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기자들의 '교육훈련' 취재 후기: 우리는 오늘 무얼 배워야 할까?
[김란영의 콕콕] 기자들의 '교육훈련' 취재 후기: 우리는 오늘 무얼 배워야 할까?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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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 취재를 마친 뒤 기자가 내린 교육훈련의 정의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불온한 상상.

우리는 성인이 돼서도 배울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정부와 기업에 우리가 필요한 교육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일까?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취재에 나선 박완순 기자(이하 박), 이동희 기자(이하 이), 강은영 기자(이하 강), 최은혜 기자(이하 최)들이 함께 취재 후기를 나눴다.

: 교육훈련, 정말 잘 안되더라.

: 교육훈련은 노사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주제다. 기업은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노동자는 숙련도를 높여서 고용 안정성을 꾀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당장 돈이 되지 않아서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 노사가 얘기하는 게, 맨날 임금만 가지고 싸우다 보니까 교육훈련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고.

: 공통적으로 그 얘기가 많았다. 교육훈련에 대해선 조금 더 멀리, 다양하게 내다보면서 노사정이 한 발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교육훈련이 정말로 실용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을 것 같다.

: 한편으론 노조가 임금 등 노동조건보다 교육훈련을 우선시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선들이 또 ‘노조가 문제다’는 식으로 귀결돼서 노동조합을 공격하는 데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임금 말고 숙련도 향상까지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긴 한가?

: 그래서 그 얘기가 많이 나왔다. 노동을 배제한 일터를 먼저 혁신해야 배움이 결합될 수 있다고. 노동조건이 먼저 개선돼야 교육훈련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거라 생각한다.

: 기업 입장도 이해가 간다. 요즘엔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으로 배울 시간은커녕 일할 시간도 줄었다는 거다. 중소기업은 시간도 없고 사람도 없고.

: 그래도 근로시간 내에 교육훈련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얼마나 생산성이 떨어질까? 오히려 기업이 혁신하고 발전하는 방향은 아닐까? 기업이 그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 기업 혼자 주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 우리나라 복지가 그렇지 않은가. 국가 복지보다는 기업 복지. 그래서 대기업만 입사하면 자녀학자금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나오지 않나. 결국 교육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력의 차이. 교육훈련에 정부나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훈련도 시장실패로 이어진다. 물론, 해줄거면 제대로 해야 하고.

: 정부 정책들은 어떤가.

: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공공서비스 전달체계였다.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 교육기관들이 관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상담도 안 되고, 평가도 안 된다. 수강생들이 무얼 배우고 싶은지 파악도 안 된다. 특히 이러한 교육훈련 수요자와 공급자간의 미쓰매치가 가장 큰 요인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교육훈련 기관 중 99%가 민간이다. 이미 민간기관이 이익집단화가 됐다. 거기만의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이미 시장이 형성됐는데, 싹 다 정리하고 새로 계약을 맺기가 어려울 거다.

: 지난 4월에 나온 일자리위원회 TF보고서(<직업능력개발 혁신방안>)를 보면 정부가 내일배움카드 제도를 통합, 개편하면서 국기훈련을 내일배움카드에서 분리하려고 하더라. 신기술분야 등 국가와 산업차원에서 필요한 훈련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던데. 한편으론, 도저히 지금의 민간교육 기관을 관리 못 하겠으니까 떼고 간다는 것은 아닌지?

: 정부 측 관계자에 따르면 따로,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철학이라고 하더라.

: 그 철학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기술 중심의 교육에 매몰돼있다. 교육훈련도 이공계 중심으로 시키겠다는 것이다. 문돌이들은 다 죽는 거다.

: 최근 기업들이 이공계 출신으로 사원들을 뽑아 놓고 인문 소양 늘리겠다고 하는 추세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되나?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학계나 기업에서도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다.

: 일례로 최근 성균관대학교 체육대회 현수막이 논란이 됐다. '인문캠은 학교에서 치킨집 사업 배운다던데?', '들어올 땐 1등급 나갈 땐 9급', '문과들이 그렇게 잘 논다며? 졸업하고' 문과 학생들을 조롱하는 내용이 담겨 성균관대 총학생회가 엄청 뭇매를 맞았다. 이미 문과에 대한 이런 인식이 파다해 마냥 웃어 넘기기 어려운 상황까지 온 거다. 교육훈련으로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 같다.

