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나 능력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간의 교육과정은 기본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이나 사고능력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대학입시 등을 위한 ‘스킬’ 위주의 교육이 되어 왔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들은 학력과 학벌 위주의 현 사회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또다시 벽에 부딪혀 주저앉고 말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김 위원장은 “전문계고 출신이라는 것이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기업임원들 중 전문계고 출신들을 파악해 알리는 등 성공사례들을 많이 홍보하고 부각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땀을 흘려야 건강해진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힘이었고, 땀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15년 동안 기술축적이 안 되고 있다”는 어느 기술명장의 말처럼 이대로 가다간 ‘기술 강국’이란 타이틀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우리 기술자들이 있었던 자리는 외국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땀을 흘리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흘리는 땀은 물론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리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몸도 땀을 흘려야 몸 안에 독소가 빠져나가 건강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땀을 흘리는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정받을 때 국가경제도 개인의 삶도 한층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