: 기본적으로 정부는 국민을 개발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국가에 필요한 인재만 기르겠다는 것, 필요한데만 돈 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한테 선택받지 못한 국민들은? 이공계가 아닌 문과 출신도 자신만의 역량 키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정부의 기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 전문가마다 생각이 다 다르더라. 같은 연구기관 내에서도 교육훈련을 시민권으로 봐야 하냐, 말아야 하느냐, 의견이 갈렸다. 하나의 관점으로 정책을 입안하기가 어려운 분야인 것 같다. 다양한 기관에서 연구가 필요하고, 노동부나 교육부가 함께 통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교육훈련 정책의 수요자는 전 국민이다. 복지 차원에서 다양하고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 그런데 인문학 같은 교육이 정말 필요할까? 이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

: 기술은 당장 성과가 보이니까. 그런데 인문학을 가르치면? 교육해서 얼마나 성과가 늘어났는지 측정이 안 된다. 그래서 이걸 굳이 가르쳐야 하나, 물음표를 던지는 것 같다.

: 강순희 경기대 교수는 인문학적 소양이 당장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일터 혁신은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토론이나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거다. 공정을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한다거나,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꾼다거나. 이런 것은 기술로 습득이 어렵다. 원래는 이름이 없는 지방대이던 시카고 대학이 지금의 명성을 갖게 된데도 인문학이 크게 기여했다. 1929년 당시 대학총장이 수업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일명 ‘시카고 플랜’. 고전 100권을 다 읽지 못하면 졸업을 못하게 하는. 그렇게 졸업한 사람이 지금의 시카고 대학교의 명성을 만든 것이다.

: 1929년이면 약 90년 가까이 시간이 들었다는 것인가.

: 교육을 괜히 100년 대계라고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당장 1년, 2년에 성과가 나와야한다고 집착하니까 인문학은 버려질 수밖에 없다.

: 그런데 기업이 대학처럼 교육기관은 아니지 않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그래도 기업이 이 정도까지는 교육훈련을 해야 한다, 그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 생산 혁신도 혁신인데, 기업이 노동자가 편하게 일할 수 있게는 만들어줘야 한다고 본다. 교육훈련으로 노동을 하면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에 ‘카이젠’이란 게 있다. ‘개선’이란 뜻이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매일 그날의 노동을 하다 불편한 게 생기면 회사에 얘기하고 그것을 지속적해서 반영하는 거다. 일하다가 이건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저렇게 고치면 어떨까? 생각하고 요구하는거다. 여기서 핵심은 기업의 반영에 있다. 전혀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 노동자가 편하게 일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 노동을 하면서 몸에 무리가 덜 가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것.

: 그러면 효율도 올라갈 수 있는 거다.

: 노사에게 어디까지 (교육훈련을) 하라고 하면 답이 없다. 정말 이상적인 생각이고, 제대로 된 방향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 그러고 나서 노사가 뛰어들어야 한다. 기업에게 교육훈련이 우선순위가 될 순 없으니까. 정부가 강력하게 푸쉬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되지만. 노사 당사자의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 그러한 시작이 동시에 교육훈련에서 노사 당사자를 배제하는 출발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 정부가 교육훈련의 플랫폼은 당연히 제공해줘야 한다. 물론 콘텐츠는 매력적이어야 한다.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자꾸 나오는 게 ‘수요자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 안 해도 그만 일 거면, 애꿎은 돈만 쓰는 거니까.

: 교육훈련을 직무에만 한정해선 안 된다. 그러면 자꾸 영화 <모던타임즈>의 찰리채플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하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교육훈련이 돼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조금 더 주체적으로 노동할 수 있고, 조금 더 자기 생각을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그러면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 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교육이 노동조합이 철학적 현안들에 대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교육훈련을 기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일종의 성인의 의무교육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본다. 100세 시대 노동할 수 있는 나이가 늘고, 이직도 만연하다. 노후 준비는 쉽지 않고. 그런데 이러한 짐을 개인에게만 맡기는 게 맞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 노동자 자신도 교육훈련에 대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재를 해보니까 나를 조금이라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다 교육훈련이 되는 것 같더라. 누가 시켜서 강제로 교육훈련을 받는다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내가 조금 더 편하게 일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교육훈련에 임한다면 조금 더 성과와도 이어질 것 같다.

: 배운다는 걸 자꾸 비용으로만 접근하려는 것 같다. 사람을 남겨야 하는 것인데. 교육훈련을 비용으로만 생각하면 전혀 발전할 수 없다. 일터라는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접근의 문제다. 내 일에 대해서 무언가 배워볼까,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무얼 배워야 할까?